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정성화의 자연과 환경] 천하무기물, 인간과 생물다양성
몇 년 전부터 국내외를 막론하고 꿀벌의 개체 수가 크게 감소한다는 우울한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또한 학술지 '네이처'지 4월의 한 논문에 따르면 현대식 농법에 따른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가 심한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곤충 개체와 종(種)의 수가 각각 49% 및 27% 감소하였다고 한다.최근에 우리는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자주 듣게 되었다. 그 이유는 종 다양성이 낮은 생태계에서는 어느 한 종이 사라지면 그 종을 먹이로 하는 다른 종도 사라질 수 있어 생태계 평형이 급격히 무너질 수 있지만 반대인 생태계에서는 한 종이 사라져도 그 종의 포식자는 다른 종을 먹고 살 수 있으므로 생태계 평형이 잘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지구 상에 생물이 나타난 이후 약 5억년 동안, 5회의 대멸종(생물종의 다양성이 지구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크게 빨리 감소하는 것)이 있었다. 과거의 대멸종의 원인은 소행성 충돌, 화산폭발, 기후나 해수면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생각되나 6차는 자연이 아닌 우리 인간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다.한편, 신생대 초기인 팔레오세-에오세(약 5천600만년 전) 시기에는 매우 급격한 온도 변화가 17만년간 지속되었고 이를 '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PETM)'라고 하는데 온실가스의 급격한 분출 등의 어떤 자연적인 원인으로 지구의 온도가 5~8℃ 올랐고 멸종이 일어났다고 한다. PETM 시기에 온도가 급격히 변화하였지만, 100년에 0.04~0.12℃ 상승한 정도였다. 현재의 지구 온도는 21세기에 1~5℃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니 현재의 온난화 속도는 PETM 멸종기보다 약 10~100배 빠른 셈이다. 현재 인간에 의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전례가 없고 과거 온난화가 가장 심했던 시기보다 지금은 약 10~40배 정도 빠르게 배출되고 있으므로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PETM의 멸종과 5차례의 대멸종을 뛰어넘는 재앙적인 멸종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흔히 "지구를 살리자"라고 하는데 인류를 포함해 그 어떤 종이 사라져도 지구는 끄떡없을 것이다. 다만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체가 바뀔 뿐. 따라서 지구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지구온난화와 환경 등을 생각해야 한다."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라는 뜻의 천하무기물(天下無棄物)이라는 논어에 나온 옛말을 생각하게 된다. 지구의 가장 큰 암적인 존재는 우리 사람들이고, 지구 혹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천하무기물이 아닐까 한다. 경북대 화학과 교수정성화 (경북대 화학과 교수)
[수요칼럼] 어버이날 소묘
새벽부터 부산을 떤다. 김밥 재료를 손질하는 내 옆에서 남편은 전복을 다듬는다. 이제 음식물 반입도 허용된단다. 어머님이 평소 좋아하는 고기 요리는 자신이 없고,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음식으로 준비한다. 봄이 오기 직전 요양원 생활을 시작하신 어머님. 그간 코로나 상황 지침을 핑계 삼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면접권이 제한되었던 그 기간을 너무 적극적으로 누린 불효자였다. 평생 어머님을 모신 시누님의 노고가 현재진행형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식 노릇에는 뒤처지곤 했다. 요양원 가는 길마다 아카시아꽃 행렬이다. 우리 산천에 아카시아가 이렇게 많았나 싶게 천지가 흰꽃 동산이다. 차창을 내려 향을 들여본다. 지는 꽃잎이라 그런지 향기가 쉽게 배어들진 않는다. 요양원 마당, 오월의 다사로운 볕 아래 면회용 테이블이 놓여있다.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우리 말고 면회객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미리 다녀간 것일까. 이토록 화창한 날에 이다지 쓸쓸한 어버이날이라니.'실버카'를 밀며 어머님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신다. 아카시아 흰꽃잎처럼 미소가 벙글었다. 집에 계실 때는 부축해도 걷기 힘드셨는데 한결 좋아진 걸 보니 맘이 누그러진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작정한 일인 듯 손가락에서 금반지를 빼내 건네신다. "야이야, 결혼할 때 좋은 반지 못 해준 게 여태 맘에 걸린다." 순식간의 일이라 나도 모르게 움찔 물러난다. 단 한 번도 좋은 반지를 못 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나는 진심으로 손사래를 친다. 당황해하는 내 표정을 살피며 어머님은 "이건 내 진심이다. 진심이다"를 몇 번이고 뇌신다. 혹시 이런 상황이 치매인가 싶어 남편을 쳐다본다. "엄마 치매는 최근 단기간 것을 기억 못 한다. 옛날 일은 기억 다 하신다. 그러니 엄마 마음 편하게 해드리자." 실랑이를 하는 대신 남편은 반지를 받아 든다.전복죽 한술에, 김밥 몇 개와 참외 한 조각을 드신 어머님, 혼잣말처럼 "아카시아가 많이 폈네" 하신다. 남편이 잽싸게 아카시아꽃 두어 송이를 따온다. 절정 지나 개미에 뜯겨 누레진 아카시아꽃에다 어머님은 손바람을 일으켜 향을 맡으신다. 잠시 테이블 주변에 향이 머무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지고 만다. 잠시 뒤면 떠나고 말, 막내아들의 체취라도 간직하려는 듯 잔향을 좇는다.낮에는 말동무도 있고 실내 산책도 하니 바쁘게 지나간단다. 개인 방에 드는 저녁이면 외로움이 몰려온단다. 그때는 기도하신단다. 식구들 건강과 남은 생, 지루함을 잘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옆 야산에서 낮닭 울음이 길게 들린다. 고요를 깨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겠는데, 어머님은 전혀 듣지 못한 기색이다. 자주 오지 않을 이 순간에 집중하는 중이므로 세상의 소요(騷擾)가 들어찰 틈이 없다. 어머님 성화에 반지를 끼는 시늉을 한다. 손 고운 어머님의 반지가 마디 굵은 내 손가락에 맞을 리 없다. "제겐 맞지도 않는걸요. 반지는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인데 끼고 계세요." 선별해서 듣는 어머님의 귀에 내 목소리가 닿을 리 없다. 오래된 의자는 삐걱이고, 오월 햇빛은 따가워지는데 마음만은 다사롭다. 이제 가보거라. 재촉하는 어머님의 말씀이 정말 가라는 뜻이 아님을 안다. 쉽사리 일어서지 못하는 그 마음을 먼저 알고 어머님,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힘겹게 실버카를 밀며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어머님. 어버이날 한나절, 자식은 하루 의무 행사로 그치겠지만, 어버이는 매일매일 '내리사랑앓이' 중임을 알겠다. 김살로메 (소설가)김살로메 (소설가)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일상회복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마스크아직 그대로다. 아무도 선뜻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아니 벗지 못한다. 5월2일부터 마스크 착용의무는 해제됐다. 실외 한정이긴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정부가 처음으로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 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김부겸 총리가 "코로나19 관련 방역과 의료상황은 확실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오미크론 변이 정점 기간과 비교할 때 확진자 수는 20% 이하, 위중증 발생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중증병상 가동률도 10주 만에 20%대로 내려왔다"고 했어도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완화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로나의 위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렇지 않은가. 지난달 29일 WHO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 수는 5억953만여 명에 이르고, 누적 사망자만 해도 623만여 명이 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변이종이 나타날 조짐도 불안을 더해준다. 마스크 해제는 2020년 10월13일 정부 차원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작된 지 약 1년 반 만이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실외 한정이라도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마스크 해제가 정치 쟁점화로 떠오르기도 한다.어쨌든 이 같은 정부 방침은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받아온 국민들에게는 하나의 의미 있는 전망을 가늠케 하는 듯하다. 우리 사회가 모처럼 만에 급속하게 풀리는 기미를 보이기도 한다. 사회, 문화, 경제계 전 분야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 그동안 쳐두었던 울타리를 허물기 시작했다. 지자체들은 발 빠르게 '일상회복 지원 문화행사' 추진계획을 실행한다. 사회 각 분야의 일상 회복 본격화에 대응한 행사들이다. 문화행사를 통해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고 일상 회복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함이란다. 각종 축하공연과 경축 퍼포먼스, 각종 기념공연 등과 함께 '트로트 페스티벌', 지역 가요 콘서트 등의 이름으로 이달 말에서 7월까지 집중적으로 열린다. 아산시가 23일 일상회복을 위한 문화, 체육, 식생활 지원과 복지지원 계획을 발표한 것도 그중 하나다. 시는 삶의 여유를 느끼고 만끽할 수 있는 영역인 문화예술, 체육, 식생활 분야가 그동안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며,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된 지금 시민의 일상이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화순군은 단계적 일상회복에 발맞춰 기획 전시회를 시작으로 연극, 영화,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휴관 중인 작은 영화관 '화순시네마'를 재개관하고 공연, 영화, 전시회, 문화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군민의 문화향유 기회가 확대되고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국에서 이는 이런 활기는 그러나 아직은 불안이 가시지 않은 채로의 활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종철이 시점에서 문득 코로나라는 엄청난 재앙을 숙고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려 애썼던 고 김종철 선생이 떠오른다. 그는 코로나19를 인류에게 준 하나의 '고마운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해월 선생이나 장일순 선생님이 살아계시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이분들 같으면 어떤 마음으로 사실까. 결국 결론은 저하고 같을 거라고 봅니다. 하는 데까지 우리가 노력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아우슈비츠에 대한 연구서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처했을 때, 궁극적으로 사람이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게 만드는 것이 뭡니까? 이웃이잖아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절망스럽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하고 잘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비상상황일수록 우리가 사람을 더 아끼고, 물자를 더 아끼고, 더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제 천하의 진리인 것 같아요."김종철 전 녹색평론 발행인이 2020년 6월 갑자기 타계한 직후 녹색평론 2020년 7~8월호에 실린 그의 '생명사상과 환대의 윤리'란 제목의 글이다. 그는 이 글을 끝으로 유명을 달리해버렸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한 마지막 말인 셈이다. 앞의 글은 그 글의 끄트머리에 붙인 말이다.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게 있다. 그의 사후 2년이 다 되어가는 즈음인 최근 그의 칼럼집 '발언3'이 출간됐다. 국내 언론에 기고했던 글들을 엮은 것이다. 이 칼럼집에 들어 있는 다음의 말 역시 우리 마음을 후빈다. "우리는 오랫동안 별생각 없이 물자와 에너지를 흥청망청 소비하는 생활을 '풍요로운' 삶이라고 오해하고, 휴가라면 으레 항공여행과 골프와 크루즈 항행 따위를 떠올리면서 그게 '좋은 삶'이라고 믿는 정신적 빈곤 속에서 지내왔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에게 '좋은 삶'에 대해 차분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풍요'가 아니라 '자유'라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당 기간의 억제된 소비생활 끝에서 우리는 뜻밖에도 우리의 삶에서 정말 필요한 물건은 몇 가지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건강한 먹을거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좋은 농사와 노동, 비옥한 흙과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인간관계와 공동체적 연대 이외의 모든 것은 결국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깨달았다."생태사상가이자 실천적 민주주의자였고, 무엇보다 농업, 농촌, 소농을 가장 중시한 농본주의자였다. 그의 사후 "이제 누가, 미친 성장과 개발을 멈추고 생태와 소농을 살리라고 외칠 것인가"라는 탄식 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그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남긴 간곡한 말이 새삼 여전히 고통받는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두드린다. 시인이하석 (시인)
[3040칼럼] 과학의 길이
우주의 크기를 이야기할 때 광년의 길이를 사용한다. 1광년은 광자가 1년간 이동할 수 있는 거리로서, 빛이 1초간 이동할 수 있는 거리(약 299,792㎞)로부터 계산하면, 1광년의 거리는 약 9.5조㎞(9,460,730,472,580㎞)이다. 우리 태양계의 크기는 약 0.00127광년이고,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의 크기는 10만5천700광년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도시는 이에 비하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가늠할 수 있겠다.관점을 더 작은 곳으로 옮겨 보자. 1860년대 스웨덴 과학자 안데르스 요나스 옹스트롬(Anders Jonas ngstrom)은 태양빛의 스펙트럼을 실험적으로 관찰하고 빛의 파장을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마일(mile) 또는 미터(m)의 길이 단위로 표시하기에 빛의 파장의 길이가 너무 짧아 본인만의 표기방식으로 다양한 파장의 빛들을 분석했다. 약 50년 후 1907년이 되어 그의 이름에 기인한 새로운 길이 단위, 옹스트롬(ngstrom, )이 제안된다. 이 길이의 단위는 10-10 m이다. 우주의 만물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지구 지각과 대기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실리콘이나 알루미늄, 산소, 질소, 수소 원자의 크기가 1-2 수준이니 이 크기 단위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원자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지구가 모래알 한 알을 바라보는 것과 유사하다.모래알에는 굵은 모래알과 작은 모래알이 있다. 모래알들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모래알일 뿐이다. 그러나 원자의 세계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화학에서는 원자 크기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물질이 형성될 것인지 혹은 형성되지 못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또한 결과적으로 설명하면, 원자의 크기가 작을수록 해당 원자가 전자를 당기는 힘이 대체로 강해진다. 이는 원자로 구성된 분자의 특성으로도 이어진다. 가령 산소원자는 탄소원자보다 작다. 이들 산소원자와 탄소원자가 각각 수소원자와 결합하여 분자를 구성하게 되면, (물론 이들이 갖는 전자수가 크게 작용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물 분자(H2O)와 메탄분자(CH4)를 형성한다. 물론 이들 분자는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인다.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물분자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메탄분자로부터 또 다른 관점으로 가보자. 가령 실을 떠올려보면, 짤막한 실 조각부터 긴 실 조각까지 다양한 길이의 실 조각을 상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탄소로 구성된 탄소화합물은 작게는 탄소 한 개로 구성된 메탄분자부터, 탄소 세 개 또는 네 개로 구성된 화합물, 즉 연료로 사용되는 프로판과 부탄을 구성할 수 있다. 나아가 탄소원자가 이보다 많아지면, 석유가 되기도 하고, 이보다 더 많아지면 폴리에틸렌과 같은 (가령 비닐봉지와 유사한) 고분자가 형성될 수 있다. 즉 분자적 관점으로 시각을 확대하면, 분자는 길이에 따라 소분자에서 고분자까지 다양한 물질들을 형성하며, 이들은 완벽하게 다른 특성을 보인다.독일 철학자 헤겔은 사회변화를 물의 끓는 현상(가령 물이 100℃까지는 액체의 형태이나, 그 온도가 100℃가 넘어가면 수증기로 변화되며 질적으로 물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현상)에 빗대어 "양적변화의 질적변화로의 전환 (양질전환)"을 논한 바 있다. 197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필립 앤더슨 교수는 1972년 사이언스지에 기고했던 'More is different'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런 헤겔의 철학이 과학의 영역에서도 일어난다는 논리를 설파했다.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과학발전의 축적은 기술발전으로 전환된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해 왔다. 다시 말해 "기술의 길이는 과학의 길이에 기인한다"는 점을 숙고하고자 한다. 정낙천 (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정낙천 (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
[CEO 칼럼] 110대 국정과제 통해 바라본 지방기업 성장 필수요건
오늘은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일이자, 윤석열 정부의 탄생일이다. 국민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삶의 문제가 개선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에 주어진 과제가 결코 가볍지 않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지난 3일 시대적 소명과 국민적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향후 정부의 운영방안에 대한 밑그림으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였는데, 이 국정과제는 앞으로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앞서 언급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는 급변하는 세계사적 환경에서 모든 국민이 함께 잘 사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어가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최근 지방의 경우 청년인구 유출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지역경제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지방기업들은 우수한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 산업을 영위하는 지방기업들의 구인난은 다른 산업의 구인난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 산업의 경우 사람이 가장 중요한 기업의 자산이기 때문에, 우수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 산업인 소프트웨어(SW) 산업은 장비와 자재 수급 문제에 영향을 받는 제조업이나 고객과의 접근성이 중요한 서비스업과 달리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어 가는 데에 있어서 지방에서 SW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내 우수 인재가 지방기업에 취업함으로써 지방기업이 성장하고, 이것이 지역 경제 발전을 통한 지역 거주 환경 개선에 기여하여 우수 인재가 계속적으로 지방기업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선순환적 연결고리가 형성되어야 가능하다. 고용의 선순환적 연결고리는 구직자, 지방기업, 정부 및 지자체가 함께 개선의 노력을 해야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원과 정책적 유인책을 다수 보유한 정부 및 지자체가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는 클라우드, SW육성, 대규모 AI R&D 추진 등 민관 협력을 통한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 실현 정책이나, 디지털 인재양성 인프라 구축을 통한 100만 디지털인재 양성 정책, 초광역권 선도기업 육성, 지역인재 정착 지원 등 지역 중소기업 생태계 조성 정책, 강소형 스마트시티 조성 정책 등이 이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지난 2일 대구시에서 고용창출 효과와 청년층 선호가 높은 지식 서비스 기업에 대한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하기 위해 '대구시 기업 및 투자유치 촉진 조례 시행규칙'을 개정해 공포·시행하는 것이나, 동대구벤처밸리를 조성하여 입주기업에 대한 R&D 예산, 입주기업 간 교류 환경 조성, 기반기술 인프라 지원 등의 기업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지방기업 육성을 통해 지역 경제 발전을 이루는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잘 갖추어진 물적 설비 안에 인재가 없다면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결국 윤석열 정부에서 표방하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실현을 위한 첫 단추 역시 결국 사람에 대한 정책이 아닐까.박윤하 우경정보기술 대표박윤하 우경정보기술 대표
[여의도 메일] 5월의 장미
해마다 5월이 되면 접시꽃, 찔레꽃, 때죽나무꽃, 이팝나무꽃, 라일락 등 온갖 꽃들의 향연이 벌어진다. 계절적으로 보면, 지금이 대구에 한더위가 오기 전 향긋한 봄바람을 느끼며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때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년간은 매우 달랐지만, 올해 5월은 각종 행사가 참 많은 가정의 달이 될 것 같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에 가족의 생일이나 제사까지 있으면 한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다. 올해는 20대 대통령 취임식과 6월 지방선거 운동 기간까지 포함되어 있어 필자와 같은 정치인들은 더욱더 바쁜 한 달이 될 것 같다.5월의 꽃 중에서 장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장미는 특유의 아름다움과 진한 향기 때문에 관상용과 향료용으로 재배되다가 개량 원예종까지 2만5천 종이나 개발되었고, 현존하는 것은 7천 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서아시아에서 유럽지역에 걸쳐 자연교잡에 의한 변종이 많이 생겨났고,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주로 유럽 남부에서 많이 재배되다가 전 세계로 널리 퍼진 것이다.유럽의 역사에서도 장미는 빼놓을 수 없다. 중세 유럽 왕가(王家)들은 가문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문장(紋章)을 사용했는데, 잉글랜드의 랭커스터 왕가의 문장은 붉은 장미였고, 요크 왕가의 문장은 흰 장미였다. 잉글랜드는 프랑스와의 백년전쟁 후 심한 왕권 분쟁을 겪게 된다.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잉글랜드의 왕권이 많이 약화하였기 때문이다. 이 왕권 분쟁의 중심에는 색깔이 다른 장미 문장을 쓰는 랭커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가 있었다. 모두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다.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를 두고 1455년부터 1487년까지 각축을 벌이던 이 두 왕가의 전쟁은 그들을 상징하던 장미 문장에 빗대어 붉은 장미와 흰 장미의 전쟁, 이른바 장미전쟁으로 불린다. 섭정인 삼촌이 전임 왕인 조카를 런던탑에 유폐하고 살해하는 '영국판 단종애사'도 이 과정에서 일어났다.이런 장미전쟁의 역사는 현재 잉글랜드 축구 구단의 경쟁자 관계를 '로즈 라이벌리(Roses Rivalry)'라고 칭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랭커셔주가 연고인 맨유의 유니폼은 붉은색, 요크셔주가 연고인 리즈는 흰색 유니폼이니, 이 둘의 경쟁도 장미와 관련하여 표현하고 있다.장미전쟁은 결국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튜더가 승리함으로써 끝나게 된다. 하지만 헨리는 붉은 장미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두 집안의 상징인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합한 '결합 장미 문장'을 왕가의 새로운 상징으로 채택하였고, 헨리 7세로 왕위에 등극하면서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가진 튜더 왕조의 새 시대를 열었다.며칠 뒤 5월12일과 13일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선관위에 후보 등록하는 날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많은 이들이 등록하고 각자 나름의 정책공약을 발표하면서 유권자의 선택을 호소한다. 장미전쟁이 두 집안의 결합으로 끝이 난 것처럼 이번 지방선거는 시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하되 그 결말은 모든 국민이 평안한 대한민국으로 귀착되기를 바란다.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후보자들과 시민 모두에게 5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화합과 축제의 장이 되어 행복하고 희망이 가득한 진정한 계절의 여왕이 되었으면 좋겠다.류성걸 국회의원 (국민의힘)류성걸 국회의원 (국민의힘)
[성현 생각] 정성어린 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누군가의 보호와 돌봄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사랑으로 양육되고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가족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 공동체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우리 모두의 정성이 어린 이가 바로 어린이다. 정성어린 이. 그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다.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단상지대] 인간의 에고이즘
얼마 전 서가를 정리하다 우연히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1892~1927)의 한국어판 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자들의 번역 내용이 어떤지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꺼내 펼쳐 보다가, 인간의 추악한 내면과 에고이즘에 천착한 작가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거의 무명이던 시절에 집필한 작가의 초기작 '라쇼몽(羅生門)'(1915)을 골라 읽었다. 라쇼몽은 9쪽 분량의 단편소설이지만 인간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일본에서는 거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 걸작이다. 소설 내용은 이미 숙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 새삼 이 소설에 다시 눈이 가게 된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수많은 미디어와 SNS를 통해 사람들의 칼날 같은 분노와 '내로남불'식 이중 잣대를 목격하며 나 자신을 위시한 인간의 에고이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라쇼몽'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혹자들 중에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영화는 소설의 제목과 무대만 차용했을 뿐 스토리는 전혀 다르다. 소설의 내용은 헤이안시대(794~1185)라 불리던 시기에 교토의 스자쿠대로(朱雀大路)남쪽 끝에 있는 라쇼몽(2층 누각이 있는 도성 정문)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교토는 지진과 회오리바람, 화재와 기근 등의 재앙이 2~3년간 이어져 장안이 너무나도 피폐해진 탓에 라쇼몽도 사람들이 송장을 버리고 가는 을씨년스러운 장소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해질 무렵 하인 한 명이 라쇼몽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주인집에서 해고된 신세였다. 사내는 앞날을 걱정하며 굶어 죽을지, 도둑이 될지를 고민하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기 위해 누각 위를 살폈다. 그러다 방치된 여러 구의 시체들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서 죽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파를 발견한다. 시체를 대상으로 한 노파의 도둑질에 극렬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느낀 사내는 힘으로 노파를 제압하고 그녀의 악행을 매섭게 추궁한다. 그 사내는 노파를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도 도둑이 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노파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분노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놀라서 바들바들 떠는 노파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생사여탈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판단한 순간, 사내는 증오심보다는 일종의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한편 사내에게 자신의 악행을 추궁당한 노파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죽은 자의 생전 악행을 들먹이며 당해도 싸다고 폄훼하는 한편, 자신의 행동에 대해선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를 듣고 있던 사내는 노파가 하는 말을 그대로 이어받아 "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신세"라며 노파를 쓰러뜨리고 가진 것이라곤 걸친 옷 하나밖에 없는 남루한 노파의 옷을 빼앗아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달아나 버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라쇼몽'의 문학적 가치를 운운하기 이전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내와 노파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 시대의 인간상이 겹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의 도둑심보에는 눈을 감고, 타인의 도둑질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요즘 유행어로 '내로남불'식 에고이즘의 발현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에고이즘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도 불변하는 감정인 모양이다.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설파했듯, 백여 년 전 일본 근대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오늘도 나는 내안의 '내로남불'과 에고이즘을 경계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온두라스의 여성 대통령
온두라스라는 나라는 1천만 조금 안 되는 인구에 국토는 남한보다 조금 크다. 이 나라에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취임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남편이 이 나라 대통령이었으나 쿠데타로 축출되어 14년 와신상담 끝에 작년 대선에서 아내가 현직 대통령을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그녀는 여성권익 신장을 공약하였고 이제 그 공약을 실천해야 할 때다.온두라스는 기독교 국가면서 한 세기 동안 보수 및 군사정권이 집권하여 여성권익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응급피임약을 법적으로 사용금지하고 있으며, 또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약방에서 버젓이 시판되는 응급피임약은 가격이 10달러나 되니 사람들은 사기 힘들다. 여성피살 비율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고 여성 1/4이 19세 이전에 임신을 한다. 최근에 한 대학생이 두 동료여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하여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이 증언을 거부하면서 유아무야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파장은 컸다. 여성에 대한 더 근본적인 문제와 종교의 정치 개입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카스트로 대통령은 보건부 장관에게 응급피임약 사용의 합법화를 추진하라고 하였으나 그는 의학적·종교적 이유를 늘어놓는다. 그는 먼저 종교지도자의 동의를 얻어야겠다고 하니까 운동권에서는 세속국가에서 동의는 무슨 동의냐고 아우성이다. 의회를 보수 세력이 점령한 터라 그녀가 종교계를 거스르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응급피임을 합법화하려다 실각한 것이 바로 남편의 정부가 아니었던가. 응급피임약은 성폭행의 경우부터 점진적으로 사용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아침을 열며] '대화의 문'만 열어 둔 '강 대 강' 대결 안 된다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지난주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발표가 있었다.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를 국정 비전으로, '국익, 실용, 공정, 상식'을 국정운영 원칙으로 제시했다. 또한 6대 국정 목표와 20개 약속, 이를 실현하기 위한 110개 국정과제를 발표했다.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 구현'을 목표로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대북 비핵화 추진과 '북한 비핵화 실질적 진전 시' 평화협정 협상을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또한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북 제재'를 위해 국제공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남북 경제협력 로드맵'을 제시하여 북한 비핵화를 견인할 것이며, 특히 대화의 문은 열어두면서 원칙에 기초하되 정세와 국익을 고려한 실용과 유연성이 조화된 '남북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반면 '한국형 3축 체계', 즉 선제적 타격 능력인 '킬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인 '다층 미사일 방어체계', 그리고 '압도적 대량 응징보복 능력(KMPR)'을 확보하여 대북 억제 및 대응 능력을 강화할 것을 국방 분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위한 한·미 공조시스템 구축 및 정례연습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실질적으로 재가동할 것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김정은 총비서는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고 밝혔으며,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핵무기를 전쟁 방지뿐만 아니라 근본 이익 침탈 시도 시에도 사용하겠다는 것을 밝혔다.또한 "지금 조성된 정세는 공화국 무력의 현대성과 군사 기술적 강세를 항구적으로 확고히 담보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강구할 것을 재촉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우린 격변하는 정치 군사 정세와 앞으로 온갖 위기에 대비해 우리가 억척같이 걸어온 자위적이며 현대적인 무력 건설의 길로 더 빨리, 더 줄기차게 나갈 것"이며, "특히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속적인 핵과 미사일 실험은 물론 고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선언한 것으로, 북한은 이미 2018년 '한반도 평화의 봄' 이전으로 완전히 회귀했음을 말해준다.내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2018년 이전의 한반도 상황을 맞이해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 어려운 한반도 정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강력한 억제력'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가 하지 못한 적극적인 유인책과 시기 적절한 결단들이 필요하다. 북한은 이미 '비핵 개방 3000'은 물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반도 운전자론'을 경험했다. 단지 '문을 열어두고 기다리는 것'과 '강 대 강' 대결로는 '남북관계 정상화'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
[하용준의 閑談漫筆] 활터 이야기
우리나라 활쏘기의 공식 명칭은 국궁이 아니라 궁도다. 일본에서는 큰 대나무활인 죽궁을 쏘는데 이를 규도(弓道)라고 한다. 우리도 일본과 똑같은 한자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대한궁도협회 산하 약 400개소의 궁도장에서 3만5천여 명의 동호인들이 활쏘기를 즐기고 있는데 매년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경향 각지에서 크고 작은 대회가 열린다.궁도장 사대에서 과녁까지는 145m. 큰 야구장의 홈에서 중앙펜스를 훌쩍 넘기는 홈런과 비슷한 거리다. 그 먼 거리에 아파트 현관문짝 두 장 크기의 과녁을 세워 놓고 활을 쏘는 것이다. 힘이 세다고 해서 잘 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요인이 정교하게 복합적으로 잘 작용해야 까마득한 과녁을 맞힐 수 있는 멋진 전통무예다.조선시대의 무과 규구(規矩·시험과목)에 활쏘기는 철전 정량전 유엽전 편전과 같이 화살 종류에 따라 여러 과목이 있었다. 옛 문헌에는 활쏘기를 사례(射禮)라고 하였다. 각 지방에서 실시하는 활쏘기 대회를 향사례, 국가 차원에서 실시한 것을 대사례라고 한 데서 활쏘기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인 한편 국무(國武)로서 중요시하였음을 잘 알 수 있다.활은 쏜다고 하지 않고 낸다고 한다. 쏜다고 하면 표적에 대한 집착의 느낌이 난다. 그에 비해 낸다고 하면 집착이나 승부를 떠난 겸양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활쏘기는 도량을 넓히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생활스포츠가 되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갈등이 없는 궁도장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바둑 장기와 같은 기예는 하급자가 절대로 고단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활쏘기는 다르다. 신사(新射·갓 입문한 궁사)와 구사(舊射·관록이 있는 궁사)가 나란히 서서 쏘는데 쏠 때마다 결과가 다르다. 신사가 자꾸 더 잘 맞히면 구사는 슬그머니 심기가 불편해진다. 활이 좀 된다 싶으면 우쭐거린다. 함부로 모두를 가르치려고 든다. 사두(射頭·활터의 수장) 사범 등의 권좌에 앉고 싶어 한다. 온갖 없는 말을 지어낸다. 질투와 험담은 일상사가 된다. 끼리끼리 패거리를 짓고 분란을 야기한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편이 우위에 서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오직 나만 내 편만 옳다. 급기야 점입가경의 행태가 벌어진다. 극단적인 대립으로 법적 소송도 불사한다. 드디어 보다 못한 행정기관이 나서서 궁도장을 폐쇄하는 사태에 이른다.세상 어디에나 경쟁이 있는 한 호승심은 영원하다. 하지만 진정 잘난 사람은 스스로 뽐내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낮잡아 보지 않는다. 그들도 다 잘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꼭 식견이 얕고 속이 좁은 못난 사람들이 무단히 자만하여 경쟁과 대립을 일삼으며 분란을 키우다가 끝내 전체를 파국에 이르게 한다. 일부 궁사들이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채 패거리를 지어 싸우기만 하다가 마침내 모두의 활터를 잃게 만드는 것처럼 자격미달 정치인의 억지스러운 아집과 성찰 없는 독선은 당파와 정쟁을 넘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터전을 잃는 신세가 되게 한다.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소속 당을 보고 무조건 찍을 일이 아니라 오직 사람의 자질을 잘 헤아려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 정치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좌우 극단적 대립'이라는 시대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일으켜야 할 때다. 해묵은 난제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아득한 145m 과녁으로 화살 한 발을 피웅 날려본다. 하용준 (소설가)하용준 (소설가)
[경제와 세상] 복합위기와 정책대응
지금 세계경제는 복합적인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IMF의 분석에 의하면 세계경제 특히 아시아경제는 세 가지의 폭풍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 미국의 인플레 제어를 위한 긴축통화정책, 둘째 중국의 코로나 봉쇄로 인한 경제침체,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농산물 가격폭등에 기인한 물가상승이다. 첫째 미국은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하며 2조3천억달러를 풀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자 4조달러를 추가적으로 공급하며 경기부양을 진작하였다. 13년 동안 계속된 양적완화정책이 미국의 경기회복에 도움은 되었으나 인플레를 촉발시킨 원인이 되었다. 이를 잡기 위해 미연준은 올해부터 금리를 인상하였고 이것은 우리나라 및 대외개방적인 아시아국가에서 자금유출을 가속화시키며 금융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오미크론을 통제하기 위해 도시를 봉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 3월 상하이를 봉쇄했는데 이로 인해 매월 46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한 상하이는 중국의 금융·무역 허브로서 중국 전체 경제의 25%를 차지하는 창장삼각주의 핵심도시이기에 이곳의 봉쇄는 중국경제뿐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IMF는 중국의 올해 성장률을 역대 최저인 4.4%로 전망하는데 우리나라도 최대수출국인 중국의 경제침체로 인해 수출이 저조하여 올해 들어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전 세계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OECD는 올해 대다수 회원국에서 에너지가격은 26.6%, 식품물가는 8.6% 오른 것으로 발표했는데 세계은행은 올해에만 에너지는 50%, 식품은 23% 더 급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이 종식되어도 향후 3년간은 높은 가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고 있다.한편 개방경제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러한 위기상황으로 인해 물가는 10년 만에 4%대 고공비행 중이고 고금리, 고환율로 기업들의 경영환경도 크게 악화되고 있다. 특히 높은 환율과 유가 상승으로 역대 최고 수출실적을 내는데도 적자가 발생하여 올해 연간 누계 무역적자가 91억5천700만 달러에 이른다. 무역수지 적자는 한국의 대외지불능력을 보여주는 경상수지를 위태롭게 하는데 올해 2월 국내 경상수지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억4천만달러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코로나 위기대응으로 확장재정을 이어오면서 재정적자 규모가 70조8천억원에 달해 경상과 재정 모두 적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도 단호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 자본유출과 인플레를 막기 위해 우리도 미국처럼 금리를 인상하되 그것이 가계부채를 악화시키고 민간의 투자활동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국가재정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시장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따라서 신정부의 정책선택 범위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 석유파동,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모두 정권교체기 때 경제위기를 경험했다. 대내외적으로 악재가 발생하는 지금도 정권교체기이다. 경제위기를 맞지 않도록 신정부 및 모든 경제주체들이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야 할 때이다. 이영세 (전 대구사이버대 총장)이영세 (전 대구사이버대 총장)
[금요광장] 포스트 팬데믹 시대 업무공간의 미래
예고조차 없이 찾아온 팬데믹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세계를 지배했다. 그 과정에 우리는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재택, 원격, 비대면'으로 대표되는 큰 변화를 겪었고,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도 '일의 미래(Future of Work)'에 대한 논의는 많았다. 그러나, 인류 최대의 위기 속에서도 돈을 벌고 일이 되게 하려는 처절한 노력의 결과, 십수 년으로도 어려웠을 '산업혁명'급 변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별 해제로 코로나 위기의 끝이 예고된 지금, 기업들은 또 한 번의 변화를 준비하며 미래의 업무를 재정의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매킨지(Mckinsey)는 기업들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팬데믹 이후 생존을 위한 업무 정비를 위해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는 위기 대응을 위한 일시적 변화에 대한 재검토다. 전염병이 정점에 달했을 때 일시적으로 운영모델이 변경된 경우, 방역과 고객 안전을 위해 도입된 역할과 프로세스 등은 팬데믹의 종식과 함께 사라지겠지만, 향후를 대비한 강력한 교훈이 될 수 있도록 위기관리 프로세스를 정비해둘 필요가 있다. 둘째는 일상 업무에 대한 영구적 변경 필요성이다. 팬데믹 이전 다소 사치스러운 투자로 여겨졌던 디지털 전환, 자동화(무인화) 등은 팬데믹을 계기로 이제 단순한 업무 편의를 넘어 기업의 생존 경영을 위한 생명선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셋째는 새로운 유형의 업무로의 사업영역 확장이다. 코로나를 계기로 광범위하게 채택된 원격/비대면 트렌드는 업무 프로세스에 기술이 접목되어 만들어낼 새로운 고객 경험과 사업모델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예를 들어, 마케팅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는 '마켓 5.0'을 통해 인공지능, 자연어처리, 센서, 로봇, 가상/증강현실, IoT와 블록체인 등의 새로운 기술이 마케팅 모든 단계에 적용되어 새로운 고객 경험을 창출하는 인간과 기술의 융합을 제안하고 있다. '일'의 미래 변화 방향은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 도시 공간, 교통 시스템, 생활 인프라, 나아가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시스템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뇌관으로 작용한다. 미래 특파원 김미래 기자로부터 미래의 업무 방식과 공간의 변화 방향에 대해 들어보자."지금 저는 통합신공항 옆에 위치한 미래 비즈니스 센터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은 업무공간은 물론, 제품 론칭, 전시, 영업 등이 현실과 가상세계 모두에서 원스톱으로 지원되는 공유형 메타버스 비즈니스 콤플렉스입니다. 이곳의 모든 시설과 서비스는 기업의 수요에 따라 이용 옵션을 선택하여 이용료를 내는 '선택적 구독'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각종 위기상황에 대응 가능한 자동화된 인프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원격 접근이 가능한 메타버스 공간, 방문자를 위한 다양한 생활편의시설 및 통합신공항과 연계한 모빌리티 편의까지 패키지 형태로 제공되는 데다, 지역 대학과 인턴십 및 학위 프로그램까지 제공되어, 전 세계 굴지의 대기업과 벤처들이 앞다투어 '구독' 중입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 새로운 업무공간의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미래 비즈니스 센터에서 김미래기자였습니다."곽지영 포스텍산업경영공학과 산학협력교수곽지영 포스텍산업경영공학과 산학협력교수
[우리말과 한국문학]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기술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의 선조가 누구인지 고향이 어디인지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양지는 석장(錫杖, 승려들의 지팡이)을 부리는 신통한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재를 지내는 등 절에 쓸 비용이 필요하면 그는 석장에 포대를 걸어서, 신도들의 집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면 석장은 시주의 집으로 날아가 소리를 냈다. 이렇게 하여 포대에 시주가 가득 차면 석장은 다시 돌아왔다. 지금 경주 석장동의 석장사(錫杖寺) 이야기다.양지는 또 손재주가 있어 어떤 물건이라도 잘 만들었다. 영묘사의 장륙삼존상과 천왕상은 물론이고, 사천왕사 탑 아래 있는 팔부신장, 법림사의 주불과 좌우의 금강신장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라 한다. 지금의 경주시 사정동에 있었던 영묘사 장륙삼존상을 만들 때는, 그 스스로 선정에 들어 부처를 친견한 후 그 모습 그대로 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안의 남녀들은 거기에 감동되어 다투어 진흙을 나르며 양지를 도왔다.당시 사람들이 부역을 하며 불렀다는 향가가 바로 풍요(風謠)이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서러운 이 많구나. 서러운 중생의 무리여, 공덕 닦으러 온다"라 한 것이 그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서러운 이 많구나' '서러운 중생의 무리여'라고 하고 있으니, 부역하는 사람들 모두가 괴로움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괴로움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공덕을 닦으러 온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풍요를 불렀던 민중들은 무엇이 괴로웠을까? 작게는 진흙을 나를 때 발생하는 육체적 고통이고, 크게는 생사에 떨어진 그들의 삶 자체이다. 그들이 온 장소가 노동의 현장일 수도 있지만, 이 세상 즉 고해(苦海)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짧은 노랫말에 '온다'를 다섯 번이나 연거푸 말했으니, 이들은 지금 괴로움을 절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스스로가 모두 서러운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고민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괴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신라사람들은 인간세상의 고통을 자각하며 공덕을 닦아 이것을 극복하자고 했다. '공덕 닦으러 온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양지가 영묘사에서 장륙삼존상을 조성하는데, 진흙을 나르며 돕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이것이 바로 공덕 닦는 일이었다. 이로써 고해에 떨어진 서러운 삶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신라사람들에게 있어 공덕 닦기는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대표적인 기술이었던 것이다.우리는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해 속에 허덕인다. 나서 괴롭고, 늙어서 괴롭고, 병들어 괴롭고, 죽어서 괴롭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해 괴롭고, 보기 싫은 사람은 봐서 더욱 괴롭다. 생멸의 시공간 속에 이미 들어온 우리 인간들, 이러한 괴로움의 실상을 제대로 자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석가모니도 카필라성의 동·남·서·북 4문 밖으로 나가 인생의 괴로움을 철저하게 자각하였기 때문에, 출가해서 성도(成道)할 수 있지 않았던가. 곧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 세상에 온 자들은 모두가 필연적으로 늙고 병들고 죽는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노쇠와 죽음의 수렁! 신라인들은 공덕을 닦으며 이를 벗어나고자 했다. 극락과 지옥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고해를 자각하며 공덕을 닦는 자리, 그곳이 바로 극락이다. 공덕의 종류와 그것을 닦는 방법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 신라사람들은 고통에 따른 기쁨의 전환술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영남시론] 안보와 평화 균형정책 준비해야
새 정부 출범으로 대북정책에서 큰 변화가 예견된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에 대해 '힘을 바탕으로 한 평화' '남북관계 정상화'를 표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으로 북한에 끌려다녔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실용을 앞세우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성과를 얻으려면 지난 5년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의 대북정책을 두루 살피면서 안보와 평화를 균형 있게 설계해 나가야 한다. 남한의 안보와 외교에는 진영 논리가 절대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진보 정부에서도 안보에 힘을 쏟았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6.5%로 이명박 정부 5.3%, 박근혜 정부 4.0%보다 오히려 높았다. 보수 정부에서 한미동맹이 원만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주문했다.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에 한반도 긴장 해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자 미국은 2만여 명의 주한미군을 감축했다. 박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1972년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될 수 있었다.새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를 위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국민 공감대 형성이 첫 단추다. 국민이 분열되면 북한 설득은 물론 국제사회와의 협상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사진 설계에는 다음과 같은 로드맵이 필요하다. 첫 단계에서는 안보에 대한 국민 불안을 덜어주어야 한다. 일부 국민들은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언급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새 정부는 현재 상황을 관리하고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평화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평화는 지키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결이 좋은 본보기다. 이스라엘이 힘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압도하지만 평화정착에는 실패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남한이 군사력 증강으로만 대응하면 북한은 핵무력 강화로 나와 지금보다 더 위태로운 '안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2단계에서 새 정부는 북한과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만한 새로운 접근법 발굴도 새 정부의 몫이다. 이를테면 가칭 '대북 인도협력 원칙'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북한의 자연재해, 식량부족, 그리고 보건협력 등에 관한 협력방안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무상으로 지원하는 규모와 차관으로 지원하는 규모도 원칙에 담겨야 할 내용이다. 이러한 원칙이 만들어지면 진보진영도 수용할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마련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화구축을 장기적으로는 준비해 나가야 한다. 평화구축은 남북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신뢰는 사회문화공동체를 만들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광범위한 남북교류협력을 통해 가능하다. 남북한 교류협력의 확대는 경제공동체 형성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지혜와 전략도 중요하다.지난 정부들의 대북정책을 큰 틀에서 보면 진보 정부에서는 남남갈등이 심화되었고, 보수 정부에서는 남북갈등이 격화되었다. 보수 진영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새 정부는 남북갈등 관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 만들기에 큰 성과를 이루는 '관계 맺기'에도 최선을 다해주기를 희망한다.김정수 대구대 교수김정수 대구대 교수
Now & Hot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원숭이띠 5월 19일 ( 음 4월 19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부동산
건강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