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의 사람학교] 연결이 사람을 살린다
"행복한 인생의 비결은 무엇일까?" 하버드대학이 1938년부터 80년 이상 진행해온 인간행복의 조건에 관한 연구의 결론은 명료하다. 건강과 장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재산도 명예도 아니었다. '관계의 질', 그것이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였다. 양질의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는 사람일수록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았다. '연결'이 인간의 심신을 지탱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골목에서 뛰놀던 아이들, 품앗이 육아를 하며 밥상을 나누던 정겨운 풍경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응답하라 1988'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유는 단지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 골목 안에서 나누던 나눔과 돌봄, 그리고 공동체의 감각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가? 기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과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지만, '진짜 연결'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온라인상에서 '좋아요'와 '댓글'은 넘치지만, 정작 삶의 위기 순간 손잡아 줄 사람은 줄었다. 특히 청년 세대는 '관계 피로'와 '고립의 역설' 속에서 연결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회피하는 복합적인 태도를 보인다. 익숙해진 단절과 무관심, 그리고 서로를 향한 경계심이 진정한 연결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4 아동분야 주요통계' OECD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연결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 15세 학생들의 학업 성적은 수학 2위, 과학 2위, 국어 3위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친구 관계 만족도는 36위로 최하위권, 부모와의 관계도 12위에 머물렀다. 회복탄력성, 주체성, 자주성 모두 평균 이하였다. 입시에 치중한 결과, 청소년기의 사회적·정서적 발달이 뒷전으로 밀린 우리의 현실은 단절이 개인의 삶에 고통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결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팬데믹 이후 각국이 공동체 회복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은 고립 문제 해결을 위해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고, 일본도 영국을 벤치마킹해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총리 직속으로 설치했다. 연결은 이제 복지의 차원을 넘어 국가 전체의 존립을 지키는 안전망으로 인식되고 있다. 연결을 위한 민간의 시도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주민을 위한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일본에서는 고령자들의 치매와 고독사를 막기 위해 '컬렉티브 하우스'라는 형태의 공동주택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고독한 노인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대화를 나누며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있고, 호주 멜버른의 '나눔 장터'는 사람들 사이의 물질적 교환을 넘어 정서적 연결을 돕고 있다. '마을이 사람을 돌본다'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이처럼 연결은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혼자서는 바꾸기 어려운 구조도, 연결된 개인들의 연대라면 바꿀 수 있다. 지역사회 아동 돌봄 공동체, 고령자 주거 지원, 장애인 접근성 개선 등 우리가 마주한 많은 사회적 정책은 이러한 연결에서 출발했다. 연결이 '연대'로, 다시 '연합'으로 확장될 때 사회는 복원력을 갖는다. 6월, 다시 공동체를 돌아본다. 연결은 관계의 시작이고, 연대는 함께 움직이는 힘이며, 연합은 우리가 함께 도달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이상이다. 연결은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에 행복을 선물하는 출발점이다.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지금, 그 질문 앞에 우리가 함께 서 있다. /박혜경 한동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