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기후산업 국제박람회에서 설치된 하이렉스 공정 모형 조감도 모습. 포스코 제공
2024 기후산업국제박람회 관람객들이 수소환원제철 하이렉스(HyREX) 모형을 관람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포항제철소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 모습. 포스코 제공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었던 포항제철소가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파고를 넘기 위해 '수소환원제철'이라는 전례 없는 도전에 나선다. 본지는 상·하편으로 나눠 이 거대한 여정의 본질과 과제를 짚어본다.
◆기후 위기 시대, '철의 딜레마'를 해결할 혁신적 해법
인류 문명의 뼈대를 이뤄온 철강 산업이 거대한 전환점에 섰다. 지난 100여 년간 제철 공정의 주역이었던 용광로(고로)는 인류 발전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원죄를 안고 있다. 지구가 뜨거워지며 사막화와 해수면 상승 등 전 세계적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8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채택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인류 생존을 위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한민국도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상향하며 강력한 탄소중립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철강 산업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철은 1톤 생산 시 약 1.8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탄소 집약적 제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9%를 차지하는 철강 산업에서 탄소 감축은 이제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가 되었다. 포스코그룹은 이러한 '철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 년간 지속해 온 제철 공법을 저탄소 체제로 대전환하는 담대한 도전에 나섰다.
◆ 수소환원제철의 메커니즘: 용광로 시대의 종언
수소환원제철(Hydrogen Reduction)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H2)를 사용하여 철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전통적인 고로 공법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환원제로 석탄(코크스)을 사용한다. 석탄이 타면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가 철광석과 반응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구조다. 하지만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한다. 수소가 철광석(Fe2O3)의 산소와 결합하면 이산화탄소 대신 깨끗한 물(H2O)이 발생한다. 제철소 굴뚝에서 검은 연기 대신 수증기만 피어오르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은 기존 고로 공정과 달리 '환원'과 '용융' 공정이 완전히 분리된다. 먼저 환원로에서 수소를 이용해 고체 상태의 '직접환원철(DRI)'을 제조한 뒤, 이를 전기로에 넣어 녹여 쇳물을 생산한다. 포스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00% 수소만을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전용 전기로 기술(ESF)까지 함께 개발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원부터 공정 부산물까지 완벽하게 탄소를 제거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포스코만의 무기, 독자 기술 '하이렉스(HyREX)'의 위력
수소환원제철 기술 중에서도 포스코가 추진하는 '하이렉스(HyREX)'는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적 가치를 지닌다. 해외 경쟁사들이 추진하는 '샤프트환원로' 방식은 철광석을 일정한 크기의 구형으로 가공한 '펠렛'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펠렛은 전 세계 철광석 유통량의 30% 미만이며, 가격도 가루 형태인 분광보다 톤당 약 80~90달러나 비싸다.
하이렉스는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던 파이넥스(FINEX) 기술의 유동환원로 원리를 계승했다. 별도의 가공 없이 광산에서 채굴한 가루 형태의 '분광'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원료 확보의 용이성과 생산 원가 절감이라는 압도적인 경제성을 보장한다. 또한 하이렉스는 다단 유동로 구조를 채택해, 수소와 철광석의 반응 시 발생하는 온도 저하 문제(흡열반응)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기술적 완성도와 경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하이렉스는 향후 글로벌 철강 시장의 표준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 '탄소 장벽'을 넘는 글로벌 경쟁력과 에너지 생태계의 변화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강력해진 글로벌 환경 규제와 고객사의 요구가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 제품에 비용을 부과하는 일종의 탄소 관세다. 또한 애플,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미 공급망 전체에 대해 저탄소 제품 사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저탄소 철강을 생산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엄혹한 현실이다.
이 사업은 에너지 생태계 전반에도 거대한 파급효과를 몰고 온다. 수소환원제철 설비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무탄소 전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포스코는 '수소혼소 발전'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가스터빈에 천연가스(LNG)와 수소를 섞어 태우는 이 방식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탄소중립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기존 발전 설비를 개조해 수명까지 늘릴 수 있어 경제적이며, 향후 100% 수소 전소 발전으로 나아가는 핵심 기술이다. 포항에 구축될 수소 생태계는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한국이 전 세계 수소 산업의 메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2050 탄소중립을 향한 담대한 도전과 과제
포스코의 로드맵은 치밀하고 확고하다. 이미 3천400만 톤 이상의 쇳물을 생산하며 검증된 파이넥스 기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2028년까지 포항제철소 내에 연산 30만 톤 규모의 하이렉스 시험설비를 준공하여 기술의 상업적 타당성을 최종 검증할 예정이다. 이후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을 완성하고,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기존 고로 설비를 모두 수소환원제철 설비로 교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 거대한 여정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수조 원에 달하는 설비 투자비는 물론, 저렴한 그린 수소의 안정적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한 대규모 신규 설비를 설치하기 위한 용지 확보는 사업의 성패를 가를 시급한 과제다.
수소환원제철소 추진의 첫 단계가 용지 조성 사업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공정은 기존 설비의 단순 대체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배치와 규모를 요구한다. 발전소와 수소 설비, 물류 동선을 고려하면 제철소 인접 지역에 대규모 신규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바다 매립이라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용지 조성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구조적 필요성이 깔려 있다.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도전은 단순한 기업의 성장을 넘어, 대한민국 철강 산업이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서느냐, 아니면 도태되느냐를 결정지을 중차대한 역사적 승부처다. 포스코 측은 "'철을 만드는 방식은 바뀌어도, 철이 세상을 바꾸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 아래, 탄소 없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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