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람의 스포르찬도] 더 트래쉬멘의 ‘서핑 버드’

  • 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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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17 06:00  |  발행일 2026-03-17
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영화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 1987)'은 전미영화평론가협회 지정 '100대 스릴 영화'에 오른 명작이다. 뉴욕타임즈는 "처절하고 아름다우며 괴이한 영화"라고 평했다. 타임지는 "베트남전쟁의 무의미함을 거친 대화, 냉소적 위트, 산만한 사건 배치를 통해 드러낸 수작"이라고 했다.


'풀 메탈 자켓'은 소총의 탄알을 지칭한다. 속에는 납을 넣고 밖에는 구리를 씌워 정확도와 관통력을 높인 19세기의 발명품이다.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은 롤링스톤스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이중성, 즉 겉 다르고 속 다른 정부에 관해 얘기하고 있어요. '풀 메탈 자켓'이 실제 그렇게 생겼지요."


영화 '풀 메탈 자켓'의 배경은 베트남 전쟁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자대 배치 후 한동안 떨어져 있던 '카우보이'와 '조커'가 재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만남의 즐거움도 잠시, 카우보이와 조커는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시가지 외곽에서 전투를 준비한다. 카우보이가 이끄는 분대는 도심으로 들어가자마자 기습사격을 받는다. 곧 미 해병대원 하나가 쓰러지고 혼전이 벌어진다. 카우보이 등이 즉각 대응사격하지만 적은 어디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적의 저격에 미군은 하나둘 쓰러진다.


이 때, 분대원 중 '마더'가 적의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돌진한다. 한 손으로 기관총을 쏘면서 말이다. 이 장면은 이후 전쟁 영화, 드라마에서 자주 차용하는 클리셰가 된다. 마더의 돌진이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배경음악인 '서핑 버드(Surfin' Bird)'의 덕도 크다. 혼란스러운 교전 장면, 시끄러운 총성 속에 섞인 고함과 신음 소리,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의 행동이 '서핑 버드'와 연쇄하면서 '훼이 전투' 씬은 이 세상의 장면과 소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서핑 버드'의 장르는 비현실적이며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뜻하는 '노벨티 송(novelty song)'이다. 코미디언 서영춘의 '시골영감', 서수남과 하청일의 '팔도유람'이 여기에 속한다. 곡은 빠른 박자의 '두왑(doo-wop)'에 속하는데 코믹한 동작, 춤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노래를 부른 이들은 '더 트래쉬맨'이라는 밴드이다. 유명세를 얻기 전에는 디스코텍, 스케이트장, 해변가 등을 돌며 '더 라이빙턴즈(The Rivingtons)'의 '더 버즈 더 워드(The Bird's the Word)'와 '파파 움 마우 마우(Papa-Oom-Mow-Mow)' 같은 노벨티 송을 불렀다.


조금 인기를 얻자 더 트래쉬맨은 애드립 부분만 따로 떼어서 녹음을 했다. 그 결과는 실수(박자 틀림, 드럼 스틱 놓침), 소음(기침, '앗, 젠장'하는 소리)이 들어간 날것 그대로의 엉터리 믹싱 테이프였다. 그런데 이게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시험 삼아 틀어놓은 동네 디스코텍에 문의가 빗발쳤다.


더 트래쉬맨은 자신들의 녹음에 매우 실망했기 때문에 제목도 정하지 않은 채 테이프만 디스코텍에 건넨 상태였다. 그래서 디제이는 대충 "어... 이거... '서핑 버드'야"라고 대답했고 그것이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 그리고 '서핑 버드'는 1963년 미국 빌보드차트 4위에까지 올랐다.


스탠리 큐브릭은 어떤 의도로 '무의미한 가사의 우스꽝스러운 노래'인 '서핑 버드'를 배경음악으로 썼을까. 혹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영화 제작진이 베트남전쟁의 무의미함을 블랙 코미디 방식으로 꼬집은 것이다.' 정말 그럴까? 후일 여기에 대해 기자가 묻자 스탠리 큐브릭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거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던 1961년부터 1968년까지 빌보드차트에서 인기 있었던 곡들을 골라서 차례로 영화에 넣었어요. 그 중 하나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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