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이 계급인 나라⑫] 서울엔 여의도, 대구엔 어디로?…지역엔 없는 ‘정치 성장 사다리’

  • 정재훈·서정혁·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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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24 17:40  |  발행일 2026-09-24
인프라 부족과 중앙당 중심 평가에 가로막힌 청년들
생활정치 가치에도 기회 찾아 떠나는 지역 인재들
국회 보좌진 경력 우대 등 지역 정치인의 유리천장
단순 ‘선거용 장식품’ 아닌 평시 인재 육성 제도 시급
서울 여의도의 촘촘한 정치 경력 사다리와 대구·경북 지역의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치 인프라를 대비해 표현한 삽화. 지역 청년 정치인이 마주한 기회의 격차와 성장 경로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챗GPT

서울 여의도의 촘촘한 정치 경력 사다리와 대구·경북 지역의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치 인프라를 대비해 표현한 삽화. 지역 청년 정치인이 마주한 기회의 격차와 성장 경로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챗GPT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마음먹어도 어디로 가야 하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부터 막막했습니다."


김경민 대구 수성구의회 문화복지위원장(31·국민의힘)이 처음 지역 정치에 뛰어들면서 느꼈던 어려움이다. 서울에는 국회와 중앙당이라는 눈에 보이는 '정치의 공간'이 있다. 국회의원실과 정당, 연구기관을 비롯해 각종 정치·정책 프로그램도 그 주변에 모여 있다. 반면 지역에서 정치를 꿈꾸는 청년에게는 첫걸음을 뗄 공간부터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대구·경북(TK) 지역 정치권에서는 청년 정치의 수도권 쏠림을 단순히 '서울에 기회가 많기 때문'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에서 정치에 입문하고, 정책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실력을 검증받아 선출직에 도전하는 일련의 '성장 사다리'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 "정치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나요"…입구부터 다른 서울과 지역


김 위원장은 영남일보와 인터뷰에서 서울보다 지역에서 경쟁력을 쌓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서 대구 정치를 택했다고 전했다. 지역 정치 인재가 많지 않은 만큼, 오히려 자신만의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지역 정치에 뛰어들자 생각하지 못했던 벽에 부딪혔다. 김 위원장은 "서울로 가면 여의도와 국회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치인과 정책, 각종 정치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지만 지역에서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마음먹어도 어디로 가야 하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부터 막막하다"며 "정치 입문 과정에서부터 서울과 지역의 인프라 차이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정치 공동체 '폴티' 최하예 대표도 지역에는 정치와 선출직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공간'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지방의회와 정당 조직은 있지만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청년이 정책을 공부하고 정치인을 만나거나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공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지역에는 정치와 관련된 일자리뿐 아니라 정치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중간 공간 자체가 부족하다"며 "청년들이 일상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나누고 정책을 공부하고, 정치인을 만나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해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서울에서는 선출직에 출마하기 전부터 정치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다양하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 김병래 차장은 중앙당이 운영하는 청년 입법 보조 프로그램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서울과 중앙에서는 국회나 당이 운영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며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내가 정치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청년이 곧바로 선거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정치를 경험하고 자신의 적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지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대구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한 한 예비후보가 당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같은 붉은 신발을 신고 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지용 기자

지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대구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한 한 예비후보가 당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같은 붉은 신발을 신고 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지용 기자

◆ "지역에서 아무리 뛰어도 중앙에선 모른다"…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지역 정치 무대에 어렵게 진입한 뒤에도 또 다른 격차가 나타난다. 구의원에서 시작해 대구시의원 재선에 성공한 김태우 대구시의회 건설교통위원장(41·국민의힘)은 지역 정치인의 성장 과정에서 '유리천장'을 느꼈다고 했다.


김태우 위원장은 애초부터 중앙정치보다 풀뿌리 정치를 선택했다. 지방대를 졸업했고 서울에 별다른 연고도 없었던 그는 "내가 사는 동네부터 제대로 알고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구의원에 출마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오래 활동할수록 중앙 정치권과의 거리도 체감했다. 김태우 위원장은 "지역에서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중앙당에서는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알기 어렵다"며 "반면 서울에서 활동하면 당 지도부나 국회의원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고 자연스럽게 중앙 정치권과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똑같이 노력하더라도 결국 빛을 볼 기회는 서울에 더 많은 셈"이라며 "지역 청년위원장이나 지방의원보다 국회에서 근무한 보좌진 경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개인의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에서 주민을 만나고 생활 현안을 해결하면서 쌓은 정치 경험과 중앙당·국회에서 축적한 경력이 서로 다른 경험으로 평가되는 것을 넘어 사실상 위계화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지방의원의 역할 자체를 중앙정치로 올라가기 위한 '하위 단계'로 보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애초 담당하는 정치 영역이 다르다. 국회의원이 국가 차원의 입법과 예산, 행정부 견제를 맡는다면 지방의원은 지역의 조례와 예산을 심의하고 지방정부를 견제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지방의원이 독립된 지역 정치인이라기보다 지역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정당 조직의 일부로 여겨지고, '기초의원→광역의원→국회의원'이라는 하나의 사다리로 정치 경력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지방정치가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 영역이자 전문적인 정치 경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도 지역 정치 인재가 성장하는 데 제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서울이 '정치의 무대'라면 대구는 '삶의 터전'


하지만 지역 정치인들은 서울에서 얻기 힘든 경험도 분명히 있다고 강조한다. 주민과 생활을 공유하며 지역 문제를 피부로 경험하는 '생활정치'다.


오영준 전 대구 북구의원(32·더불어민주당)은 대학생 시절 지역구 지방의원이 추진한 마을사업에 참여하면서 처음 지방정치를 가까이서 접했다. 이후 지방의원을 거쳐 지난 6·3 지방선거에서는 대구 중구청장 선거에 도전했다.


오 전 의원은 "지역에는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정치권 진출을 희망하는 청년과 대학생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서울·수도권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도 "지역에서 활동하면 지역 사정을 지역민의 시선에서 볼 수 있고, 각종 갈등이 일어나고 정치와 행정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장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쌓는 정치 경력이 보다 거시적인 정책과 국가 정치의 작동 방식을 익히는 데 장점이 있다면 지방정치는 주민의 삶과 행정의 결과가 맞닿는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새롬 대구 수성구의회 운영위원장(35·국민의힘)도 "서울이 '정치의 무대'라면 대구는 '삶의 터전'"이라고 표현했다. 박 위원장은 "대구는 단순한 선거구가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안방"이라며 "직접 동네를 뛰어다니며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서울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생활정치의 가치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경민 위원장 역시 지역 현장을 정치인의 중요한 자산으로 꼽았다. 그는 "정치를 해보면 탁상행정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많이 느끼게 된다"며 "현장에 있어야 들을 수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2024년 대구 중구 의회에서 제305회 정례회가 개회된 모습. 영남일보DB

2024년 대구 중구 의회에서 제305회 정례회가 개회된 모습. 영남일보DB

결국 지역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지역을 제대로 대표하려면 지역에서 오래 생활하고 주민과 만나야 하지만,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경력·네트워크는 서울에 더 풍부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역을 잘 아는 사람에게 필요한 성장 기회가 정작 지역 밖에 있는 셈이다.


◆ 선거철 '청년 모시기'보다 평소 키워야


지역에서 정치 인재를 키우려면 무엇보다 정당이 평상시에 청년을 발굴하고 경험을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김병래 차장은 지역 당원협의회가 정치 지망생의 진입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에서 정치를 할수록 주민들과 스킨십하고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평소 당협에서 청년들을 발굴해 1~2년 동안 함께 활동하면 자연스럽게 검증도 되고 지역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 김 차장은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문턱을 낮추자'고 제안했다. 김 차장은 "당에서 활동하고 싶은데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청년들이 있다"며 "지역에서 활동하고 네트워킹하고 싶으면 어디로 연락하면 되는지 접촉 창구부터 명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와 함께 지역 정치권의 문화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태우 위원장은 지역에서 젊은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구에는 아직 젊은 정치인을 '어리다'고 바라보거나 선배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며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이들이 직접 정치를 이끌 기회를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새롬 위원장도 "청년을 선거철에만 반짝 소비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지역의 내일을 책임질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청년 정치인을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보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선거 컨설팅업체 엘엔피파트너스의 이주엽 대표도 "다만 지역현안에 대한 공부와 민원 대응, 조직관리 등의 업무는 지역구 의원실이나 시도당 등에서 기능 정비 및 분화를 통해 일정 부분 경험 축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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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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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혁

서울 정치부에서 국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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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정치부 서민지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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