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이 계급인 나라 ⑪] 화랑 58.3%·판매액 87.8% 서울 집중…대구 화랑도 ‘서울행’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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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28 20:55  |  발행일 2026-08-28
대구 화랑 판매액 전국의 4.3% 그쳐
홍보·컬렉터·해외 네트워크 찾아 서울로
“서울 네트워크, 지역 작가 성장으로 연결해야”
갤러리신라 서울점. 갤러리신라 홈페이지

갤러리신라 서울점. 갤러리신라 홈페이지

국내 미술시장의 서울 집중 현상이 한층 두드러지고 있다. 전국 화랑 10곳 중 6곳이 서울에 모여 있고, 화랑을 통한 작품 판매액의 90% 가까이가 서울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구에서 수십 년간 활동해 온 주요 화랑들도 서울에 별도 갤러리를 마련해 '두 지점'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리안갤러리가 2013년 1월 가장 먼저 서울점을 연 데 이어 PNC갤러리(2019년 2월), 갤러리신라(2021년 7월), 우손갤러리(2024년 12월), 갤러리제이원(2025년 4월)까지 총 5곳의 대구 화랑이 잇따라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 화랑은 모두 대구를 기반으로 유지하면서도 홍보와 국내외 미술계 네트워크 구축, 시장 확대 등을 위해 서울에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화랑 58.3% 서울 집중…판매액 비중은 87.8%


대구 화랑가는 서울에 비해 화랑 수와 작품 판매액 등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시장 기반을 갖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5 미술시장조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에서 운영된 화랑은 총 877곳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서울 종로구 171곳, 서울 강남 일대 162곳, 서울 기타 지역 178곳 등 서울 소재 화랑이 총 511곳으로 전체의 58.3%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대구는 46곳으로 5.2%에 그쳤다. 부산은 69곳(7.9%), 기타 지역은 251곳(28.6%)이었다.


리안갤러리 서울점. 리안갤러리 홈페이지

리안갤러리 서울점. 리안갤러리 홈페이지

작품 거래 규모의 서울 집중도는 화랑 수 비중을 훨씬 뛰어넘었다. 2024년 전국 화랑의 작품 판매액은 총 3천470억300만원이었다. 이 중 서울 종로구 화랑이 1천260억2천600만원, 서울 강남 일대가 665억1천만원, 서울 기타 지역이 1천120억2천900만원을 기록했다. 서울 소재 화랑의 판매액을 합하면 3천45억6천500만원으로 전체의 87.8%였다.


반면 대구 화랑의 작품 판매액은 149억400만원으로 전국 화랑 판매액의 4.3%에 불과했다. 작품 판매 실적이 있는 화랑의 평균 판매액은 서울 종로구 8억8천690만원, 서울 강남 일대 5억6천240만원, 서울 기타 지역 7억9천590만원이었다. 대구는 3억5천910만원에 머물렀다.


판매 작품 수에서도 격차가 컸다. 2024년 전국 화랑을 통해 판매된 작품은 2만3천821점이었다. 이 가운데 서울 화랑에서 판매된 작품은 1만6천686점으로 전체의 70.0%를 차지했다. 반면 대구에서는 966점(4.1%)이 판매됐다. 작품 판매 실적이 있는 대구 화랑의 평균 판매 작품 수도 23.3점으로 서울 종로구 44.8점, 강남 일대 40.5점, 서울 기타 지역 39.3점에 크게 못 미쳤다.


갤러리제이원 서울점. 갤러리제이원 홈페이지

갤러리제이원 서울점. 갤러리제이원 홈페이지

해외 작품 거래 실적은 차이가 더 현격했다. 작품 판매 실적이 있는 서울 소재 화랑의 해외 작품 판매액은 종로구 262억6천800만원, 강남 일대 256억9천200만원, 서울 기타 지역 726억6천500만원 등 총 1천246억2천500만원이었다. 반면 대구 화랑의 해외 작품 판매액은 총 8억7천300만원으로 서울 소재 화랑 해외 작품 판매액의 0.7% 수준이었다.


◆대구 화랑의 서울행…지역 기반 두고 활동 영역 확대


대구 화랑들은 대구점을 유지하면서 서울에 별도 전시장을 마련하는 '이원화 전략'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화랑마다 계기는 달랐지만, 서울에 집중된 미술시장 인프라와 국내외 네트워크에 접근해 활동 범위를 넓히려는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대구화랑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으로 서울에 진출한 대구 화랑은 총 5곳(리안갤러리, PNC갤러리, 갤러리신라, 우손갤러리, 갤러리제이원)으로 집계된다. PNC갤러리는 작년까지 청담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다가 지난 7월 삼청동으로 이전했고, 갤러리신라는 2021년 삼청동 진출 후 최근 이태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중 리안갤러리는 2013년 가장 먼저 서울점을 개설한 뒤 두 도시에서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대구에서 세계적인 작가의 한국 첫 전시를 열어도 서울에 노출되지 않아 홍보가 너무 안 됐다"며 "대구에서 연 전시를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서울점을 냈다"고 말했다.


리안갤러리 서울점은 언론·평론계 및 해외 미술계 인사들과 만나는 거점 역할을 한다. 대구까지 내려오기 어려운 해외 갤러리·미술관 관계자에게 서울에서 지역 작가를 먼저 소개한 뒤 대구 방문과 교류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대구 본점의 공간과 매출 규모는 여전히 서울점보다 크며, 서울점은 새로운 컬렉터와 해외 갤러리·작가를 만나는 전초기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1992년 대구에서 문을 연 갤러리신라는 대구 미술시장의 작품 판매 한계를 서울 진출의 직접적인 계기로 들었다. 이광호 갤러리신라 대표는 "대구에서 전시하니까 그림이 잘 안 팔렸다"며 "서울에 가면 좀 나을까 싶어 작은 공간으로 두 번 정도 해본 뒤 규모를 키웠다"고 말했다. 갤러리신라는 현재 대구점과 서울점에서 각각 전시를 열며 작가, 컬렉터, 미술관 등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북촌에 진출한 갤러리제이원은 해외 작가와 서울 고객층에 대한 접근성을 서울점 개설 배경으로 꼽았다. 정에스더 갤러리제이원 대표는 "외국에서 봤을 때는 서울이 미술시장의 중심이고, 해외 작가들도 대구보다 서울에서 전시하고 싶어 한다"며 "서울은 관객과 외국인이 많아 작품을 보여줄 기회도 많다"고 말했다.


갤러리제이원은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 한 달에 한 번가량 전시를 열며 대구 작가를 서울에 소개하고 있다. 정 대표는 "대구 갤러리가 서울에 가는 것은 시장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며 "서로 홍보하면서 대구 작가와 도시를 외부에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구 화랑 주요 지표. 생성형 AI, 챗GPT

서울·대구 화랑 주요 지표. 생성형 AI, 챗GPT

◆서울 진출 성과, 지역 작가 성장으로 이어져야


지역 미술계에서는 서울에서 확보한 작가·컬렉터·해외 네트워크를 지역으로 연결하는 한편, 대구에서도 경쟁력 있는 작가가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화랑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과 함께 청년작가를 장기적으로 발굴·육성하는 공공 미술기관의 역할도 과제로 꼽힌다.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장은 "지역 화랑들이 서울에 공간을 내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대구 화랑들이 서울에서 활동하면 지역 작가를 외부에 소개하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대구로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역 미술계가 갖춘 기반에 비해 작가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체계가 부족하다며 젊은 작가들이 지역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하드웨어에 비해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방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대구는 청년 작가들이 중요하다. 조금만 형편이 되면 다 서울로 올라가 대학원에 다니고 서울에 자리 잡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실정이다. 대구에서 공부하거나 유학에서 돌아와 활동하는 작가 등을 지역 공공 미술관에서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소장은 과거 청년미술프로젝트와 대구미술관 지하 전시 사례를 들며 "현재 이 공간이 청년작가의 실험과 발표를 위한 전시장으로 활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미술관 등 지역 공공 미술관이 단순 전시를 넘어 지역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본연의 역할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미술관 인력 채용과 운영의 전문성을 대폭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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