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모자무싸'('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는 전직 시인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고 보는 중인데, 얼마 전 방영분에서 그 인물이 시에 대해 말한 내용이 흥미롭다. 시든 일기든 쓰인 글들은 반쯤은 일부러 드러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묘한 말이다. 반쯤 드러냈다는 마음은 들키고 싶은 마음과 숨기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라는 이상한 말처럼 들린다.
영화 '화양연화'의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캄보디아의 사원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발견한 구멍에다가 무언가를 비밀스럽게 속삭이고 나서 그 구멍을 흙으로 덮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에게, 혹은 어디에선가 발설하고 싶은 비밀이 사람들에게는 있다. 만약 그 비밀이 마음의 고통을 만든다면 그것을 반쯤 드러내놓고 말하는 일만으로도 아픔을 가볍게 하는 효과를 얻는다. 사람들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동시에 발설을 통해 자신의 어떤 비밀스러운 경험이 손쉬운 가십거리가 되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고(故) 최정례의 시에는 나무들이 종종 나온다. 그중에서도 미루나무는 출현 빈도가 높은 수종이다.
미루나무는 미루나무와 잔다/ 미루나무는 미루나무와 이야기한다/ 기나긴 진창의 시간을// 미루나무 서 있는 그 자리/ 뿌리치고 간다/ 한 떼로 떠간다//미루나무 미루나무를 잃어버리고/ 미루나무로 되돌아온다// 미루나무 미루나무에 얽매여/ 미루나무를 거절하고/ 미루나무로 붙들리고//미루나무 시간을 삼키고/ 구름을 뱉는다// 미루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흩어지고 부서지며 떠간다('미루나무 길')
요즘은 드물게 보이는 미루나무는 미국에서 온 버드나무라는 의미를 품었다는 설이 있다. 또 경제적 가치가 작고 관리가 힘들어 많이 제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커다랗고 시원한 눈맛을 제공했던 나무의 모습을 기억하는 자라면 그 나무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시인은 시의 후반부에 '미루나무는 나무가 아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무엇이라는 말일까. 여기에는 어떤 마음이 반쯤 드러나 있었던 걸까.
사실 시의 서두에는 에피그래프가 붙어 있다. 인용된 구절은 릴케의 '오르페우스의 소네트'이다. 그 시는 비밀스러운 에로스를 노래한다. '그녀는 내 귓속에 침실을 만들고 내 안에서 잠이 들었다'는 구절은 이 소네트가 귓속말로 주고받는 비밀과 에로스를 품은 관계를 숨겨두고 있다고 내보인다. 최정례의 '미루나무 길'을 저 릴케의 말들에 이어 잠자는 나무와 이야기하는 나무를 그린다. 또 나를 부수고 뿌리치며 떠나가 버린 어떤 사람의 그림자를 미루나무의 형상 속에 살아 있게 한다. 시인은 미루나무로 그 숨겨진 사람을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비밀이 자리할 세상의 거처를 만든 셈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세상이 여유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감정과 사건들도 세상의 것으로 바꾸어 놓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언가를 반쯤 드러냈다는 것은 세상이 무언가를 반쯤만 허용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시인들의 언어에 세상이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여기에 있다. 시인의 말을 타고 어떤 자유가 세상에 자리를 튼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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