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기 대구시체육회장
국가대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벽을 깨우는 선수들의 숨소리, 운동장의 발걸음, 바닥에 스며든 땀방울, 이름 없이 선수를 길러낸 지역 지도자들의 헌신이 쌓여 비로소 태극마크가 완성된다. 지난 4일 폐막한 하계 아시안게임에 대구시 소속 여자근대5종 성승민 선수가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기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와 함께 사격, 펜싱, 수영, 정구, 핸드볼 등 여러 종목에서도 잇달아 메달을 획득하며 한국의 위상은 물론, 지역의 명예도 드높였다.
아시안게임은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첫 막을 올렸다. 전쟁과 식민의 상처를 딛고 스포츠를 통해 아시아의 평화와 우의를 다지자는 염원에서 시작된 대회였다. 당시 11개국이 참가했던 작은 대회는 이제 45개 국가와 1만 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여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종합경기대회로 성장했다. 아시안게임은 단순한 스포츠 축제를 넘어 아시아가 함께 미래를 그리는 약속의 무대가 되었다.
한국 스포츠 역시 아시안게임과 함께 성장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은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의 디딤돌이 되었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은 지방도시도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첨단기술과 효율적인 운영으로 한국 스포츠의 역량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언제나 지역체육이 있었다. 국가대표는 중앙에서 선발되지만 선수는 지역에서 성장한다. 운동장을 내어준 학교, 묵묵히 지원한 지방자치단체와 체육단체, 선수 곁을 지킨 지도자와 학부모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스포츠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구는 이러한 지역체육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다. 양궁과 유도, 사격, 근대5종, 빙상 등 다양한 종목에서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하며 한국 스포츠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는 대구가 국제 스포츠도시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세계 170여 개국의 젊은 선수들이 대구를 찾았고, 시민들은 자원봉사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국제사회를 감동시켰다. 스포츠가 도시를 변화시키고 시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대구는 몸소 증명했다. 이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대구마라톤,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등 굵직한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스포츠도시 대구'의 브랜드를 더욱 공고히 다져왔다.
하지만 지금 지역체육은 새로운 전환점 앞에 서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학교 운동부의 기반을 흔들고 있고, 우수 선수들의 수도권 집중은 지방체육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이러한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제 지역체육은 선수만 길러내는 시대를 넘어 지속 가능한 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초・중・고와 대학, 지방자치단체, 체육회, 기업이 함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의 훈련시설과 우수한 지도자, 시민들의 높은 스포츠 열정은 다른 지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지역체육은 더 이상 메달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엘리트체육의 뿌리이자 생활체육의 기반이며, 국민 건강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지역이 살아야 한국 스포츠가 성장하고, 지역체육이 강해야 세계무대에서도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지역체육은 더 이상 중앙을 뒷받침하는 조연이 아니다.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이다. 그것이 지역체육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아이치·나고야를 넘어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가장 확실한 해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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