천보성(전 삼성라이온즈 선수·전 LG트윈스 감독)
전국을 뒤흔들었던 프로야구 가을축제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가 4승1패로 우승을 했다. 김경문 감독은 필자의 예상대로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26년만에 찾아온 우승기회를 날려버렸다. 고비는 4차전이었다. 8회 말까지 아웃카운트 4개를 남기고 4대1로 앞서고 있었다. 마무리투수 김서현에 대한 감독의 사랑이 불을 질렀다. 성공했으면 덕장으로 길이 남을 수 있었겠지만 구원에 실패하고 말았고, 한국시리즈는 여기서 사실상 끝이 났다.
프로야구 10개 구간 가운데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면 감독으로서는 아주 잘한 것이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이 준우승의 업적을 내세워 대전 팬들의 하늘을 찌르는 원성과 한화 구단의 싸늘한 분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프로야구에는 "졌지만 잘 싸웠다"는 '졌잘싸'가 통하지 않는다. 김경문 감독 뿐만 아니라 우승한 염경엽 감독 외에는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며 구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과연 몇 사람이나 목숨을 부지할까.
올해 한·미ˑ일 세 나라의 프로야구 중 가장 먼저 끝난 곳은 일본의 재팬시리즈였다. 필자는 마침 후쿠오카에 머물고 있었으나 시리즈가 일찍 끝이나는 바람에 최종전을 직관하지 못하고, TV 중계로 관전했다. 명승부였다. 소프트뱅크가 첫 게임을 한신 타이거즈에 내줬지만,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4연승을 하고 마침내 4승1패로 우승을 했다. 4대1의 전적이나 상대 구장에서 우승을 확정한 것이 한국시리즈 LG의 경우와 같았다.
일본 국민들의 프로야구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의 우승 헹가래는 보통 3번이다. 일본의 헹가래는 10번 가까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날 자신들의 홈구장인 고시엔에서 우승 세레모니를 하는 소프트뱅크 선수들을 바라보는 한신의 후리카와 규지 감독의 쓸쓸하고 참담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필자가 1997년, 1998년 연속으로 LG 트윈스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나 우승을 못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그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당시 두산 베어즈의 국민감독이었던 김인식 감독이 "어이 천 감독, 한국시리즈 갔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라. 우승 못하면 말짱 헛거다"라고 조크를 던질 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준우승이 어디냐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결승에서 지고 나니 그 쓰라린 심정은 "차라리 한국시리즈 진출을 하지 말 것을 괜히 했다"라고 후회할 정도로 참담하기만 했다.
한국와 일본의 프로야구도 대박이었지만 미국은 그야말로 경악에 가까운 기적의 월드시리즈를 선보였다.
LA 다저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서로 펼치는 만화로도 그리지 못할 기적의 월드시리즈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다저스는 오타니 쇼헤이의 9회 출루경기 신기록과 한 게임 3개의 홈런, 프레디 프리먼의 18회 연장전 굿바이 홈런 등 전설의 장면들을 생산해 냈다. 3대3 전적으로 시리즈 균형을 맞추고 최종적으로 영화나 꿈에서나 이룰 수 있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우승을 했다. 야마모토의 3승, MVP 오타니의 신들린 투구와 타격은 전 세계 프로야구 팬들뿐만 아니라 일본열도를 경악시켰다.
LA다저스에서 선수생활을 한 박찬호, 류현진, 최희섭 등과 필자는 2년간 코치연수를 했기에 뿌듯함과 감회가 새롭다. 5억불의 사나이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2억불의 사나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 야구 신들의 활약에 눈이 부셨다.
이제 야구팬들은 하릴없이 내년 봄을 기다려야 한다.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그러나 각 구단들은 시즌 준비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선수들의 트레이드, 신인선수 스카우트, 외국용병 모셔오기, 최고의 감독은 누굴까 등등 스토브 리그를 달궈주는 큰 뉴스 감들이 많아 그나마 팬들은 참을만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써부터 프로야구가 보고 싶은데 어떻게 기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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