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의 세상읽기] 2025년 4월에 품는 간절한 소망

  •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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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22  |  수정 2025-04-22 07:08  |  발행일 2025-04-22 제22면
파괴 이기고 평화 향해 솟는

정의와 부활의 시작이기를

헌법정신에 투철한 리더십

깨어있는 시민 집단지성이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야
[홍덕률의 세상읽기] 2025년 4월에 품는 간절한 소망
전 대구대 총장
매년 만나는 4월이지만 그 느낌이 늘 같은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참사의 기억으로 먹먹한 가슴 끌어안고 지낸 4월도 있었고 제주 4·3의 비극에 압도되어 내내 우울하게 지낸 4월도 있었다. 어느 해는 시인 T.S.엘리엇의 '잔인한 4월'을 되뇌며 보낸 때도 있었고, 또 어느 해에는 4월에 세상을 뜬 본회퍼와 마틴 루터 킹, 현진건과 이상화를 추억하며 지내기도 했다.

# 1960년 4월

하지만 청년기의 4월은 대개 1960년 4월의 감격으로 가득했다. 2월28일 대구에서 시작해 3·15와 4·11 마산의거를 거쳐 4·18 고려대학생 시위로 커진 민주화운동은 4월19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의 대규모 혁명으로 발전했다. 급기야 서울 부산 광주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그래도 가라앉지 않자 전국 주요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죽음을 각오한 학생과 시민의 분노와 저항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20일부터 24일까지 인천, 대구, 전주, 익산, 포항, 마산 등에서 학생과 시민의 봉기가 이어졌다. 25일에는 서울에서 대학교수 300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였고 다음 날인 26일, 이승만은 하야했다. 학생과 시민이 계엄과 군경에 맞서 이 나라를 부패와 독재로부터 구해낸 1960년 4월이었다.

어느덧 65년이 흘러 우리는 지금 2025년 4월에 서 있다. 어느 해보다 1960년 4월을 기억하며 '타는 목마름'으로 맞은 4월이었다. 12·3 계엄 후 넉달 동안 너무 어둡고 깊은 나락을 경험한 까닭일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4일 새 빛, 새 희망을 봤다. 헌재가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 것이다. 이로써 국민은 궤변과 선동의 먼지바람을 걷어내고 주권재민과 정의로 향한 좁은 문의 입구를 찾은 것이다. 잃었던 잠과 웃음도 찾았다.

# 아직 갈 길 먼 내란 극복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첫 단추를 꿴 것뿐이다. 깊은 나락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앞으로도 몇 개의 큰 단추를 잘 꿰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내란이 종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미 파면당한 윤석열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의 뿌리다. 그는 지금도 12·3 계엄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극우선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이익공동체로 묶여 있는 권력기관과 주요 국가기관의 책임자들도 그와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검찰과 법원은 그를 풀어줬고 대통령실 압수수색은 지금도 막혀 있다. 권한대행은 내란특검법은 막고 헌재 재판관을 월권 임명하려다 저지당했다. 모두 내란을 연장하려는 기도로 의심받을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증거 인멸은 넉달 넘게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내란 종식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앞서는 우선 과제라는 사실이 현 시기의 절대 명제다.

다음은 내란 가담자와 부역자들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 12·3내란에 함께한 주요 종사자들, 내란에 동조하며 선동한 정치인들, 가짜뉴스로 혹세무민한 극우 유튜버들, 법원을 습격해 폭력을 행사한 이들에 대해서는 불관용의 원칙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서 반복돼서는 안 될 헌정유린·반국가 범죄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코앞의 첫 단추는 국가 리더십 바로 세우기가 될 것이다. 새 리더십의 첫째 덕목은 주권재민의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원래는 따로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기본 덕목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일부 국가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얼마나 헌법정신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개념에 무지한지, 얼마나 반역사적이고 반국가적일 수 있는지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에 대한 의지와 철학을 국가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따져 묻고 요구해야 한다.

# 민주시민의 집단지성

'깨어 있는 민주시민의 집단지성'의 중요성 역시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해 12월3일 밤 장갑차와 총든 군인을 저지했고, 아스팔트 밤샘 외침으로 12월14일 국회 탄핵 의결과 4월4일 헌재 탄핵 결정을 끌어낸 민주시민이야말로 이 난국을 헤쳐갈 사실상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사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 기본권과 헌법, 정론도 팽개칠 반민주 인사들이 정치권과 수사기관과 언론의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는 지금, 역사의 퇴행을 이겨내고 정의를 세워낼 힘은 오로지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집단지성에게만 있다.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에 투철한 리더십과 깨어 있는 민주시민이 함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12·3내란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권력기관을 정비하는 것은 많은 과제 중 하나일 뿐이다. 극우와 폭력을 번성케 하는 사회경제적 토양도 개혁해 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교육혁신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알고리즘과 확증편향을 이겨내는 사고력과 가짜뉴스를 분별해 내는 힘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 인권과 헌법정신과 민주시민의식을 제대로 학습하는 인문교육과 사회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실패한 역사로부터도 배워야 한다. 절규하는 동학 농민들이 외세와 손잡은 낡은 기득권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던 1894년의 비극으로부터, 해방 후 친일권력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체됐던 1949년의 아픔으로부터, 4·19혁명의 숭고한 정신이 1년 뒤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유린됐던 1961년의 퇴행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뼈에 새겨야 한다. 그래서 '내란 저지의 시민승리를 더 온전하고 더 튼튼한 민주주의 건설로 완성해내는 역사'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 2025년 4월에 품는 소망

2025년 4월을 보내며 두 손 모은 기도에 간절함이 크다. 165년 전인 1860년 4월, 무너지던 이 나라에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이 수운 최제우 선생의 가슴에 씨 뿌려졌듯이 금년 4월도 그런 '개벽의 4월'이기를 소원한다. 55년 전인 1970년 4월에 창간된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가 불의한 독재에 맞서 '생각하는 백성, 행동하는 백성'의 함성을 담아냈듯이, 금년 4월도 '정의의 선포가 시작된 4월'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마침 엊그제는 세계의 가톨릭과 개신교가 모두 기념하는 부활절이었다. 파괴와 죽음을 이기고 생명과 평화를 향해 솟는 '부활의 2025년 4월'이기를 바란다.

마침 4월을 뜻하는 영어 April이 '열리다'라는 뜻의 라틴어 Aperi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뜻대로 '새 세상, 새 시대를 여는 2025년 4월'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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