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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
피카소는 수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눈 뒤 1943년 61세 때 21세의 새파란 아가씨 프랑수아즈 질로와 동거에 들어갔다. 질로가 팔로마를 낳았을 때 피카소는 67세였다.
피카소가 이젤 작업을 하면 팔로마는 바닥에 종이를 펴고 그림을 그렸다. 팔로마가 늙은 아빠와 같이 산 것은 네 살 때까지였다. 10년을 동거하고 질로는 1953년 자녀를 데리고 집을 나와 새 남편을 만났다. 그녀가 집을 나온 이유는 1964년에 출간한 그녀의 회고록 '피카소와의 삶'에 나와 있다. 피카소는 욕정이 "미노타우루스" 같았고 담뱃불로 질로의 뺨을 겨냥할 정도로 잔혹했다. 피카소가 노발대발하여 그들과 인연을 끊고 자녀의 친부 확인까지 해주지 않았다. 질로도 화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2023년 101세로 눈을 감았다.
1973년 피카소가 타계하자 유산이 어마어마했다. 수천 점의 작품 외에도 저택 5채, 현금, 금괴, 주식 등. 미망인, 정부, 자녀, 손주 사이에 그 재산을 나누는 데에 꼬박 6년이 걸렸다. 팔로마는 친딸로 인정 못 받다가 그가 죽은 그 이듬해에 법원에서 인정을 받았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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