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균의 ‘지방의 눈으로 AI읽기’] AI 새마을 운동을 생각한다

  • 유철균 경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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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17 06:00  |  발행일 2026-03-17
유철균 경북연구원장

유철균 경북연구원장

역사의 격랑이 우리를 낯설고 무서운 시대로 데려가고 있다.


2022년 2월부터 지금까지 10개의 전쟁이 이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수단 내전,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얀마 내전, 에콰도르 내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태국-캄보디아 전쟁, 미국-베네수엘라 전쟁을 거쳐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다. 전쟁 자체도 비극적이지만 또 안타까운 것은 전쟁의 시대가 AI 개발의 안전장치를 해제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폭주하는 AI로 인한 일자리 소멸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우리는 인간의 노동시간에 상품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를 사람 대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투입한 노동시간에 맞게 시장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도덕은 노동가치설에 입각한 도덕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도덕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전환점에 서 있다. 2026년 AI 에이전트 자율경제 시대의 AI 자동화는 단순히 일자리의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믿음까지 해체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어문계열을 졸업하고 통번역대학원을 나오고 십수 년간 이중언어 전문성을 쌓아온 번역가들이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코딩을 익히고 회계사 면허를 따고 로스쿨을 나온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AI가 이런 식으로 화이트칼라 인지 노동, 블루칼라의 반복 노동, 예술가의 창작 노동까지 대체한다면 인간 노동의 시장 가격은 폭락하거나 아예 형성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할 때 해답을 주는 것은 언제나 역사였다. 역사는 반복되며 인간이 위기를 해결하는 패턴들은 많은 경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칼 폴라니의 말처럼 인간의 행위에는 시장경제적 행위 말고도 호혜적 행위, 재분배적 행위, 가정경제적 행위가 있다. 만약 AI 자본 소유자 같은 특정인만 돈을 벌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소비자가 사라져 시장 자체가 붕괴한다. 포에니 전쟁 직후 노예 노동력이 대량 공급되어 내국인들이 실업자가 되던 로마제국이 그러했다. 이런 위기 시대에 사회는 호혜적 행위, 재분배적 행위, 가정경제적 행위를 새롭게 구성해서 스스로를 보호해왔다.


호혜적 행위는 마을 공동체의 품앗이 같은 것이다. A가 B를 도와주면 나중에 B가 A를 도와주는 증여-보답의 순환이다. 재분배적 행위는 보편적 기본소득, 로봇세, AI 배당 같은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 골고루 나눠주는 수집-분배의 순환이다. 가정경제적 행위는 가정이 자기 가족을 위해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자족의 순환이다.


AI 자동화 사회에서 정부는 재분배로 사람들의 기본 생계를 보장하고 정부의 손이 닿지 않은 영역에서는 호혜적 네트워크가 작동해야 한다. 가정경제는 자신의 돌봄 노동을 사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법이 결코 쉽지는 않다.


본질적으로 탈국가적인 AI 자본에게 어떻게 유효한 과세를 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마을 공동체 같은 폐쇄적 집단 안에서 작동해온 호혜성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까. 부잣집과 가난한 집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가정경제의 구조적 차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이런 고민 앞에 우리는 21세기 인류 사회를 위한 AI 새마을 운동을 생각한다.


새마을 운동은 20세기 산업화 시대에 개발도상국이 농촌 빈곤 문제를 해결한 세계 유일의 사례였다. 새마을 운동은 아주 작은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 가을 예상치 못한 과잉 생산으로 골칫거리가 된 시멘트 1천117만 포대를 정부가 구매하여 전국 3만3천267개 마을에 각각 335포대씩 무상으로 지원한 것이 새마을 운동의 출발이었다.


이 사업은 지역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이끌어냈다. 주민들이 이 시멘트를 활용해 자발적으로 지붕을 개량하고, 마을 길을 넓히고, 하수구를 정비했다. 글자 그대로 '근면, 자조, 협동'이었다. 넓어진 길로 트럭이 드나들어서 마을의 농산물이 시장과 연결되었다. 1970년부터 1979년 사이 농가 평균 소득은 10배 이상 증가했다. 초가지붕이 90% 이상 개량되었고 농가 생활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AI들이 자율적으로 일해서 돈을 버는 AI 에이전트 자율경제는 알고리즘, 컴퓨팅, 데이터라는 세 가지 자원으로 돌아간다. 70년대는 시멘트 포대가 주민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원이었다면 AI 시대는 알고리즘, 컴퓨팅, 데이터가 공동체의 자원이 된다.


2025년 1월 량원평의 딥시크 공개 이래 중국 개발자들은 미국 빅테크 모델에 비해 손색이 없는, 훌륭한 LLM 모델들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딥시크, GLM, 큐원을 다운로드 받아 알고리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전자정부 시대 이래 한국은 다양한 공공데이터를 축적해 왔고 지역과 기관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데이터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부족한 것은 열악한 지역과 서민들이 GPU를 사용해 AI 사업을 할 수 있는 컴퓨팅 자원, 즉 GPU 시간(GPU HOUR)이다.


정부가 공공의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그 컴퓨팅 자원으로 지역에 GPU 시간을 무상으로 지원해보자. 주민들은 그것이 농업 병해충 예측 모델이 되든, 지역 방언 보존 언어 모델이 되든, 독거노인 돌봄 AI가 되든, 자립할 사업을 결정해서 자발적으로 의욕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


지역은 AI 사업의 핵심 정보 자원, 즉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지역이 GPU 시간을 활용해 만들어낸, 저마다의 데이터에 입각한 AI 서비스는 나라를 혁신하게 된다. 초기에는 균등 배분을 하다가 단계적으로 성과를 평가하여 추가 자원을 차등 배분한다면 우리는 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영리한 설계를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새마을 지도자 교육처럼 AI 새마을 운동도 지역 AI 코디네이터 교육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AI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을 지역의 언어와 문화로 번역할 수 있는 인재들이 내일의 번영을 창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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