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靖難 아닌 政變이다

  • 박규완
  • |
  • 입력 2026-05-07 06:51  |  수정 2026-05-07 10:12  |  발행일 2026-05-07
계유정난, 권력 찬탈의 반란
“모반 평정”은 수양 측 논리
용렬·패륜 군주에 仁祖 묘호
역사 속의 語弊 고쳐 써야
5·16도 이제 “군사 쿠데타”
박규완 논설위원

박규완 논설위원

계유정난 서사는 흥행 보증수표다. 1994년 KBS 대하 드라마 '한명회'는 시청률 40%를 넘었고, 영화 '관상'은 913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화룡점정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누적 관객 수 1천700만명에 육박한다. '명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다. 변란의 희생자 단종을 향한 슬픈 카타르시스 때문일까. 다들 아는 스토리, 뻔한 결말인데도 '왕사남'은 관객을 사정없이 몰입시킨다. 왜 계유정난에 얽힌 소재는 흡인력이 강할까.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가 명확하고, 역사의 팩트에 재미와 감동의 허구를 능히 얹을 수 있는 데다, 등장인물의 독특한 이력까지 더해지며 흥행 동력이 배가됐을 법하다. 이를테면 계유정난의 설계자 한명회는 후일 예종과 성종 두 왕의 장인이 되며, 계유정난 2등 공신 홍윤성은 패악질, 토색질을 일삼는다. 세조의 비호 아래.


한데 수양대군 일당이 일으킨 변란의 명칭이 묘하다. 계유정난. 정난(靖難)은 '나라의 위난을 평정한다'는 뜻이다.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정변이 정난으로 둔갑한 것이다. 1453년 11월 10일(음력 10월 10일)에 일어난 계유정난은 수양의 심복 양정 등이 고명대신 김종서를 추살하고, 임금의 밀소(密召)를 참칭해 황보인, 이극관 등 중신들을 궐문에서 척살한 정변이다. 수양대군의 사직(社稷) 농단 시발점이기도 하다. 수양은 거사 후 영의정부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를 겸직하며 정권과 병권을 장악한다.


그런데 정난? 정난(靖難)은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모반 기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수양 측 논리를 대변하는 언어다. 조카 건문제의 황위를 탈취한 명나라 영락제도 정변을 정난으로 미화했다. 계유정난은 명백한 반란이자 쿠데타다. '12·3 계엄' 식으로 표현하면 '11·10 내란'이다. 반란을 정난으로 윤색한다? 어폐(語弊)의 극치다. 계유변란(變亂)이나 계유정변(政變), 또는 수양의 난(亂)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하물며 이방원의 거사도 왕자의 난으로 칭하지 않나.


계유정난 말고도 역사 속의 어폐들이 꽤 많다. 반정(反正)은 '본디의 바른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나쁜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우는 일'이라는 의미도 있다. 하여 폭군 연산을 폐하고 중종을 옹립한 거사를 중종반정이라 한다. 한데 인조반정? 필자는 동의하지 못한다. '친명배금'의 아집 외교로 백성을 두 번씩이나 전란에 몰아넣은 무능 군주, 소현세자와 며느리 강빈을 죽인 패륜 군주, 신하들에게 욕설을 함부로 내뱉은 무도(無道) 군주 인조의 조정(朝廷)은 불치(不治)의 시대였다. 만약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그래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까.


인조(仁祖)란 묘호도 도무지 합(合)이 맞지 않는다. 묘호(廟號)는 임금이 죽은 뒤에 생전의 공덕을 기리어 붙이는 이름이다. 묘호엔 암묵적 규범이 있다. 나라 창업자에겐 태조나 고조, 치세로 태평성대를 일궈낸 군주엔 태종 또는 세종, 학문을 숭상한 왕에겐 글월 문(文)이 들어가는 문종의 묘호를 헌정했다. 책을 가까이 한 고려 문종과 조선 문종은 묘호에 부합한다. 하지만 '삼배구고두'의 굴욕을 남긴 용렬한 왕 인조에게 어질 인(仁)자 묘호라니. 가당찮은 어폐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1905년 을사조약을 이제 을사늑약이라 부른다. 늑약(勒約)은 '억지로 맺은 조약'이란 뜻이다. 한때 혁명으로 윤색됐던 5·16도 군사 쿠데타로 고쳐 쓴 지 오래다. 계유정난은 정난 아닌 정변이다. 논설위원


기자 이미지

박규완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정치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