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대구의 가을, 희망을 묻다

  •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 |
  • 입력 2025-10-27 06:00  |  발행일 2025-10-26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나뭇잎들이 퇴색되어 떨어지는 가을이다. 지난 30년간 고향 포항에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도시 변화를 추진하다가 대구에 온 지 어느덧 5년. 삶의 공간 변화는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고향의 애잔함과 낯선 도시의 공간 리듬이 교차하며 마음 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막상 살아보니 대구는 여러 면에서 포항과는 다른 도시이다. 포항은 '포항제철'이라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도시라서 최근 포철이 어려워지면서 도시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오랜 기간 새로운 도시로의 전환보다 포철에만 의존해온 도시의 숙명이 아닐 수 없다. 대구는 상업 중심의 도시라서 포항과 같은 문제는 없지만 위기 상황은 비슷하다. 오래 전부터 대구는 경상도 내륙 중심에 위치하여 정치와 경제, 교육의 중심지로서 서울·부산과 함께 한국의 3대 도시로 손꼽혔다.


그러나 2023년 통계청 자료는 대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3천98만 원으로 전국 광역시 중 최하위이며, 재정자립도 또한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36.6%에 불과하다. 특히 도시의 초고령화 현상과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는 현실은 심각하다.


이러한 도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방정부와 정치인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그러나 대구시는 위기 대응은커녕, 과거의 명성에 안주한 채 권위적이고 미온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다. 며칠 전 대구시청을 방문했을 때, 시민이 아닌 외부인처럼 느껴질 만큼 지나치게 경직된 출입 절차를 경험했다. 시민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대하는 듯한 태도, '주요 보안시설'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시민 불신에 당혹감이 들었다. 현대사회의 복잡다기한 도시 행정은 더 이상 공무원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시민들의 협력 없이는 효율적인 행정을 할 수도 없고, 급박하게 밀려오는 도시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지방자치는 관료 자치가 아니라 시민 자치다. 지역 변화를 이끄는 힘 역시 시민에게서 나온다. 이것이 거버넌스 행정의 핵심이다. 그런데 시민을 단순 행정 소비자로 혹은 감시의 대상으로만 인식한다면, 대구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과연 이러한 도시를 움직이는 관리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선거 때마다 잠시 내려와 표심을 얻으려는 중앙 정치인들, 아니면 지역에서 장기간 똬리를 틀고 앉아 부동산 개발 특혜를 누려온 '토호(土豪)'세력일까? 포항이 시민보다 포스코만 바라보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듯이 대구 역시 중앙 권력과 개발 자본에만 의존하여 도시 전환을 지체하면 대구의 침체는 가속화될 뿐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세력은 청년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약 7만6천 명 이상의 청년들이 대구를 떠났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인구 감소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활력과 경쟁력이 상실되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이다. 청년들이 떠난 지역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들이 주도하는 청년 친화적인 대구를 만드는 일이다. 청년들이 맘껏 상상력을 펼쳐 도전하고,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자신이 자란 도시에 남아 변화의 주체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동시에 외부의 청년들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 위기의 대구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계절이 저물기 전에 낡은 성벽을 허물고 새로운 도시 변화를 위해 희망의 씨앗을 뿌릴 때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