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구 앞산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영남일보 DB
'인구감소지역'인 대구 남구가 향후 5년간 무려 2천억원을 투입해 '청년이 머무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나, 정작 사업 예산의 66%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관례적으로 편성되던 국책 복지 예산에 '청년 전략' 탈을 씌워 실적을 뻥튀기한 전형적인 '예산 착시'라는 지적이 나온다.
◆ 20대 63% "남구 떠나겠다" 아우성
남구청은 지난 11일 '2027~2031년 남구 인구감소지역대응 기본계획(안)'을 공고하고, 오는 25일까지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 기본계획안을 살펴 보면 남구는 향후 5년간 2천127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저출산 대응 △교육·정주 지원 △청년 도시 등 3대 추진전략을 수행할 방침이다.
남구는 이번 기본계획을 통해 '청년'을 핵심 키워드로 대도시형 인구전략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실제 전체 예산의 79.8%인 1천697억원이 '청년이 머무는 문화·일자리 매력도시' 전략에 집중 배정됐다.
지역 청년들의 현실은 심각하다. 이번 기본계획에 담긴 남구청 자체 설문조사 결과, 20대 청년 응답자의 63.3%(60명 중 38명)가 "3년 이내에 남구를 떠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30대(50.7%·71명 중 36명)와 40대(50.6%·79명 중 40명) 역시 절반 이상이 남구를 떠날 수 있다고 밝혔다.
대구 남구청이 진행한 2026년 투자계획수립 주민 의견조사 '향후 3년 이내 타지역 이주 의향' 연령별 현황. 대구 남구청 제공
남구 대학가에서 만난 김경호(24)씨는 "학교에 다니느라 저렴한 자취방 때문에 남구에 살고 있지만, 졸업 후 직장을 잡으면 이사를 하게 될 듯하다"라며 "구청에서 청년 도시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정작 체감되는 일자리나 주거 지원 정책은 잘 와닿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남구는 지역 6개 대학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 덕분에 20~24세 여성 1인 가구 비율(48%)이 대구 평균(24.4%)의 두 배에 달한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부재와 노후 주거 환경 탓에 취업·혼인기에 접어드는 30대 여성 유배우율(50.1%)은 대구 최하위 수준에 머문다. 자녀를 둔 가구마저 교육 여건 악화로 수성구 등 학군지로 유출되는 이중고가 겹쳐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구의 기본계획을 들여다보면 '청년 전략'이라 명시한 예산의 83.3%에 달하는 1천414억원(전체 예산의 66.5%)이 기존 보건복지부 국·시비 매칭 사업인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으로 채워져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나 지자체 자체 신규 예산이 아닌, 매년 들어오던 중앙부처 연례 보조 예산을 청년 전략 항목 아래에 집어넣어 착시를 일으킨 셈이다.
대구 남구청이 '2027~2031년 남구 인구감소지역대응 기본계획(안)'을 통해 발표한 기본계획 추진전략 및 실천과제. 대구 남구청 제공
◆ 2천억 중 2.8%뿐인 실질 청년 예산
노인 일자리 예산과 건축물 조성비(앞산 문화·관광 일자리플랫폼 구축 약 205억원) 등 대형 항목을 제외하면, 남구가 청년들에게 직접 제공하는 실질적인 정책의 면면은 더욱 초라해진다. 남구 청년들이 꼽은 유출 원인 1위가 '일자리 부족(41.6%)'과 '주거 부담(22.5%)'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 기업 유치·육성 예산은 연 2천만원(인구감소지역 기업지원 특례보증 이차보전)에 불과했다.
또 청년 직접 지원 사업들 역시 '쪼개기 예산'이 대부분이었다. △청년 자격증 응시료 지원(연 3천만원·연 300명 대상) △청년 외식업주 위생 컨설팅(연 2천만원·연 20개소) △청년 외식업소 주방 환경개선(연 2천만원·연 10개소) 등 1천만~3천만원 수준의 소액 사업이 주를 이뤘다.
청년 유출 방지와 저출생 극복을 위해 남구가 내놓은 핵심 미혼 청년 대책마저 연 2천만원 예산의 '미혼남녀 만남 청년캠퍼스(공공 소개팅)'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예산 규모가 큰 '청년 도전 지원사업(연 7억9천만원)'조차 구직단념·은둔 청년을 위한 국비 매칭 사업(국비 88%)에 불과해, 정규직 일자리 창출 등 근본적 고용 개선책과는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이번 기본계획은 지자체가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 자율적으로 기획·투입하는 핵심 재원인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중장기 청사진마저 사실상 빠져있다. 전체 계획안에서 기금 반영액은 단 15억원(전체 예산의 0.7%)에 불과한데, 그나마도 '인구감소위기대응센터 운영' 명목의 전문가 자문료, 포럼 개최 등 행정·용역 기구 유지비로 집행된다.
대구 남구청 '2027~2031년 남구 인구감소지역대응 기본계획(안)'에 담긴 지방소멸대응기금 청사진은 인구감소위기대응센터 운영 명목의 전문가 자문료, 간담회 개최 등 기구 유지비로만 구성돼 있다. <대구 남구청 제공>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남구청 이남현 인구총괄과장은 "기본계획을 3대 전략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노인 일자리가 불가피하게 청년 전략 쪽으로 배치됐다. 의견 수렴 기간인 만큼 수정을 검토하겠다"며 "청년만을 위한 사업은 별도로 수립 중인 '청년친화도시 기본계획'에 따로 모아서 담을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남구 여건상 대기업이나 양질의 일자리를 유치하기엔 부지도, 예산도 부족하다"며 "남구 청년들에게 자부심과 정체성을 심어줘 같이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사업의 명칭과 칸막이만 바꾸는 임시방편일 뿐, 예산 불균형을 해소하진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2천127억원에 달하는 총예산을 성격별로 재분류해 보면 노인 공공일자리(66.5%), 주거 지원(12.7%), 건물 신축(9.6%) 순으로, 청년층과 관내 기업에 직접 투입되는 순수 예산은 전체의 2.89%(61억5천만원)에 불과하다.
◆ "숫자 부풀리면 청년 불신 자초…'기민한 자치' 대전환해야"
경북대 행정학부 하혜수 교수. 경북대 제공
전문가들은 국비 보조금으로 숫자를 부풀리는 행정은 도리어 지역 청년들에게 거대한 배신감과 불신을 안겨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북대 하혜수 교수(행정학부)는 "차라리 중앙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저출생·고령화 대응 계획'이라고 솔직하게 공표했어야 한다. 청년을 앞세워 2천억원대 거대 포장지를 씌워놓고 알맹이를 열어보니 66%가 노인 일자리라면 청년층의 실망과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청년 전용 계획 별도 수립'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내놨다. 하 교수는 "남구처럼 재정 자치 역량이 열악한 소규모 지자체가 인구 기본계획과 청년 계획을 따로따로 쪼개어 짜는 것은 행정 낭비"라며 "종합계획을 세울 때부터 청년 정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설계해야 실행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방소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정책 대전환의 필요성도 제시됐다. 하 교수는 "청년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주거·육아·고충을 디지털·AI 수단으로 일상적 숙의(熟議)하고, 이를 즉각 정책이나 주민투표로 연결하는 '기민한 자치단체'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청년들에게 '내 목소리가 남구를 바꾼다'는 실질적 효능감을 제공하는 것만이 떠나가는 청년들의 발길을 돌릴 유일한 열쇠"라고 조언했다.
대구시 인구감소위기대응센터 이상인 센터장은 "남구의 5개년 순수 구비 재정은 200억원도 채 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자율성이 크지 않다"면서 "결국 관내 대학 및 병원 인프라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월세 주거비, 앞산·도서관 같은 정주 여건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대학생과 초기 직장인 청년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안착할 수 있도록 정주 인프라를 정밀하게 고도화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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