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마친 정병기 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가 계명대 태권도센터 내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훈기자
지난달 7일, 세계 대학 태권도인들의 축제인 '대구2026 세계대학태권도페스티벌(Daegu 2026 World University Taekwondo Festival)·이하 대회'가 계명대체육관에서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대회는 WT(세계태권도연맹)와 FISU(국제대학스포츠연맹)가 공동 주최하고, 대회 조직위와 대구시태권도협회가 공동 주관했다. 전 세계 26개국에서 93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각국의 명예를 걸고 기량을 겨룬 명실상부한 국제대회로 치러져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번 대회는 계명대의 국제대회 운영 능력을 입증하고, 지역 태권도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체육 행사로 남았다. 또한 세계 각국 선수단과 국제심판 등 태권도 오피니언 리더들의 대구 방문으로 그간 수도권에 집중됐던 태권도인들의 글로벌 진출 창구를 다원화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에 영남일보는 대회 조직위 사무총장을 맡은 정병기 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를 만나 대회 성공의 배경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정병기 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가 지난 11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 직후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훈기자
◆ 맨땅 헤딩식으로 일궈낸 기적
정 교수는 취재진과 만나자마자 "이번 태권도 페스티벌의 성공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며 대회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대회의 시작은 정 교수가 수년 전 FISU 관계자로부터 "태권도 페스티벌을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에서 개최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시작됐다. 이후 정 교수는 곧바로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장을 찾아갔다. 당시 조 총장으로부터 들은 "정 교수가 한번 맡아서 추진해 보라"는 한마디가 도전의 출발점이 됐다.
하지만 대회 준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역 대학 교수와 대학 주도로 국제대회를 만든다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관계 기관과의 조율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정 교수가 이처럼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선 이유는 단 하나, 제자들과 지역 태권도 꿈나무들의 미래 때문이었다. 정 교수는 늘 태권도 전공 청년들의 해외 진출과 일자리 창출을 걱정하고 있었다. 또한 수도권에 비해 국제대회 참여 기회가 적은 영남 지역 태권도인들에게 국제 심판이 판정을 내리는 진짜 세계 무대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이후 전국 지자체를 상대로 대회의 개최 의사를 타전하던 중, 대구 지역 각계에서 높은 관심을 보였고 마침내 2024년 계명대체육관에서 첫 대회를 열 수 있었다.
국제대회를 치르기 위한 예산 확보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정 교수는 직접 발로 뛰는 방법을 선택했다. 대구시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한편,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국제대회 공모 프레젠테이션에 직접 참여해 경쟁을 거쳐 국비를 확보했다. 지역 기업과 스포츠용품 업체들의 후원도 잇따랐다. 대회 기간 중에는 생수 업체를 운영하는 계명대 경영학과 동문이 선수단이 마실 생수를 무상 지원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계명대를 비롯한 이선장 계명대 체육대학장님과 박주식 태권도학과 교수 등 동료 교수진과 대학 측이 물심양면 도움을 준 덕분에 대회가 비로소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며 대회 성공의 공을 대학본부와 동료들에게 돌렸다.
◆ 세계 수준으로 치러진 태권도 페스티벌
이번 대회는 수준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각국 대학생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경기 수준이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덕분에 국내 선수들도 안방에서 세계적 수준의 경기 감각을 체득하는 귀중한 기회를 가졌다. 교육자로서 정 교수가 꼽는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성과는 제자들의 눈부신 성장이다. 정 교수는 자신의 대학 수업인 '국제 스포츠 이벤트 오퍼레이션 실무'와 대회를 직접 연계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각 직무별 임무를 숙지한 뒤 대회 현장에 자원봉사자로 투입됐다. 정 교수는 "1회 대회 당시 1학년이었던 학생들이 지금 3학년이 됐다. 첫해에는 외국 선수나 FISU 관계자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수줍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3회째가 된 올해 대회에선 제자들이 외국인들과 여유 있게 소통하며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세계연맹 관계자들도 학생들의 숙련도와 전문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며 웃음 지었다.
대회의 성공은 곧바로 계명대의 브랜드 가치 상승과 태권도학과 졸업생들의 해외 진출로 이어졌다. 해외 태권도계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국제 심판, 기술위원들이 대구를 대거 방문하면서 '계명대 태권도학과'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킨 것이 그 이유다.
이미 계명대 태권도학과 졸업생 100여 명은 전 세계 각국에서 사범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에도 졸업 예정자 2명이 싱가포르에, 1명이 캐나다에 사범 자격으로 해외 취업을 확정했다. 주목할 점은 과거와 달리 보장된 급여와 안정적 생활 조건이 담보된 고급 일자리라는 점이다.
이에 정 교수는 "'K-팝'처럼 태권도 역시 세계로 뻗어나가는 'K-컬처'의 핵심이다. 대회를 통해 학교와 대구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제자들이 해외로 나갈 때 훨씬 더 정당하고 좋은 대우를 받게 됐다. 지역 대학이 가진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진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지역 태권도 꿈나무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됐다. 엘리트 경기 외에도 디비전 2·3 경기를 편성해 대구경북 지역 초·중·고 선수 300여 명이 직접 대회에 참가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정 교수는 초청된 국제 심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추가 수당을 지급해가며 지역 어린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판정해 줄 것을 부탁했다. 세계적인 심판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복을 입고 경기장에 선 경험은 어린 선수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해외 태권도 관계자와 함께 '대구2026 세계대학태권도페스티벌'을 감독하고 있는 정병기 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오른쪽). 정병기 교수 제공
◆ 대구서 숙성된 태권도 페스티벌, 이제 세계를 순회한다
대구에서 3년 연속 성공적으로 열린 태권도 페스티벌은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은 대구 대회의 뛰어난 운영 능력과 성과를 높이 평가해, 향후 이 대회를 전 세계 회원국이 유치 경쟁을 벌이는 글로벌 순회 대회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올 하반기부터 차기 개최지 선정을 위한 공식 절차가 시작된다. 대구에서 잘 숙성된 대회가 이제 전 세계를 돌며 열리는 국제 행사로 위상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태권도를 향한 정 교수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년 전북 무주에서 열리는 '스포츠태권도 국제융합컨퍼런스'에 주도적으로 참여 중인 정 교수는 남북 태권도의 화합이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다. 정 교수는 "대한민국 중심의 WT와 북한 중심의 ITF로 나뉜 태권도를 하나로 융합해 남북한 선수가 함께 국제 무대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열고 싶다. 그 역사적인 융합의 중심에 서는 것이 태권도인으로서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정 교수는 태권도계와 지역사회를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태권도를 일반적인 종목 중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육성해야 할 고유의 자산으로 바라봤으면 한다는 의견이었다.
정병기 교수는 경희대에서 체육학 학·석사를, 한국체대에서 스포츠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1993년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인턴십을 거치며 일찍이 스포츠 마케팅에 눈을 떴다. 이후 프로축구 울산 현대 등 다양한 스포츠 현장에서 활약했으며 현재 계명대 태권도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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