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주)루트랩 대표이사
인구가 빠져나가고 학교가 사라지며, 의료기관과 상점이 문을 닫는 지방의 현실은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기초지자체 중 절반 이상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고, 일부 군 단위 지역은 향후 20년 내 행정구역 자체가 통폐합될 수 있다는 전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국비 보조금과 정착지원금, 청년유입 인센티브 등 수많은 대책이 시행되었지만, 실제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사람은 좀처럼 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무를 이유'와 '기여에 대한 보상'입니다.
이제 지방소멸 대응은 단순한 행정 보조금 지급이 아니라, 참여 기반의 경제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는 기술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지역 인센티브 모델입니다. 지역화폐, 디지털 배당, DAO(탈중앙화 자율조직)를 결합한 이 실험은 지방행정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기존의 지역화폐는 발행 비용이 크고 관리가 복잡하며, 부정사용 사례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는 발행과 유통이 자동화되고,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기록되며, 특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에만 사용 가능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 인프라 공사에 일정 비율 이상 참여한 업체에만 보상 화폐를 지급'하거나, '지역 청년이 지역 내 상점에서 사용하는 경우에만 10%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구조가 가능합니다. 거버넌스 로직이 스마트 컨트랙트로 내장되는 겁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경제 유인책을 넘어 지역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지역주민이 일정한 기간 동안 지역 경제에 기여하면 디지털 자산을 통해 보상을 받고, 이 자산은 지역 내 서비스나 투자 프로젝트에 다시 사용되도록 설계된다면,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구조적 유인이 형성됩니다. 이때 지역주민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참여자이자 공동 설계자가 되는거죠.
물론 이는 단순한 기술 구현의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행정 신뢰, 데이터 기반 평가 체계, 법적 정합성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일방적 정책 전개 방식으로는 지역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이겠죠. 블록체인은 단지 수단일 뿐이며, 핵심은 '기여하는 만큼 돌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기술이 새로운 지역 공동체의 촉매제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서 있습니다. 지방소멸은 단지 인구의 문제가 아니고 관계의 단절, 순환의 단절, 신뢰의 단절이 낳은 구조적 붕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 단절을 다시 연결하고, 지역이라는 삶의 터전을 되살리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단지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지역. 그것이 지방소멸을 막는 전략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궁극적으로 '지역에 기여할수록 살기 좋아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장기 거주자에게는 지역 내 토큰 기반 배당이 주어지고, 지역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나 커뮤니티 기금 조성으로 연결된다면, 참여와 보상 간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결국 지역이란 물리적 장소를 넘어, 신뢰와 교환,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플랫폼으로서 다시 정의되어야 합니다. 기술이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고, 관계를 재설계하며, 거주를 넘은 '함께 사는 삶'을 가능케 한다면, 우리는 다시 지방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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