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내년 부산 선거 박 터지겠네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민주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부산을 콕 집어 한 말이다. 한 참석자는 "대선 과정에서 부산이 치열하지 않았느냐"며 "이 대통령은 부산의 공약을 잘 지킬 테니 내년 선거도 열심히 준비하라는 취지였다"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PK 공략에 적극적이다. 의욕도, 기대도 넘친다. 세종에 있는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지시는 첫 국무회의에서 바로 나왔다.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옛 현대상선) 부산 이전, 북항 개발, 해사 전문법원 신설, 동남권 금융기관 설립까지 공약 이행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다분히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그렇다고 일방적 선심은 아니다. PK에서 거둔 역대 최고 득표율, 특히 부산에서 지지율 40%를 넘긴 성과가 배경이다. PK는 표를 줬고, 이 대통령은 정책으로 응답하는 모양새다. 표의 가치를 실리로 돌려받는 PK의 전략이 통한 셈이다. 민주당 측은 "목표로 했던 부·울·경 40% 득표율을 달성했다"라고 자찬했다. 동진(東進) 전략의 안착 가능성을 엿본 것이리라.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도 고향에서 마(魔)의 40%(19대 38.71%)를 넘지 못했다.
대구·경북(TK)은 어떤가. 민주당은 'TK 콘크리트'를 끝내 뚫지 못했다. 애초 기대한 득표율 30%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거머쥐며, '국민의힘=TK당'이라는 사실만 곱씹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TK가 지금껏 보수 정권에서 실익을 챙긴 적도 별로 없다. 선거 후엔 항상 들러리로 전락했다. 잡은 물고기만 득실대는 곳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듯이 보수도, 진보도 'TK 공약'에는 무관심한 게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PK와 달리, 특별한 정책이나 대형 공약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적 고립의 그늘만 짙게 드리울 뿐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새 정부와의 소통 채널이 거의 없다는 점은 큰 핸디캡이다. TK 신공항 등 대형 국책사업 추진과 내년도 국비 확보에도 어려움이 뒤따르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맹목적인 짝사랑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건 드라마나 현실 세계나 매한가지다.
이제 TK의 정치적 편애가 과연 지역 발전에 실리를 가져다주는지 진지하게 따져볼 시점이다. TK가 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선 더욱 필요하다. "부산 사람은 '선(先)결제'를 안 해준다. 대선 공약을 얼마나 잘 추진했는지를 보고 내년에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라는 부산 민주당 간부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야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앞다퉈 PK 구애에 나선 것은 이른바 '메기 효과' 때문이다. 당연히 지역사회의 역동성도 TK보다 활발하다.
정치적 명분이냐, 실리냐는 항상 논쟁거리다.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정치 성향이 다양할수록, 경쟁은 치열할수록 득(得)이 많은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TK는 이 경험칙을 외면하다 보니, 홀대와 고립을 불러왔다. 이는 지방 소멸의 다른 어떤 경고음 보다 더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미래가 없다는 신호 같아서. 그렇다면 TK가 나가야 할 길은 명료하다. 짝사랑의 장막을 과감하게 걷어내는 것이다. 포용과 다양성의 가치가 확산하면 더 좋겠다. TK에서도 열린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집단지성(集團知性)이 발현된다면 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나.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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