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심 변호사가 바라본 세상] 정의는 살아야 한다

  • 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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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14 06:00  |  발행일 2025-10-13
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사법고시가 있던 시절 사법연수생들은 2학년이 되면 법원, 검찰청, 변호사사무소에서 각 2개월씩 시보(試補)를 한다. 시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관직에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에 실제로 그 일에 종사하여 익히는 일 또는 그런 직책을 말한다. 말하자면 정식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로 일하기 전에 사법연수생들이 그 일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나는 20여년 전 대구지방법원과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각 2달씩 판사, 검사 시보를 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바로 변호사로 일했으니 4개월간 판사, 검사 시보로 일해본 것은 공직 생활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시보는 담임의 지도 하에 연수를 받는데, 대구지방법원에서는 민사 부장판사가, 대구지방검찰청에서는 수석검사가 내 지도 담임을 맡아주셨다. 부장판사님은 비교적 간단한 기록을 주시며 기록 검토를 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나의 결론에 대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함께 토의를 하기도 했다. 검사 시보를 할 땐 일반 검사와 똑같이 검찰청에 출·퇴근을 하였고 내 담임이었던 수석검사와 함께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검사들을 옆에서 볼 수 있었는데, 시보 경험에서 내게 가장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다름 아닌 검사들의 소탈함이었다. 내가 본 검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맡은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었고, 야근이 일상인 듯했고, 배달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검찰청이 폐지된다고 한다. 1948년 창설 이후 78년 만인 2026년 9월까지 1년간의 유예기간을 가진 후 검찰청을 폐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검수완박'이라는 수모를 겪더니 결국은 폐지 수순까지 오게 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을 향한 보복 수사를 담당한 검찰이 자초한 결말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편할까. 검찰청 폐지의 대표적 이유로 꼽는 것이 표적 수사, 편향적 수사, 과잉 수사라는 수식어인데, 그간 검찰이 여러 굵직한 사건을 다루면서 매번 그런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성하지 않고 권력을 휘두른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검찰청만 없어지면 그런 잘못된 관행이 없어질까. 검찰청이 폐지된다고 해서 수사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현재로는 경찰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검찰청만 없어지면 그간 검찰이 한 권력남용 행태가 없어지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표적 수사와 편향적 수사가 그동안 정치 권력의 입맛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잘못이 검찰청 조직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검찰청 폐지의 정당성을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이유에서 찾는다면 그 해법이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너무나 정치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것 같아 국민은 우려하고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개혁이라면 정의와 신뢰를 기반으로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민은 정당들의 볼썽사나운 행태를 보면서 졸속 개혁을 우려하고 있다. 검찰청 폐지를 1년간 유예한다고 하니, 그 유예기간동안 자정 노력과 제도적 견제 장치의 강화를 통해 더 이상은 수사기관이 정치세력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20년 전 검사 시보 시절 내가 본 것은 검찰이라는 간판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이름의 기관이 수사를 담당하든, 그 안에서 일할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개혁이 아닐까. 검찰청은 사라져도 국민을 위한 정의는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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