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다음 주에 봐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지탱하는 화음

  • 지중배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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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13 14:50  |  발행일 2026-05-14
지중배 지휘자

지중배 지휘자

종종 세상의 멸망에 관한 영화들이 나온다. 지구 멸망을 마주친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을 비판한 블랙코미디인 '돈 룩 업'도 있지만 그 이전에 우리에게 일상의 의미와 삶속에서 소중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세상의 끝까지 21일'이라는 영화를 더 선호한다. 두 작품이 묘사하는 거창한 행성 충돌이 아니더라도, 우리 각자의 삶속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종말이 일어난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혹은 평생을 바친 일터에서의 퇴장.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예고 없이 무너져 내린다. 영화 '세상의 끝까지 21일'에서 가장 먹먹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소행성 충돌을 몇시간 앞둔 소란 속에서도 어김없이 약속된 목요일에 주인공의 집에서 가정부일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다음 주에 봐요" 하고 가볍게 문을 나서는 엘사의 뒷모습이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하다 보면 드러나는 선율보다 내성(內聲)이라고 하는 드러나지 않는 음악들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리허설을 하게 된다. 수십명의 연주자들이 설사 나의 소리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전체곡의 아름다움을 위해 고민하며 그 위치에 알맞게 서로의 밸런스를 조율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영화 속 곳곳에는 지구의 멸망이 눈앞에 있을지언정 엘사처럼 정직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채워나가는 이들이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세상은 화려한 독주자나 선명한 멜로디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만, 세상을 지탱하고 그 이면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들은 묵묵히 제 몫의 화성과 내성을 채워 넣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의 삶속에서 주어진 삶을 정직하게 완주함으로써 전체의 화음을 완성한다.


가정의 달, 5월은 찬란한 신록만큼이나 아픈 기억의 계절이기도 하다. 1980년 5월의 광주 역시 누군가에게는 소행성 충돌과 같은 세상의 종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조차 사람들을 살게 했던 것은 따뜻했던 일상의 온기였고 그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깊은 염원이었다. 비극의 현장 속 사람들은 특별한 영웅이 되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부모로서, 이웃으로서, 학생으로서, 혹은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마땅한 도리를 다하려 했을 것이다. 영화 속 엘사가 세상의 종말을 몇시간 앞둔 그때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다음 주'를 기약했듯 그때의 광주사람들은 아비규환의 현장에서도 주먹밥을 쥐여주며 서로의 '내일'을 기약했다.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화려한 독주자의 기량이 아니라 내성을 담당하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성실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는 부모의 역할로, 아이는 아이의 마음으로, 각자가 선 자리에 알맞은 밸런스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은 마치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모인 수많은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각자가 맡은 음들을 연주하여 하나의 소리로 모아져서 교향악이라는 거대한 음악으로 살아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란 거창한 영웅의 등장이나 화려한 변혁에 있지 않다. 빛나지 않아도 묵묵히 주변의 든든한 내성이 되어주는 일, 비극 앞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안부를 묻는 다정함 속에 있다. 마치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찾는 것이 거창한 만찬이 아니라 엄마의 투박한 김치찌개 한 그릇인 것처럼,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소한 일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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