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변호사
나는 지난 주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쓴 '유언노트'라는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내가 주재하는 독서모임이라 책을 먼저 읽고 소회를 말하며 모임을 이끌어 나갔다. 책에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 나라는 2018년 2월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이 연명의료결정법의 도입 배경에는 '보라매 병원 사건'과 '김할머니 사건'이 있었다. 보라매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남자 환자의 부인이 의료진에게 퇴원을 강하게 요구했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떼면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고 안된다고 했지만 환자의 부인은 계속 퇴원을 요구했다. 할 수 없이 의료진은 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보호자에게 설명했으며,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귀가 서약서를 작성하게 한 후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리고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뗀 후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환자의 부인은 살인죄로,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았고 이후 의료계에서는 연명치료 중단 요구에 대하여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김 할머니 사건은 이렇다. 김 할머니는 평소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자녀들에게 밝혔다. 어느 날 김 할머니가 병원에서 폐암 조직검사를 하다가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어 인공호흡기를 하고 중환자실에 가게 되었다. 자녀들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했던 어머니의 유지를 고려하여 병원에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하였다. 병원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거부하였고 김 할머니 자녀는 법원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게 해 달라고 소를 제기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라고 판결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자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암투병 중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셨다. 아버지가 임종하시는 날 의사가 나에게 물었다. "심폐소생술 할까요." 나는 "그럼 아버지가 살 수 있나요"라고 했다. 그러자 의사가 "아니요"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신 사실을 떠올렸고,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기도삽관이나 인공호흡기 착용을 시도하지 않았다. 만약 아버지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지 않으셨다면 나는 연명치료를 해보려고 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가족들도 보지 못하고 외로운 시간 존엄하지 못하게 계시다가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유언장을 쓰는 시간도 가졌다. 나는 모임 참가자들에게 우리에게 10분 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며 알람을 맞추었다. 다들 진지하고 다급하게 본질적인 얘기만 남기려고 10분간 열심히 썼다. 훌쩍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모임 참가자들에게 그 유언장은 봉투에 넣고 봉인해서 삶의 의미를 잃어간다고 느낄 때 뜯어서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법률적 요건에 맞는 자필 유언장에 대해서 별도로 알려주었다.
모임 참가자들이 유언장을 쓰는 동안 나도 작성했다. 너무 슬퍼서 울면서 진지하게 작성했는데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남동생에게 남긴 내용만큼은 좀 어이 없었다. 남동생에게 남긴 내용은 "00야 누나가 어릴 때 때려서 미안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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