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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ESG 기후공시, 선제적인 대응 체계 구축해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기후공시' 의무화의 시계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비록 국내 도입 시기는 2026년 이후로 연기되었지만, 기업들은 글로벌 ESG 공시 대응 체계를 발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ESG 공시 기준의 표준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기후공시와 관련하여 국가별, 추진 주체별로 그 기준이 달라 기업이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실정인데,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 기준으로, 지난해 6월 ISSB는 IFRS S1 일반 요구사항과 S2 공시기준을 발표했다. 그중 S2는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위험이나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관련 위험 등 기업의 기후 관련 사항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2025년경 ISSB에 기반한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표준이 의무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영국, 호주 등은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표준, 보고기준을 준비하고 있다.둘째로, 유럽연합(EU)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의 이행을 뒷받침하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으로, 2023년 1월 CSRD 발효에 따라 ESRS first set(산업공통 적용)는 지난 1월부터 시행되었다. ESRS는 ESRS 1(일반 요구사항)과 ESRS 2(일반 공시)의 공통 기준 2개와 ESG 주제별 총 10개의 기준서로 구성되는데, 기준서 중 ESRS E1이 기후변화 관련 공시이다. 동 기준에 따라 EU 기업 및 관련 국내 기업들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ESG 공시 의무 적용 대상이 된다.셋째로,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의 기후 변화 관련 공시 규정으로, 지난 6일 SEC가 이를 채택하여 관보 게재 후 60일 후부터 단계적으로 발효될 예정이다. 동 규정에는 기후 관련 위험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 온실가스의 직·간접 배출량에 대한 공시를 포함하고 있고, 향후 공급망(Supply chain)을 포함하는 Scope3까지로 확대가 예상된다. 향후 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공시해야 하므로 KT, 포스코홀딩스, KB금융그룹 등 국내의 10개 기업도 공시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그렇다면 국내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관련 온실가스 배출 등 데이터 품질 관리 강화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가장 복잡하고 광범위한 ESRS를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공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지사, 협력사 등 공급망을 고려하여 상호 운용이 가능한 공시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 ISSB·ESRS·SEC 기준 중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기업은 선제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모든 일을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지만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ESG 기후공시가 국내 기업에 있어서 실제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는 미래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
[윤성은의 천일영화] 묫자리를 파내는 행위에 관하여, '파묘'
*영화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마니아층의 장르로 분류되어 왔던 오컬트 영화가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이번 주말이면 9부 능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파묘'(감독 장재현)가 그 주인공이다. 코로나 이후 종잡을 수 없게 된 관객들의 성향이 '파묘'의 흥행에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개봉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 대작인 '듄: 파트2'(감독 드니 빌뇌브)와의 2파전이 예상되었지만, '듄: 파트2'가 예상외로 부진한 가운데 '파묘'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파묘'의 성공에는 먼저 장재현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2015)은 한국형 엑소시즘 영화로 55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두 번째 장편인 '사바하'(2018)는 다층적 서사의 난해함 때문인지 그 절반 정도의 관객 수에 그쳤지만 소수의 열혈팬들을 확보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철학적 깊이나 만듦새에 있어서는 호평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감독이 신작으로 무당과 지관에 관한 영화를 내놓자 언론에서는 그를 이 장르의 장인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관객들의 기대감도 사전예매량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파묘'는 3일 만에 100만, 7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입소문을 타고 파죽지세로 순항하는 중이다. '파묘'는 대중적 요소와 마니아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재현 감독 전작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파묘' 자체만 보면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파묘'는 두 개의 이야기를 이어놓은 것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구축했다. 전반부가 무당들과 지관, 장의사 등이 조상의 묫자리를 잘못 써서 비극을 맞게 된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라면, 후반부에는 그들이 그 묫자리에 일제 강점기의 쇠말뚝이 박혀 있음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무서운 장면 없이도 섬뜩한 전반부에 빠져 있던 관객들 중 일부는 일본 도깨비 '오니'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부터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공포를 드러내는 방식 자체는 다를지라도,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그랬던 것처럼 '파묘'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반부에서 조상의 친일행위가 다음 세대를 밑도 끝도 없는 부자로 만들기도 하고 병들게도 했다는 사실이 다 드러나기는 하지만, 후반부에는 일제의 침략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보다 광범위하게 짚어준다. 말하자면 전반부를 후반부의 대유(代喩)처럼 사용한 내러티브다. 두 부분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감독은 수많은 복선을 깔아놓았고, 그 치밀함은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파묘'의 숨겨진 코드에 대해 파고들게 만들었다. 영화의 흥행이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장재현 감독은 무당과 지관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다가 쇠말뚝과 항일운동 이야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세대의 병(病)을 고치기 위해 조상의 묫자리를 파내는 행위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행위는 분명 유사한 데가 있다. 아니 어쩌면 창작가에게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이묘 정령은 사물이 혼 자체로 진화해 실체화된 존재'라는 대사는 결론처럼 다가온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령들, 그것들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것만 한 공포도 없으니, 경계가 필요하다.윤성은 영화평론가윤성은 영화평론가
[더 나은 세상] 가장 강한 사람들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의 여학생 밴드 The Sounds of Afghanistan은 11명의 중고등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새스커툰 한인회 한국 설날 행사 초청공연에 대한 감사로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캐나다는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나라 중 하나라 새스커툰도 예전 시리아 난민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대거 수용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3년 전 도착했다고 했다. 어린 여학생들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랩이 섞인 노래를 부르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난민들을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온 가난한 사람들이란 식으로 묘사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깨기에 좋다고 생각해 섭외했었다. 한국문화를 매우 좋아한다며 들떠서 식당에 나타난 학생들은 대부분 본국에서 사립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사이로 3년 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할 때, 미국 비영리기구와 연관된 학교장의 주선으로 특별기를 통해 캐나다로 왔다고 했다. 학교밴드인데 여성들의 교육이 금지되어 있다시피 한 나라에서 온라인과 방송활동 등을 통해 알려졌던 터라, 카불 탈출 시 휴대폰의 사진들을 지우고 긴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고 버스를 탔다는 얘기에선 영화 같은 긴박함이 느껴졌다. 정부의 초기 지원이 끝난 후로는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기에 생활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온 터라 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고, 3년 전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거의 못 했다는데 유창한 영어는 물론 좋아하는 K-pop 드라마를 통해 익혔다는 한국어도 꽤 유창한 A를 비롯, 어린 학생들 대부분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15세의 A도 이웃집 베이비시터로 일한다며 가족 모두가 돈을 번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한국 드라마 주몽이 해마다 다시 방영될 정도로 국민드라마로 높은 인기를 누린다는 것을 비롯해 슬프고 힘들 수 있는 이야기들을 밝게 재잘대던 일행은 캐나다로 같이 오지 못한 가족을 둔 학생들 얘기에 이르러 결국 눈물을 보였다. 작년에 합류한 이 학생들은 파키스탄으로 탈출해서 지내다 세 자매만 작년에 캐나다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럼 요리는 누가 하니 물었더니 15세인 둘째가 한다고 했다. 14세의 막내 J는 말했다. 스무 살 넘은 큰 언니는 돈 벌고, 둘째 언니는 요리하고, 나는 그냥 먹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너는 그냥 먹기만 해도 돼, 너 이제 겨우 14세인 걸"이라고 말해줬다. 이들은 파키스탄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것이 꿈이다. 캐나다 정부 지원 인원은 마감되었고 교회 등의 기관들을 통해 데려오려면 한 명당 2천만원 가까운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돈이 큰돈이 아닐 만큼 부자들도 많으니 두 명의 부자들만 찾으면 되는 거네.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세계 여성의 날이 있는 3월이다. 지난달 어느 행사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지역 주의회 의원의 말이 생각났다. 지역 출신으로 정치인으로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말했다. "You don't need to go far for success. (성공을 위해 멀리 떠나야 할 필요는 없어.)" 크게 바라는 게 없기에 멀리 갈 필요가 없는, 머물 수 있는 사람들. 생존을 위해 어디로든 가야 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이 생명력 강한 사람들 사이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어디쯤 서 있는가.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정성화의 자연과 환경] 자주 듣게 되는 암모니아
암모니아는 수소와 공기의 질소로부터 제조되는 무색의 염기성 기체로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나며 그 냄새 때문에 삭힌 홍어나 잘 관리되지 않은 화장실 냄새를 맡으면 암모니아를 생각하곤 한다. 암모니아는 질소비료, 폭약, 세정제, 냉매, 연료 등의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또한 질소산화물(NOx)을 선택적으로 환원하여 질소와 물로 전환시킬 때 환원제로 작용, 환경에 매우 중요한 역할도 한다. 또한 현재 세계 인구의 약 반은 암모니아로부터 제조되는 질소비료로 생산된 곡식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암모니아는 인류에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최근 수소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으며 수소를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으로 수소를 CO2 배출 없이 생산하는 기술과 수소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은 물론이고 수소를 사용할 곳으로 효과적으로 이송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수소는 기체 혹은 액체 상태로 이송될 수 있는데 우선 파이프라인을 통해 기체로 이송하는 것은 액화할 필요가 없어 경제적이지만, 먼 거리나 대용량 이송이 쉽지 않고 누출 및 폭발의 위험이 상존한다. 반면 액체로 이송하는 것은 액화를 위해 매우 낮은 온도(-253℃)까지 냉각해야 하므로 비용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장기간 보관하기도 힘들고 누출의 위험도 있다. 수소 이송 방법으로 수소를 많이 함유한 화합물을 이용한, 즉 어떤 화합물을 수소 캐리어(전달체)로 활용하는 것이 있다. 수소와 톨루엔으로부터 얻어지는 메틸시클로헥산이라는 물질은 수소 활용 시 반대로 수소와 톨루엔으로 분해될 수 있고 실온에서 액체인 장점이 있으므로 수소 캐리어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암모니아는 수소 함량이 높고 비교적 쉽게 액화되므로 큰 비용 없이 액체로 전환되어 쉽게 이송할 수 있고 수소 추출 후 무해한 질소만 배출하므로 매우 좋은 수소 캐리어가 될 수 있다. 또한 암모니아는 이미 오랜 기간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있고 활용 시 기존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어 막대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장점이 있다. 암모니아를 수소 캐리어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소와 질소의 반응으로부터 암모니아를 얻는 기술(N2+3H2→ 2NH3) 및 그의 역반응인 암모니아 분해 반응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특히 에너지 소모와 CO2 발생이 적은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주위에서 암모니아의 생산 및 분해와 암모니아 캐리어 등의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나쁜 냄새가 나고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암모니아이지만, 수소 시대 등을 통해 암모니아가 보다 친숙한 느낌의 미래가 도래하길 기대해 본다. 경북대 화학과 석좌교수정성화 경북대 화학과 석좌교수
[돌직구 핵직구]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청년의 눈빛을 보면 그 사회의 미래가 보인다. 꿈과 도전의식에 가득 차 있으면 희망이 있고, 반면 피로와 절망으로 찌들어 있으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청년들은 어떤 눈빛을 보이고 있나? 청년 세대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도전보다는 마음의 위안을 위해 '니체' '소펜하우어'의 염세 철학에 젖어 들고 있다. '헬조선'의 또 다른 버전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학생·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다. 그냥 취업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 취업이다. 쉽게 말해서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을 원한다. 그게 쉽지가 않다. 괜찮은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20%에 불과하다. 청년 취업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제대로 된 직장을 잡고, 나머지 네 명은 비정규직에 프리랜서이다. 작년 경제성장률이 1.4%에 그쳤으니 올해 2월 대졸자 약 44만명 중 10만명 정도만 좋은 일자리에 취업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그동안 누적 청년 미취업자가 126만명에 이른다. 취업이 어려우니 연애와 결혼은 엄두도 못 낸다. 청년 사회의 졸업·취업·결혼·출산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졌다. 초저출산과 인구 감소, 대한민국의 존립 문제도 청년 문제에서 출발한다. 두 문제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된다. 작년에 합계출산율이 0.72로 떨어졌다. 출생아의 숫자는 23만명에 불과하다. 2020년 5천184만명을 기점으로 총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 이후 3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는데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있다. 인구 절벽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 이미 문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가 추락하고, 사회복지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 지방 인구 감소를 넘어 소멸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노동·연금의 3대 개혁 과제도 결국 인구 감소로 생긴 문제이다.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청년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고 성실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까? 원인 규명에 따라 대책이 달라진다. 청년의 문제에 대한 종합적 대책을 세우기 위해 2020년 '청년기본법'이 제정되었다. 국무총리실에서 '청년 정책 기본 계획'을 작성하고 총괄·조정하고 있다. 일자리, 주거, 교육, 복지·자산 형성 등 종합대책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에 대한 체감도와 만족도는 낮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청년 문제는 경제·사회적 원인에서 기인한다.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크고, 월급 받아 아파트 구입하기가 어렵고, 자녀를 낳아 기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백화점식 분산된 정책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청년·인구 문제를 총괄할 '청년미래부'(가칭) 신설을 제안한다. 청년과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할 과감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청년의 3대 장벽인 일자리 창출, 주택 공급, 교육비 지원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덧붙여 인구 변화에 따른 미래사회 대응 방안도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 산업, 교육, 국방, 조세, 연금, 지방 발전에 관한 시나리오별 전략이 필요하다.청년 자살, N포 세대, 고립과 은둔 청년, 청년 빈곤, 열정 페이, 이대남과 삼대녀, 헬조선 등등.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야 한다. 청년의 삶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대한민국의 희망과 미래가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 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시선과 창] AI와의 공존보다 중요한 것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로 시작된 'AI 전쟁'은 여러 거대 테크 기업들의 참전으로 더욱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미국의 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이 차세대 AI 모델 '클로드3(Claude 3-Opus)'를 발표하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필자가 직접 클로드3를 사용해본 결과, 기존의 챗GPT와 유사하면서도 GPT-4를 능가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실제 대규모 벤치마크 테스트(MMLU)에서도 클로드3는 GPT-4를 압도하는 점수를 기록한 바 있다. 특히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마치 클로드3가 인간과 같은 지각과 의식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만의 관점과 의견을 피력하고, 심지어는 스스로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이는 비단 필자의 경험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 AI 업계에서도 '클로드3가 강한 자기 인식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속속 나오고 있다. 'AI의 의식'에 대한 논의가 불 지펴지는 양상이다. 물론, 현재의 기술로 AI가 의식을 가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의식'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AI의 의식'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정말 AI에게 의식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약간의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보자. 적어도 지금처럼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취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격체에 준하는 대우를 해야 하거나 AI가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인간 사회에 적극 관여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AI가 예술과 창작의 영역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데, 감정과 교감의 영역마저 대체하게 된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식을 가진 AI와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인간이 AI에 예속되고 말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하지만 'AI와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 사회의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뛰어난 AI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AI와의 공존'보다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인류 구성원 간의 공존'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다양한 분열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 간, 민족 간, 계층 간, 세대 간 다양한 차원의 반목과 대립, 전쟁과 테러, 차별과 혐오, 불평등과 양극화…. 이 상황에서 고도의 지능을 가진 AI가 등장하면, 인간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AI에 그대로 투영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AI 시대를 준비하는 동시에 인간 대 인간의 관계 회복이라는 근본적 과제에도 힘써야 한다. 상호 이해와 존중, 배려와 협력의 가치를 되살리고, 연대와 공감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어쩌면 AI라는 신인류의 출현을 눈앞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나 비관이 아니라 인류애와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결국 AI에 대한 논의 역시 '인간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꽃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AI 시대를 계기로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고, 또 한층 성숙하고 행복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서승완 유메타랩 대표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안도현의 그단새] 식물에게 배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에 식물채집이 있었다. 식물의 뿌리까지 캐낸 다음에 깨끗이 씻어 말린 뒤 흰 종이 위에 붙여 제출하는 숙제 말이다. 해마다 열 종류쯤 되었던 것 같다. 그중에 아직까지 그 이름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식물이 '방동사니'다. 길쭉하고 반질반질한 잎사귀 사이로 꽃대가 올라오던, 잎사귀를 뒤로 젖혀 묶으면 왕관 모양이 되던 식물. 질경이가 아주 쓴 풀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그 이후 나는 식물을 잊어먹고 살았다. 식물보다는 동물원에서 만나는 동물들이 훨씬 신기했다. 식물은 그저 풍경의 배경이 되거나 자연물 중에서 미미한 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를 쓰면서 물고기들이 저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 무슨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알게 되었다. 그때 봄날 밭둑에 드문드문 흐드러지는 하얀 꽃이 조팝나무 꽃이라는 것을 알았고,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에 나오는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 마타리를 알게 되었다. 식물을 찾아다니고 식물도감을 펼쳐보는 시간이 억새잎처럼 쭉쭉 늘어났다.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식물의 사생활' 서문은 나를 식물 가까이 바짝 끌어당긴 책이다. 식물은 볼 수 있고, 계산을 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시간을 잴 수 있고, 수를 셀 수도 있다는 유명한 몇 문장 때문이었다. 이것은 과장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었다. 비록 얼치기이지만 지금은 식물에 관해 말해 보라면 몇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 식물도 사랑을 나눈다는 것. 동물의 암수처럼 식물도 암수가 있어서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종족 번식을 위해 애를 태운다. 실제로 식물의 수분 과정을 현미경으로 보면 올챙이 형상의 수정체가 암술의 씨방으로 접근하는 모습은 동물의 수정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걷지 못한다고 해서 식물이 하등생물인 것은 아니다.둘째, 식물도 시계를 차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 산에 많이 자라는 참나무류는 다른 나무에 비해 마른 잎을 늦게까지 떨어뜨리지 않는다. 새순이 돋을 때까지 잎을 달고 있는 감태나무는 겨울에 그 잎이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시계 덕분에 잎을 지상에 내려놓아야 할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셋째, 식물도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 돕는다는 것.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리는 무성한 숲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고사리류와 이끼류가 보인다. 이들이 살아가도록 주변의 식물들이 습도를 조절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높은 산에 사는 함박꽃나무는 키가 큰 나무들이 반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생육이 왕성하다.넷째, 식물도 자신의 나이를 안다는 것. 식물은 자신의 나이테를 몸속에 새겨두고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키가 큰 경기도 용문사 은행나무의 나이가 1천18살로 추정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우리는 1천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이 은행나무의 나이를 겨우 알았을 뿐이다.이 밖에도 식물은 재채기도 할 것 같고, 서로 대화도 할 것 같고, 화를 내기도 할 것 같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할 것 같다. 슬프면 우는 식물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라고 해서 식물 앞에서 으스대거나 까불거나 잘난 체하면 안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 갖다버릴 때가 되었다.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
[이진우의 시대정신] 가짜 뉴스와 '가짜 현실'
선거철만 되면 온갖 소문과 음모, 선전과 선동이 거품처럼 일어나 현실을 뒤덮는다.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미국 대선과 우리 미래의 풍경을 바꿔놓을 총선이 겹친 올해, 우리는 가짜 뉴스의 구렁텅이에 빠질 위험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과연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올바른 정치적 지도자를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두 동강이로 갈라져 서로 적대시하는 극단적 분열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진영에 따라 자신만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게 가능하기나 하겠는가? 진실은 증발하여 사라져 버리고, 가짜 뉴스만 활개를 칠 것이 틀림없다.우리가 모두 진리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될까? 정치인들은 서로에게 무지와 무능과 부패의 낙인을 찍으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그것이 정권 심판이든 아니면 운동권 청산이든 그들은 자신들만이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진짜 현실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인가? 무엇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인가? 우리는 이미 진짜와 가짜 현실을 구별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토끼굴 효과'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토끼굴은 놀랍도록 또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초현실적인 상태나 상황에 빠지는 것에 대한 은유이다. 이 비유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한다. 첫 장에서 앨리스는 흰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 이상한 나라의 초현실적인 세계로 이동한다. 토끼굴은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경험을 상징한다. 마치 인기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우리는 우리를 무지하게 만드는 파란 알약 대신에 진실을 보여주는 빨간 알약을 먹고 '우리가 얼마나 깊은 토끼굴에 빠졌는지' 알아볼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이미 토끼굴 같은 '가짜 현실'(페이크 리얼리티)에 빠졌다면 그리고 우리에겐 진짜 현실을 알 수 있는 빨간 알약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현실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현실을 알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시대적 경향은 이 물음을 더욱 긴박하게 만든다. 하나는 익히 알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며, 다른 두 가지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기술적 흐름이다. 유튜브, 트위터,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와 텍스트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우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챗GPT 제작자인 오픈AI는 최근 짧은 명령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이 보이는 사실적 이미지와 영화를 빠르게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 '소라(Sora)'를 출시했다. 우리는 지금 '딥페이크(deepfake)'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의 '딥 러닝'과 '가짜(페이크)'의 합성어인 딥페이크는 원본과 똑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와 캐릭터를 창조한다. 챗GPT를 사용하듯 원하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인공지능 소라는 고화질 영상을 신속하게 만들어낸다. 이러한 정교함과 신속성을 기반으로 원본보다 더 많은 이미지가 생성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을까? 최근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 영상은 그 자체로 딥페이크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저 윤석열의 사전에 정치 보복은 있어도 민생은 없습니다"라는 연설 내용은 이미 이 영상이 가짜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어 의도한 효과가 실현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딥페이크의 문제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이 딥페이크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문제 되지 않는다. 해당 영상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실제 존재하지 않은 장면을 새롭게 생성한 딥페이크가 아니라 원본 영상을 짜깁기한 것이라는 국가수사본부의 보고는 핵심을 비껴간다. 영상 자체가 진짜라고 해서 짜깁기로 만들어낸 내용이 가짜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댓글에 숨어 있다. "진짜인 줄 알았네." "가짜가 진짜보다 보기 좋다." 진짜인 줄 알게 만드는 딥페이크 기술이 정말 사용된다면,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것인가?딥페이크의 문제점은 그것을 탐지하기 이전에 이미 소비되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진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짜로 판명되더라도 그것으로 영향받은 우리의 견해와 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거짓과 허위의 토양에서 자라난 편견이라는 잡초를 쉽게 제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짜를 하나하나 솎아내기보다는 가짜가 자랄 수 없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짜 뉴스'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가짜 뉴스'는 '가짜(페이크)'와 '뉴스'의 합성어이다. 무엇이 뉴스인가? 뉴스는 최근의 사건에 관한 보고로서 전통적인 언론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짜 뉴스를 일종의 '허위 보도'로 이해하지만, 가짜 뉴스가 언제나 거짓인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유튜브에 올라온 '이강인 가짜 뉴스'를 보자. 대표팀 주장 손흥민과 이강인 선수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달고 있는 영상들은 이 사실을 왜곡한다. 가짜 뉴스는 전혀 사실이 아닌 현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사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왜곡하여 보도한다. 간단히 말해서 가짜 뉴스는 우리를 잘못된 현실로 오도한다. 가짜 뉴스를 만드는 사람의 진짜 목적은 결국 공중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다.가짜 뉴스는 언제나 진짜 뉴스와 대비된다. 진짜 뉴스는 진실을 알리고, 가짜 뉴스는 허위를 보도한다. 가짜 뉴스로 우리를 기만하려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진실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진짜가 없다면 가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짜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 진짜와 진실에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이 그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늘어놓는 주장을 영어로 '불싯(Bullshit)'이라 한다. '개소리' 또는 '헛소리'이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이 진실에 대한 욕구마저 죽인다면, 의미 없는 헛소리만 만연한다. 가짜 뉴스가 만들어내는 가짜 현실이 두렵다면, 우리 공중이 가짜 뉴스가 자라지 못할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총선의 결과로 드러날 것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3040칼럼] 가짜 노동과 보이지 않는 노동
2022년에 번역 출간된 '가짜 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는 자기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 실질적인 성과와 관련 없이 그저 바쁜 일을 '가짜 노동'으로 정의한다. 현대사회의 합리성과 테크닉, 테크놀로지의 출현을 핵심 원인으로 보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반성과 무엇이 가짜 노동이고 무엇이 진짜 노동인지 구별하는 성찰적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노동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시간 최상위권으로 2022년 기준 연간근로시간은 1천901시간, OECD 평균(1천752시간)보다 149시간을 더 일한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연재하는 '가짜 노동'에 관한 기사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가짜 노동에 대해 보고한다. 약 한 달간 심층 인터뷰, 설문조사 등을 통해 눈치 노동과 허식 노동, 의전 노동, 의례 노동을 대표적인 가짜 노동의 일면으로 뽑았다.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자기 계발이나 충분한 휴식, 자유롭고 유연한 업무 환경은 이런 노동 환경에서 나올 수 없다. 이는 근무 이후 개인의 여가 등을 포함한 삶의 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한편 일을 잘 그리고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가짜 노동을 해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존재를 지워야 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도 있다. 청소 노동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응급실을 청소하는 노동자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생사가 오가는 바쁜 현장에서 청소 노동자는 최대한 없는 듯 그러나 신속하고 청결하게 청소해야 한다. 대학교나 백화점의 청소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휴게시설 없이 '눈에 띄지 않는' 노동을 요구받는다. 가사나 가족 돌봄 또한 보이지 않는, 가시화되지 않는 노동이다. 안 하면 표가 나지만 해도 그다지 표가 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노동에 빚지고 있다. 누군가는 가짜와 진짜를 나누고 있지만 어떤 일은 그 어떤 '일'에도 속하지 않은 채 사람을 키우고 공간을 돌본다. 대부분의 일 또한 이런 노동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말대로 '진짜 노동'을 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가짜 노동'에 드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보이지 않는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다소 일과 무관해 보이는 노동,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한 실패의 과정, 나의 삶을 잘 영위하기 위해 주변을 정돈하고 매 끼니를 챙기는 일, 주변 사람을 돌보고 필요를 알아차려 주는 일,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고치고 지우는 반복도 모두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불필요한 절차나 허례허식, 보여주기식 과잉 노동과 환경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성과나 결과로 직결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그러한 노동에는 다소 쓸모없어 보이고 딴짓으로 여겨지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일은 개인의 정체성을 담아내며 한 개인의 삶과 뗄 수 없는 주요한 활동이다. 가짜와 진짜 사이, 과정과 결과 사이, 일과 생활 사이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인식과 존중이 있을 때 우리는 더 잘 일하고 더 잘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성현 생각] 공동체를 존중하는 삶
예전에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며 나오는 길에 식당 주인에게 잘 먹었다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비록 음식값을 치르긴 했어도 자신을 대신해서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며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사인사는 비단 식당뿐만 아니라 차를 운전한 버스 기사분이나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상인들에게도 전해지곤 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대가를 지불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 생각해서인지 그런 인사는 고사하고 소위 말하는 갑질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공업자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관계에서 사람은 없고 '갑'과 '을'만 남은 듯하다.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공동체'라 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공존(共存)'이라 한다면 우리는 공동체를 존중하는 삶을 통해 잃어버린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출퇴근길이나 식사시간에 나를 대신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을 위해 우리 함께 따뜻한 감사인사 한 마디를 전하면 어떨까?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신비의 데니소바인
우리들이 네안데르탈인에 대해서는 배운 바가 있지만 '데니소바인'은 생소하다. 최근 고인류학계를 뜨겁게 달군 화두가 바로 이 데니소바인이다. 데니소바인도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한 시기에 출현하고 사멸하여, 혹자는 네안데르탈인의 사촌이라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라시아 추운 지방에 살았으나, 데니소바인들은 시베리아에서 아시아로, 즉 티베트의 고산지대, 라오스의 삼림지대, 태평양제도의 열대우림으로 퍼져가 살았다. 그들은 혹독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유전자가 있었던 것 같다.데니소바인이 알려진 것은 오래지 않다. 러시아의 고생물학자들이 시베리아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뼈 조각을 발견하여 분석한 결과 그 주인들이 네안데르탈인 같은 고대 인류의 한 종임을 밝힌 것은 2010년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남긴 것이라고는 턱뼈 1개, 손가락뼈 1개, 두개골 조각 1개, 치아 3개, 기타 뼛조각 4개가 전부다. 유전학자들은 이것들과 이것들이 있던 동굴의 흙에서 DNA를 추출하여 많은 비밀을 해독했다. 약 12~19만년 전의 한 어금니가 네안데르탈인과 유전자는 비슷하지만 DNA가 별개의 종임을 알려주었고, 약 5~7만년 전의 손가락뼈도 같은 별개의 종임을 밝혀주었다. 9만년 된 뼈는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혼혈을 보여주어 두 종 사이의 교배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현생인류도 수십만년 전 이 데니소바인과 교배하여 그들의 DNA를 물려받았다. 이들의 DNA가 현재 아메리카와 호주의 원주민 등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점이 흥미롭다. 아마 현생인류가 6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온 후 수만년을 이들과 함께 살면서 교배가 이뤄졌을 것이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단상지대] '나무를 심은 사람'에게 배우는 삶, '나부터'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는 1895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작은 도시 마노스크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아버지와 세탁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가난하였지만 남프랑스 고유의 광활한 자연을 벗 삼아 성장하였고 16세부터 18년간 은행원으로, 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으로, 1929년 34세의 나이에 첫 작품 '언덕'을 발표하면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창작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갔는데 '나무를 심은 사람'을 비롯한 약 30편의 소설과 에세이, 시나리오를 발표하였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로 첫 원고를 쓴 뒤에 약 20년 동안 다듬어서 완성한 작품으로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나'라는 화자를 통해 나무를 심은 양치기 노인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역사적 사건, 공간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핍진성을 강화시켜 독자의 공감과 감동을 일으킨다. '나'는 고산 지대를 여행하던 중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를 지나게 된다. 나무라고는 없는 땅 위로 견디기 어려울 만큼 세찬 바람이 부는 곳이었는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양치기 한 명을 만난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도토리를 고르고 골라 정성스럽게 나무를 심는다. 알고 보니 그는 3년 전부터 이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 왔다고 한다. 시킨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는 왜 묵묵히 나무를 심는 것일까? 쉰다섯인 그는 아내와 아이를 잃고 고독하게 살면서 나무가 없어 죽어가고 있는 땅을 살리고자 나무를 심고 있다고 했다. 또 그는 너도밤나무 재배법을 연구하며 묘목도 기르고 있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중에도 부피에는 여전히 나무를 심고 숲을 지키고 있었으며 부피에가 87세 되던 해, 나는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다. 황무지였던 마을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채소밭에 채소가 가득했으며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함께 일구어 놓은 새로운 마을이 되어 있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지막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 '한 사람이 오직 정신적, 육체적 힘만으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이룩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대한 혼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었던들 이러한 결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해낸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품게 된다.'노인이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황폐한 대지에 아름다운 숲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모두'를 위한 '공공의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묵묵하게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그 과정에서 커다란 좌절과 실패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숲이 되살아나는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비록 작은 한 사람, 개인이지만 그 작은 힘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겨우 나 하나?'가 아닌 '나부터'의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갖고 노력한다면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그 변화는 큰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가 아닌 굳은 의지를 가진 개인들의 상상할 수 없는 힘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도 저마다의 나무를 심으며 이 세상에 희망을 전하고, 나아가 스스로도 희망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가? 숲이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나무를 심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최윤정 (대구YWCA 사무총장)최윤정 (대구YWCA 사무총장)
[단체장의 생각:長考] 살기 좋은 명품 남구, 열정으로 만든다
"대구에서 소문난 부자는 다 남구에 산다"고 할 정도로 대구 남구는 예전부터 공기 맑고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하지만 도심의 노후화로 인하여 인구는 점차 줄어들었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과거의 화려한 명성은 점차 빛이 바래갔다.나는 2018년 7월, 구청장으로 취임하면서 앞산 정상에서 남구를 내려다보며 굳게 다짐하였다. 반드시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활기찬 명품도시로 만들어 보겠다고. 그날부터 변화하는 남구를 위한 첫걸음은 시작되었다.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이 인접해 있는 남구는 편리한 교통환경으로 도심으로의 접근성도 매우 좋고, 지역 내에 대학병원이 두 곳이나 있으며, 앞으로는 신천이 흐르고 뒤로는 대구시민의 허파인 앞산이 있다.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살기 좋은 최상의 정주여건이다. 취임 후에 우선적으로, 노후화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재개발·재건축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는데 요즘 남구가 상전벽해(桑田碧海)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신천과 앞산을 바라보는 멋진 조망권을 가진 새로운 주거환경에 반한 젊은이들이 점차 남구로 찾아들고 있고, 어르신들로 가득 찼던 도심에도, 젊은이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남구의 자랑인 앞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신천을 따라 사람들이 남구를 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희망을 바탕으로 '앞으로 구청장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앞산을 중심으로 한 문화관광 사업의 완성이었다.일몰 시간의 앞산해넘이전망대는 붉은 노을이 너무나 황홀하다. 아름다운 일몰과 함께 멋진 야경을 즐기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앞산하늘다리 중앙에 설치한 하트 모양의 조형물은 연인들이 프러포즈를 하기에도 좋고, 소중한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에 좋은 장소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연인들이 앞산하늘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인스타 등 SNS에 올려서 전국적으로 홍보가 되고,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는 이들로 북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이 일대에 유명 커피 체인점과 음식점도 들어서고 있다.지난 연말에는 앞산 크리스마스축제가 폭발적으로 대성황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최초로 앞산해넘이축제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앞으로 개장할 앞산하늘다리와 연결되는 도심 속 캠핑장은 물론, 천문돔과 반려동물 놀이터까지 개장이 되면, 남녀노소 누구나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아울러 공룡공원이 있는 앞산 고산골에 133면 주차 규모의 주차빌딩이 지난 1월에 준공이 되어 이제 주차 걱정 없이 앞산을 찾게 되었다. 또한 데크형 테마공원 조성을 위한 '앞산 고산골 생태쉼터 조성'사업이 오는 5월 착공 예정이다.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된 안지랑곱창골목과 앞산 카페거리 및 관문시장 등 전통시장의 상권까지 활성화되고, 여기에 더해서 이 모든 앞산의 관광지를 이어주는 앞산관광모노레일이 완성된다면 앞산 관광객 1천만명 달성은 물론이고, 생활인구 유입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환경이 하나 둘, 정착되어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주민을 위한 복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열정은 전문지식을 뛰어넘는다'는 신념으로 구청장으로서 하나씩 우리 구민들과 같이 힘을 모아 노력한다면, 반드시 '살기 좋은 명품 도시 대구 남구'로 새로이 도약할 것이다. 조재구 대구 남구청장조재구 대구 남구청장
[아침을 열며] 누구라도 타인에게 헌신과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서로 신뢰하며 공존하는 사회적 존재다. 지금처럼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힘만으로 생존과 번영을 누릴 수는 없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우리의 삶과 복지는 공동체 및 다른 사람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아무리 크게 헌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공동체의 노력과 협력으로 만든 재화와 서비스 없이는 잘 살 수 없다. 누구라도 자기 입장만 앞세우며 살 수 없고 세상만사가 뜻대로만 되지도 않는다. 상호의존은 필수적이고 불가결하다.세상에서 당연시해온 일이 사라지고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평온한 일상이 큰 탈 없이 유지되는 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누군가 자리를 지키며 수고하고 헌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제몫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거나 맡은 일을 의도적으로 게으르게 하면 문제가 생긴다.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사람들은 사안의 경과를 분석하고 책임을 묻고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목하거나 남을 탓하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이런 일이 잦아 걱정스럽다.사회와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과업들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당연히 제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현장을 이탈하는 일이 속출하는 현실을 보면서 국민은 불안하고 위태로움을 느낀다. 일반인들은 사회지도층이 소명으로 헌신하며 모범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사회에서 받은 것이 많고 더 많이 누리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기여하고 베풀어야 한다. 좋은 사회는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좋은 사회는 그렇게 유지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사회정치적 관심사를 둘러싼 요즈음의 세상인심이 무척 사납다.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조바심이 앞선다. 정부가 앞장서 일부 국민의 희생을 당연한 듯 강요한다. 대중은 소리 높여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의 헌신을 마치 빚 받아내듯 독촉하고 있다. 누군가의 갑질에는 분노하면서도 다른 갑질에는 박수로 응원하는 일도 다반사다.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하지 않을 듯이 행동한다. 하지만 윽박지른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이 급해도 누구라도 타인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세상만사는 돌고 돈다. 오늘은 내가 타인에게 강요하며 거칠게 몰아가지만 내일은 내가 되레 험하게 비난받고 책임을 추궁당할 수도 있다. 비난하던 사람이 비난받는 위치가 되기도 하고 헌신을 요구하던 사람이 희생을 강요받는 자리에 내몰리기도 한다. 요즘처럼 번잡하고 말 많은 현실에 굳이 논쟁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시비를 가리고 누군가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다만 역지사지를 말하고 싶다. 환호하는 대중과 손가락질하는 대중은 다른 부류가 아니고 같은 사람이다. 세상인심은 쉽게 변한다.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지목해서 잘못을 들추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적대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 일상화된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정치 지도자와 고위 관료가 앞장서고 언론이 당파성을 노골화하며 일반 국민마저 편을 나눠 혐오를 양산하는 현실이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 계층, 성별, 세대 갈등과 균열, 수도권 초집중과 지역 불균형, 역대급 저출산과 국가소멸 우려,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혐오와 적대 등 산적한 난제에 더해 최근 의료인력 증원으로 촉발된 갈등을 보며 건강한 공동체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박순진 대구대 총장
[하재근의 시대공감] 전유진, 가왕으로 우뚝 섰다
전유진이 마침내 가왕으로 우뚝 섰다. 최근 방영된 MBN '현역가왕'에서 쟁쟁한 성인 현역가수들을 모두 제치고 올해 고3이 되는 청소년 전유진이 1위에 오른 것이다. 글자 그대로 현역 중의 가왕으로 인정받았다.앞에서 '마침내'라고 한 것은 이런 날이 언젠간 올 것이라고 이미 예측됐었기 때문이다. 전유진이 과거 '미스트롯2'에 출연했을 때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었다. MBC '편애중계' 왕중왕전에서 준우승을 하며 얼굴을 알린 상태에서 '미스트롯2'에 도전했지만 그때까진 아직 톱스타는 아니었다. 그런데 '미스트롯2' 1회에서 전유진이 '서울 가 살자'를 부른 후에 신드롬이 터졌다. 당시 중학생에 불과했는데 무려 5주 연속 국민 응원 투표 1위를 차지했다.그렇게 국민적 열기가 터졌는데도 당시 마스터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런 속에서 전유진이 중도탈락하자 엄청난 반발이 나타났다. 프로그램 시청률이 하락했고, 최종 우승자 결정에도 시청자들의 반발 투표가 영향을 미쳤다. 마스터들이 계속해서 높게 평가한 사람이 아닌 다른 출연자가 우승한 것이다.바로 이런 것들이 초유의 사태였다. 한 사람 탈락했다고 경연프로그램 시청률이 하락하고, 그 여파가 우승자 선정에까지 미친 것 말이다. 당시 전유진은 탈락했지만 최고 스타 자리에 오른 무관의 제왕이었다. 중학생 때 그 정도 신드롬을 일으켰으니 앞으로 가왕이 될 거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현역가왕'에서 그날이 도래한 것이다.전유진이 어렸을 때부터 국민적 사랑을 받은 건 그 목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미스트롯2' 당시 자극적인 가창이나 화려한 기교로 한순간 이목을 잡아끌진 않았지만 들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가창으로 감동을 줬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가장 편안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나이를 의심케 하는 깊은 감성 표현을 해낸다. '현역가왕'에선 그런 전유진표 감성 표현이 더욱 깊어졌다.감성 표현만으로 이미 국민 신드롬을 일으켰는데 새로운 모습까지 보여줬다.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며 폭발적인 고음의 샤우팅으로 무대를 장악하기까지 한 것이다. 전유진은 무대 울렁증이 약점이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강산' 무대는 팀의 대장으로 나선 것이어서 성인도 크게 긴장할 상황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시원하게 샤우팅 하는 모습으로 그새 울렁증을 이겨내고 성장했음을 알렸다.뿐만 아니라 공연 중에 '깨방정' 안무로 웃음을 주더니 나중엔 '남이가'를 통해 본격적인 댄스음악까지 시도했다. 안무가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퍼포먼스 장인까지 돼 가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아이돌의 느낌까지 있다. 뉴진스 아닌 '유진스'라는 말까지 나온다. 성장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눈부실 정도다. 감성무대, 파워풀한 무대, 댄스무대, 코믹 설정 무대까지 모두 가능해 보인다. 그 나이에 맞는 깨방정 밝은 모습으로 빵빵 터뜨리기까지 한다. 놀라운 스타성이다.한국 가요계에 새 퀸이 나타난 느낌이다. 이제 곧 '현역가왕' 한일전이 치러진다. 전유진이 일본에도 선을 보인다는 뜻이다. 과연 한국에서의 신드롬을 일본에서도 이어가면서 한류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될까? 일본의 유명 가수 마츠자키 시게루는 전유진의 댄스 트로트 공연을 보고 "이대로 일본에 가면 톱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보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초유의 길을 걸어온 전유진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문화평론가하재근 문화평론가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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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 '155명' 조정에 대구경북 타 대학 결정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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