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이 계급인 나라 ⑩] 막대한 전력 생산해도 지역에선 쓰지도 못해

  • 박종진·장성재
  • |
  • 입력 2026-08-21 14:04  |  발행일 2026-08-21
가동 원전 26기 중 13기 경주·울진에…발전량 서울의 30.7배
수도권 10GW 전력망 확충…경주는 기업용 전력망 부족 호소
막대한 지원에도 20년간 경주·울진 인구 4만1천여명 감소
연구시설 지어도 인재 정착 난항…방폐물 부담에 신규원전까지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자리한 월성원자력본부 전경. 경주에서는 월성·신월성 원전 5기가 가동 중이다. 국내 가동 원전 26기 가운데 절반인 13기가 경주와 울진에 몰려 있으며, 2025년 경북의 발전량은 서울의 30.7배에 달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자리한 월성원자력본부 전경. 경주에서는 월성·신월성 원전 5기가 가동 중이다. 국내 가동 원전 26기 가운데 절반인 13기가 경주와 울진에 몰려 있으며, 2025년 경북의 발전량은 서울의 30.7배에 달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1억714만3천141MWh(107.14TWh). 지난 한 해 경북에서 생산된 전력량이다. 국내 인구는 물론 기업의 약 18%가 몰려있는 서울지역 발전량의 30배 이상 규모다. 경북지역 전력 생산량이 많은 이유는 원자력 발전소 덕분이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 26기 가운데 절반인 13기가 경주와 울진에 몰려 있다. 원전은 대표적인 기피(NIMBY) 시설이다. 대형 사고 시 발생하는 비가역적 피해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경제·심리적 불이익 때문에 주민들은 원전이 자신의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원전이 수도권과 최대한 먼 곳에 위치하는 이유다. 반면 경북 지자체들은 하나의 원전이라도 더 유치하려 한다. 수도권 주민에게 기피·혐오시설이 지방에선 지역소멸을 타개할 '동아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원전 실시간 운영현황.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원전 실시간 운영현황.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원전사업자 지원금만 20년간 4천689억원…인구는 4만1천명 감소


원전은 지역에 황금알을 낳아주고 있을까. 원전 설립 이후 경주와 울진은 지방세 수입이 크게 늘었다. 원자력발전분 지역자원시설세로만 각각 연간 250억~300억원, 450억~500억원가량 세입을 확보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한수원이 자체 재원으로 집행하는 사업자지원사업 누적액도 4천688억9천400만원에 달한다. 본부별로는 월성원자력본부 1천659억1천만원, 한울원자력본부 3천29억8천400만원이다. 주변지역 지원사업도 진행 중이다. 발전소 인근 도로가 새로 깔리고 복지·교육·문화시설도 만들어졌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협력 업체의 유입으로 지역 일자리가 확대됐고, 이들의 소비 활동은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이같은 막대한 지원과 생활 인프라 개선에도 불구하고 지역 인구 수는 내리막길이다. 경주 인구는 2005년 27만5천87명에서 2025년 24만4천55명으로 3만1천32명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울진군 인구도 5만6천707명에서 4만5천896명으로 1만811명 줄었다. 시설과 기관을 지방으로 옮긴다고 인구는 저절로 늘어나진 않는다. 경주에서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경주 감포읍에 들어선 한국원자력연구원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직원들의 지역 정착 문제다.


2021년 첫 삽을 뜰 당시 계획은 연구인력 500여명이 상주하는 미래 원자력 연구거점을 만드는 것이었다. 소형모듈식원전(SMR)과 차세대 원자로, 방사성폐기물 관리, 원전 해체기술 등을 연구하는 고급 연구인력이 지역에 정착하고 관련 산업까지 끌어오는 그림이었다.


지난해 말 시설은 대부분 공사를 마쳤지만 본격적인 연구인력 배치는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500명 안팎의 인력이 근무하는 구상과 달리 대전 본원 연구인력의 감포 이전을 둘러싼 내부 논의가 길어졌고, 정주여건과 근무 조건 등이 걸림돌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수원 본사 이전 이후에 반복돼 온 고민과 닮았다. 한수원은 2016년 본사를 경주 문무대왕면으로 옮겼지만 중앙부처와 수도권 접근성, 직원 정주여건 문제는 이후에도 지역사회 현안으로 남아있다.


◆ 발전량 1위에도 사용 인프라는 부족한 '아이러니'


지역별 발전량.

현재 경북 동해안에는 대형 송전망 확충 공사가 한창이다. 대표적인 구간이 울진 한울원전~경기 신가평 송전선로 연결 사업이다. 경기 신가평변전소는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는 핵심 시설이다. 지난 4월에는 동해안변환소와 한울스위치야드를 연결하는 전체 1천68m 전력구 가운데 465m 터널구간이 관통됐다.


동해안 송전망 인프라 사업이 활기를 띠는 이유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이 커지고 있어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용인 국가·일반산업단지에 필요한 추가 전력만 10GW 이상으로 보고 발전설비와 변전소, 장거리 송전망을 포함한 별도 공급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력망을 적기에 확충한다는 방침이 담겼다.


경북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한울원자력본부 전경. 울진에서는 한울·신한울 원전 8기가 가동 중이며, 경주 5기를 합치면 국내 가동 원전 26기의 절반인 13기가 경북에 몰려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북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한울원자력본부 전경. 울진에서는 한울·신한울 원전 8기가 가동 중이며, 경주 5기를 합치면 국내 가동 원전 26기의 절반인 13기가 경북에 몰려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반대로 지역에선 생산한 전력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경우 송·변전시설 등 관련 인프라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실제 경주시 안강읍에 본사와 공장을 둔 반도체·산업용 케미컬 소부장기업 <주>퓨릿은 생산 능력을 늘리기 위해 충남 예산 제2일반산업단지에 350억원 규모의 신규 공장과 설비 투자를 결정했다. 퓨릿의 타 지역 진출 배경에는 안강의 낮은 전력 공급망 안정성이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주시 손대기 기업투자지원과장은 "경주에 변전소가 8곳가량 있지만 상당수가 154㎸급 중심으로 규모가 크지 않고, 안강에는 별도 변전소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에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다.


손 과장은 이어 "데이터센터의 경우에도 40MW급 정도라면 현재 전력망 안에서도 공급을 검토할 수 있지만 300MW급 대형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려면 기존 설비로는 어렵고 별도의 대용량 변전소나 전력망 보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강희 경주시의원도 "퓨릿이 수년간 순간정전 등 전력 문제의 개선을 요청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력 생산도시에 걸맞은 산업용 전력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력은 송전선과 변전소, 배전망을 거쳐 공장으로 간다. 아무리 많은 전기를 생산해도 지역 변전용량과 배전망, 이중공급체계 등을 갖추지 못하면 기업을 유치할 수 없다. 결국 경북은 산업용 전기를 생산하는 기지에 불과한 셈이다.


◆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조차 유치 대상으로 떠안아야


경주시 양북면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에서 반입을 기다리고 있는 중저준위 방폐물 드럼. <경주시 제공>

경주시 양북면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에서 반입을 기다리고 있는 중저준위 방폐물 드럼. <경주시 제공>

국내 전력 수급을 위해 경북이 떠안은 것은 원자력 발전시설만이 아니다. 경주 문무대왕면에는 전국에서 발생하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는 방폐장이 있다. 2015년부터 운영 중인 1단계 동굴처분시설의 용량은 10만 드럼(1드럼 200ℓ)이다.


지난해 12월 12만5천 드럼 규모의 2단계 표층처분시설이 준공되면서 현재 두 시설의 처분능력은 22만5천 드럼으로 상향됐다. 2031년 3단계 매립형처분시설까지 더해지면 처분 능력은 38만5천 드럼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방폐장은 원전보다 더 심한 기피 시설로 통한다. 원전은 전력을 생산하는 산업 시설로 대규모 인력이 상주하고 각종 지원금과 지방세수 확보 등 경제적 유인이 발생한다.


반면 방폐장은 위험한 부산물을 보관만 하는 시설이다. 원전은 가동 중단이나 안전장치 작동 등 인위적 통제가 일정 부분 가능하지만 방폐장은 수백·수천 년 후의 지진, 지하수 유입, 지반 변형 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더욱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국내에는 최종 처분시설이 없어 월성·한울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 안에 보관되고 있다.


정부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부지 선정을 위해 후보지를 도출한 뒤 지자체 공모와 기본·심층조사, 주민투표를 거쳐 최종 부지를 정할 계획이다. 아직 경북에서 고준위 관리시설 유치를 공식적으로 결정한 지자체는 없다. 다만 정부의 공모 절차가 시작되면 원전이 밀집한 경북에서도 관련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원전과 마찬가지로 방폐장 역시 지역 활성화 카드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지방 입장에선 거액의 지원과 기반시설 투자가 따라오는 국가시설을 마냥 배척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셈이다.



기자 이미지

박종진

작은 이야기가 가진 큰 울림을 전합니다. (feat 카피바라)
기사 전체보기
기자 이미지

장성재

동부지역본부 소속입니다. 경주의 현장을 기록하고 지역의 변화를 전합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