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심 변호사가 바라본 세상] '미(美)터'를 찾아서

  • 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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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20  |  수정 2025-05-20 07:48  |  발행일 2025-05-2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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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내가 활동하고 있는 '사단법인 여성과 도시'에서는 매년 아름다운 건축물을 찾아 '미(美)터 상'을 시상하고 있다. 우리가 찾는 곳은 그냥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라 재생을 통해 아름다운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이전에는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시상하였는데, 올해부터는 대상지를 경북권까지 넓혀 경주, 청도, 영천에서 공모를 받았고 그 결과 경주 '황촌마을'에 소재한 아름다운 마을 호텔 2곳이 선정되었다. 우리 회원들은 지난 5월 초 경주 '황촌마을'에 다녀왔다.

옛 경주역 인근에 위치한 '황촌마을'은 한때 번화했던 경주시의 중심이었지만, 신도심 개발과 함께 변두리로 밀려나 점차 잊혀 가던 마을이었다. 낮은 한옥과 양옥 지붕들이 서로 등을 맞댄 채 서 있었고, 세월이 겹겹이 묻은 골목은 고요했다. 처음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동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몇 걸음 더 들어가자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기와를 그대로 살린 고택에 감각적인 간판과 외등이 어우러지고, 작은 마당에는 현대적인 조경이 숨 쉬고 있었다. 오래 된 집들을 개보수해 여행자들에게 대여하는 요즘 도시재생의 새로운 방식이었다.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지역의 시간과 정서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기능과 감각을 입힌 것이다. 경주 황촌마을은 그렇게 살아나고 있었다. 그 시작은 청년 창업자 몇 명이었다. 이들은 폐가나 빈 집들을 하나둘 매입해 손수 고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숙박 시설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카페나 공방, 전시 공간으로도 쓰며 마을의 분위기를 새롭게 연출했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20여 곳의 마을호텔은 어느덧 인스타그램을 통해 '감성 숙소'로 알려지며 젊은 여행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황촌은 단지 옛 풍경을 간직한 마을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었고 도시 속 '느린 삶'의 모델이 되었다.

인구 감소로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의 버려진 창고나 유휴부지 등을 지역경제 활성화 거점으로 만드는 민관협력 사업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전남 강진에는 외지인에게 월 임대료 1만원에 집을 빌려주는 '강진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 있다. 그리고 전남 완도군 노화도 최초의 의료시설 완도대우병원이 미술관으로,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미곡창고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될 계획이라고 한다.

해외에도 이런 사례가 많다. 우리보다 규모가 크지만 동기 부여는 비슷하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다. 한 세기 가까이 런던의 산업화를 이끌던 대형 화력발전소였으나 도시 재편 속에서 폐쇄되었고 오랫동안 흉물처럼 방치되었다가 현대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이제 테이트 모던은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문화 랜드마크이며, 도시재생의 성공 아이콘이 되었다. 일본 나오시마 역시 주목할 만한 곳이다. 산업 쇠퇴와 고령화로 황폐해진 섬에 미술관과 예술작품이 들어서며 '예술의 섬'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도시 재생 사례의 공통점은 바로, 사람이 떠난 공간에 예술과 감각, 삶이 다시 들어왔다는 점이다.

도시 재생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떠난 공간에 다시 사람이 돌아오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가치를 존중하며 그 위에 새 시대의 숨결을 얹는 일이다. 경주 황촌마을의 따뜻한 저녁 햇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 빛이, 다른 도시의 오래된 골목에도 스며들기를 바라며, 다음 미(美)터 상 공간도 기대해 본다.

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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