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목 시인
나는 부츠 밑창이 썩은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샀다 (중략) 꽃집에서 사귄 시클라멘 화분은
처음 만났을 때 내 멋진 신발을 칭찬했고/ 두 번째엔 못 본 척했고
세 번째엔 문득 울었다
넌 걸을 수 있지/ 너 같은 인간은 걸을 수 있어
그래서 멀리 떠났지 (중략) 사기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춤을 추었다
기쁘게 기쁘게
나는 기쁘다 나는 행복하다 (중략) 그 화분은 우리집에서 죽었고 (중략) 너 사랑을 했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피폐해서 나는 신발을 벗다 말고 주저앉아 신나게 울었다
그래 맞아/ 내 발이 이렇게 생겼었지 확인할 수 있었던
어떤 하나뿐인 꽃의 장례식이었다.
-신이인, "값"
이 시는 누군가 버린 신발을 산 사람이 무엇도 버리지 않기 위해 화분을 사들고 오는 긴 전반부를 가졌다.
속는 줄 알면서도 속는다지만 속지 않겠다는 다짐이 자신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은 몇 마디 말이나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다.
말하자면 신발을 벗다 말고 주저앉아 우는 일이나 시클라멘의 표정을 읽고 말을 듣는 순간은 어떻게도 요약되지 않는다.
오직 시를 통해서만 치를 수 있는 단 한 번의 장례식을 통해서만 그 순간은 진짜 제 모습을 보여준다.
꽃의 장례식에서 비로소 화자가 제 '발'을 보듯이 말이다.
그 순간, '발'은 죽음이 뽑아올려 투명하게 흔들고 있는 시끌라멘의 뿌리인지도 모른다.
잔뜩 흙이 묻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빈티지 부츠를 신었던 사랑, 자신을 달래기 위해 춤을 추었던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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