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35년 셔터에 담긴 포항시의회의 산 역사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가 내려지며 포항시의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2년 초대 개원 이래 이어져 오던 지방의회의 명맥이 끊긴 것이다. 그리고 꼭 30년 만인 1991년 4월 15일, 포항시의회는 제4대 의회로 다시 문을 열었다. 그날 개원식 현장에 카메라를 든 채 서 있던 청년이 있었다. 그로부터 35년, 그는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로 바뀌고, 의회를 스쳐 간 수많은 의원들의 얼굴이 몇 번이고 바뀌는 동안에도 그는 늘 렌즈 뒤에 서 있었다. 포항시의회가 다시 문을 연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장면을 지켜본 유일한 사람. 박영태 계장이다. 1988년 통신직 공무원으로 공직에 들어와 어느덧 38년, 그중 35년을 포항시의회와 함께해온 그를 추석을 앞두고 만났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담아 박 계장이 의회 업무를 맡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경북도 통신 분야 특채로 공직에 들어와 포항시 민방공실에서 근무하던 그는, 의회가 개원하며 통신 업무와 본회의장 관리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의회로 자리를 옮겼다. 정작 사진은 전혀 몰랐다는 그였지만, 마땅히 맡을 사람이 없던 상황에서 하나둘 배워가며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당시만 해도 촬영은 온전히 필름의 몫이었다. 필름을 잘못 다뤄 태우기라도 하면 복구할 방법이 없어 애를 태운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인화된 사진 한 장을 신문사에 직접 가져다주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던 시절도 있었다. 스캔 기술이 생기고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업무 환경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그는 그 격변의 시간을 몸으로 통과해온 몇 안 되는 산증인이다. ◆초대 의장님의 마지막 순간 수많은 장면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재개원 이후 첫 의장을 지낸 이용득 전 의장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갑자기 쓰러진 의장은 다음날 새벽 세상을 떠났고, 의회 마당에서 나흘간 장례가 치러졌다. 당시 상주 역할을 맡았던 동료와 함께, 박 계장도 그 마지막 길을 카메라에 담았다. "가족들 우는 모습을 보니 내가 괜히 (촬영을)했나 싶더라"는 그의 말에는 30여 년이 지나도 바래지 않은 먹먹함이 묻어 있었다. ◆함께했던 의원들과의 인연 35년 가까이 스쳐 간 수많은 의원들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얼굴들도 있다. 그는 고 최영만 전 의장을 떠올리며 "새벽에도 전화해 힘든 일을 함께 나누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어려운 순간마다 곁을 지켜준 그와의 인연은 업무 관계를 넘어 세월과 함께 깊어진 신뢰의 기록이기도 했다. 최 전 의장은 물론이고 역대 의원들과 쌓아온 인연의 무게는 박 계장 아들의 결혼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들의 결혼 소식을 전하자 현직 시의원들은 물론 각계 인사들, 그리고 역대 의장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결혼식장 앞에서 축하를 건넨 것이다. 하객들 사이에서 "이런 결혼식은 처음 봤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세대와 직위를 넘어 한걸음에 달려와준 이들의 발걸음에서 그가 지난 세월 쌓아온 인연의 깊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자리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사진 한 장에 실어온 무게감 기록하는 일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민감한 장면이 찍혔다는 이유로 필름을 통째로 없애 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도 있었고, 초창기에는 "사진이나 찍는 사람"이라며 은근한 무시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묵묵히 셔터를 눌렀다. "필름은 이어져 있어서 함부로 끊을 수 없다"는 원칙 하나로 숱한 순간들을 지켜왔다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렇게 버텨온 힘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언론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때, 그는 비로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이 한 컷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대변하게 된다" 싶을 만큼, 그에게 사진 한 장 한 장은 늘 소중한 무게로 다가왔다. ◆지금 의회를 보는 안타까움 35년 가까운 세월을 지켜봐 온 그이기에, 요즘 의회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남다르다. "예전보다 밝아지고 투명해진 건 분명 좋은 일"이라면서도, 그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가 개인의 이해관계 위주로 흐르는 모습, 서로 간의 반목과 편 가르기가 깊어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결국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해야 시민들이 잘 사는 것 아니겠나." 그의 담담한 한마디에는 오랜 세월 현장을 지켜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걱정과 애정이 함께 묻어 있었다.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셔터를 눌러온 그에게, 지금 의회의 모습은 그저 스쳐 가는 풍경이 아니라 오랜 세월 쌓아온 애정만큼 더 아프게 다가오는 현실이었다. ◆역사로 남기고 싶은 한 기록 인터뷰 말미, 앞으로 이 기록이 후배들에게 어떻게 이어지길 바라느냐고 묻자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이건 단순한 촬영이 아니라 역사"라며, 자신이 떠난 뒤에도 이 기록만큼은 남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낮은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내가 무슨 욕심이 있겠나. 그저 포항시의회가 시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잘 굴러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는 그의 말에서, 35년 세월 렌즈 너머로 지켜본 이의 진심이 묻어났다. 셔터를 누른 손끝에는 특혜도, 화려함도 없었다. 다만 묵묵히 쌓아온 시간과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박영태 계장이 포항시의회의 '산 역사'로 불리는 이유다.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