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배 지휘자
지난달 말 3주 만에 돌아온 독일 집 마당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정원의 영춘화(迎春花)였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차가운 땅 위로, 잎이라는 보호막도 없이 맨몸으로 서릿발을 견뎌 먼저 터져 나온 노란 빛깔의 봄을 맞이하는 꽃. 그 이름처럼, 영춘화는 주변의 온기가 다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스스로 먼저 피어남으로써 겨울이 지나갔음을 말하는 이 작고 강인한 노란 꽃잎 앞에서, 나는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땅의 '평화'에 대해 다시 묻는다. 진정한 평화란 어쩌면 영춘화처럼, 시련의 한복판에서 먼저 피어내야 할 용기 있는 첫 소리가 아닐까.
정원에서의 정적을 깨고 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불과 몇 시간 전, 한국에서 독일로 돌아오기 전의 소식들이었다. 뉴스 화면 속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습 소식은 영춘화의 노란 빛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파괴적인 섬광이었다. 이미 수년째 이어지며 일상이 되어버린 우크라이나의 비극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중동과 유럽의 포성은 국경을 넘어 즉각 세계 경제를 흔들었고, 불확실성이라는 어둠은 다시금 지구촌을 잠식했다. 이제 전쟁은 더 이상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아니다.
유럽에 살면서 난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진통과 경제적 위기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아픔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지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다. 우리는 원치 않아도 서로의 고통에 긴밀히 연결된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평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소리들이 제각각의 소리를 내며 하나의 교향곡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서, 나는 평화가 결코 갈등이 없는 고요함이 아님을 배운다.
진정한 평화는 서로 다른 음들이 하나의 음악으로 수렴되기까지의 치열한 이해와 보듬음이다. 독일 사회 내에서도 피부색과 고향이 다른 이들이 섞여 살며 갈등을 빚지만, 우리가 먼저 피워내야 할 것은 영춘화처럼 '먼저 건네는 이해의 손길'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치환하는 마음, 그 연대의 마음이야말로 현대판 전쟁을 멈출 유일한 노래이다.
'핀란디아'. 금관악기의 거친 소리로 표현된, 시대의 어둠과 갈등으로 시작되지만 고요하고 숭고한 선율인 '핀란디아 찬가'로 인간의 존엄이 그 어둠과 갈등을 걷어낸다. 러시아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핀란드 민중들에게 시벨리우스는 핀란디아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했고 그들을 하나로 모았다. 그 음악은 포성보다 강한 무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벨리우스의 음악처럼 따뜻한 연대이다. 전쟁의 포성이 국경을 넘어 우리의 삶을 위협할수록, 우리는 혐오가 아닌 포용을 해야 하며, 단절이 아닌 공존의 화음을 만들어야 한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공기를 뚫고 꽃을 피워내는 결연한 의지들이 모여 비로소 봄이라는 계절을 완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스스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영춘화와 같이 먼저 평화의 꽃을 피울 때, 타인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작은 울림들을 먼저 들려줄 때,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먼저 피워낼 때, 우리가 생각하는 더 나은 봄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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