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1] 인물열전 <10> 우광훈의 '나는 조선의 일민(逸民)이다 - 우국지사 박능일 스토리 (군위)'

  •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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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8-17   |  발행일 2011-08-17 제7면   |  수정 2021-05-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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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박능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 군위군 우보면 나호3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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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Story Memo
군위군 우보면에서 태어난 박능일(朴能一·1859∼1917)은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지만, 불의를 보고는 절대 참지 못하는 기개있는 선비였다. 을사조약으로 일본에게 국권을 수탈 당하자 의분을 참지 못한 그는 기울어진 국운을 막을 힘이 없음을 한탄하며,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하기로 결심한다. 박능일은 1917년 7월20일 흥해읍 우목리 바닷가 바위에 ‘원수의 나라를 섬기며 살기보다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 조선일민 박능일’이라는 한자 19자를 새긴 뒤 바다에 몸을 던진다. 투신한 지 며칠 뒤 바닷가로 그의 시체가 떠올랐으나, 일본 경찰이 세상에 여론이 퍼질 것을 우려해 이 일을 극비에 부침으로써 당시 그의 죽음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 한다. ‘우국지사 박능일 스토리’는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박능일의 일화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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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 우보면 나호3리에 있는 박능일의 묘. 후손 박수현씨가 관리하고 있다.


동해가 눈앞에 펼쳐진 영일(迎日)군 흥해읍 우목리. 한갓진 곳에 위치한 목조건물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백사장 앞에 도착하니, 오른쪽으로 바다를 향해 우뚝 솟아오른 갯바위가 보였다. 마을을 향해 첩첩으로 이어진 높고 거친 바위는 마치 백사장에 드러누운 용이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그 검고 단단한 바위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깃든 듯 나를 흥분케 했다.

가을이 가까워진 탓일까. 공기는 한층 차고 매끈하였다. 바다는 새벽이어서 그런지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고운 모래를 밟으며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선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바람이 약해서인지 파도는 그다지 드세지 않았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파도. 그 속을 나는 주저없이 걸어 들어갔다. 바닷물이 무릎 높이까지 차오를 때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찰랑대는 바닷물로 세수를 했다. 바닷물은 예상외로 따스했다. 나는 잠시 바닷물에 투영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깊게 팬 주름, 영락없는 노 예의 얼굴, 바로 그것이었다.

 


노예….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역(使役)되는 사람. 나라를 잃어버린 신민은 결국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 됐다는 사실에 더 이상 분노하는 사람도, 반항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현실로 받아들이듯 그렇게 순응하는 삶이 나는 너무나 역겨웠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네 숨은 뜻을 내가 전하리라.”

난 나의 얼굴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순간, 세찬 바람이 불어와 갓이 머리 위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아무리 동여매도 갓끈은 헐거웠다. 단발령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투는 그 안에 오도카니 버티고 서 있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왜병이 우리 강토를 휩쓸고 다닐 때도, 순사가 나를 찾아와 창씨개명(創氏改名)이며 단발령(斷髮令)을 들먹일 때도 힘없는 나라를 탓하진 않았다. 경술국치(庚戌國恥)에 분노해 처자를 거느리고 정처없이 산하를 떠돌아다닐 때도, 깊은 산골에 움집을 파서 그곳에 거처하면서 상수리를 주워 생활을 영위할 때도 나라를 판 짐승같은 놈들을 탓하진 않았다. 난 오직 미래만을 꿈꿨다. 내 조국의 광복을 열망했다. 그렇게 국권회복을 위해 난 충심을 다했다. 하지만 나의 꿈은 한낱 허망한 바람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라의 운세는 더욱 더 기울어 국권이 왜놈들의 수중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 의분의 불길은 활활 치솟았다. 그리하여 난 결심했다. 내 죽음으로 잠든 조국을 각성시키리라고.

우르릉, 우릉!

성난 구름소리에 난 그제야 굽혔던 몸을 곧추세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비가 내릴 것 같진 않았다. 바닷물은 이제 내 허리까지 차올랐다. 여명으로 불타는 수평선이 눈앞에서 울렁거렸다. 채 마르지 않은 바닷물이 볼을 타고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눈물만큼이나 짠 바닷물.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난 알 수 없었다.

“진정 죽음뿐이던가?”

어젯밤, 벗에게 내 뜻을 전했을 때 그는 애잔한 목소리로 이렇게 되물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 근심과 의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라를 잃고 난 뒤 난 하룻밤도 편히 잠을 이룬 적이 없다네. 난 한낱 무력한 촌로. 누가 이 나라를 위해 나를 부를 것이며, 나 또한 누구의 도움을 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기울어져 가는 대세를 가만히 지켜볼 순 없는 법, 그리하여 난 결심했네. 죽음으로써 민족혼을 일깨우기로. 그게 내 염원의 궁극일세.”

물론, 벗은 내 뜻에 반대했다.

“그래도 죽음은 과하네. 살아서 광복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월성박씨이며, 호를 남길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하다는 뜻으로 무호라고 나 자신을 칭하였네. 벼슬에 뜻이 없어 한평생을 고향에 머무르면서 향리에서 서당을 차려 후학을 양성했지. 내 자신의 무능함을 잘 알기에 선뜻 인민 속으로 들어가기가 두려웠으며, 학문을 득했기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나라 조선은 내 무능함보다, 아니 내 생명보다 더 고귀한 것일세. 적어도 나는 조국을 그렇게 배우고 가르쳤다네. 나는 새로운 길을 만들 생각은 없네. 나 혼자만이 간다면, 그건 길도 아닌 셈이지. 하지만 나의 행적을 발견한 사람들이 적어도 내 뜻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그 의미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감출 수 없네. 벗이여. 나란 인간은 보잘 것 없으나, 내 뜻과 의지 만은 고결하네. 그 고결을 죽음으로 증명하고 싶네.”

“자네 식솔들은 어찌하고? 그들에겐 말했는가?”

“나라가 없다면 식솔들도 없는 법. 그들도 나의 마음을 이해해줄 걸세.”

“안되네. 안 돼! 난 자네를 이렇게 보낼 수 없네. 보낼 수 없어…”

벗은 크게 흐느꼈다. 그렇게 우린 기울어져 가는 국운과 염세적인 선비들의 안일을 안주삼아 긴밤을 지새웠다.

새벽녘. 벗에게 인사를 고하고 집을 빠져나오자, 내 심장의 온도만큼이나 뜨겁고 현의 떨림만큼이나 애절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난 결국 참았던 눈물을 콸콸 쏟아냈다. 그렇게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며 이 동해 앞바다에 당도한 것이다.

나는 바닷물 속을 첨벙첨벙 걸어 갯바위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옛날, 신라의 왕은 왜구의 침략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이곳 동해에서 용이 됐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 동해를 지키는 용은 어디에 있는가? 어서 나와 나를 맞으라! 나 박능일이 왔다. 나 역시, 그대를 따라 이 동해의 용이 되리라. 저 사악한 무리의 잔인한 만행으로부터 우리 백성을 지키리라.

날카롭게 삐져나온 암석의 무리들이 발바닥으로 전해져 온다. 그렇게 경사진 굴곡을 따라 바위 위에 올라선다. 바다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니 절벽 아래로 천 길 낭떠러지가 펼쳐진다. 청옥같은 바다는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밀려드는 파도는 곧장 비명을 내지르며 절벽 위로 솟구친다. 절벽 아래를 비상하는 갈매기여, 내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가. 넌 자유다. 나도 이제 자유다. 나는 얼른 붓을 집어 든다. 그리고 쓴다.

擧其事而生 不若 蹈海而死 朝鮮逸民 朴能一거기사이생 불약 도해이사 조선일민 박능일
(원수의 나라를 섬기며 사는것은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 벼슬하지 않고 파묻혀 지내온 조선의 선비 박능일)

파도가 친다. 바람이 분다. 용이 운다. 드디어 먹구름 사이를 뚫고 쏟아지는 햇살. 나는 붓을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고, 내 조국의 슬픈 운명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조선이여, 패망한 국가여! 나 너에게 죽음으로써 호소한다. 부디, 나의 절망으로 네 희망을 노래하라. 철썩, 붉은 빛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며 사방으로 흩날린다. 여명의 눈부심. 나는 갓을 벗어 바위 위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천천히 신발을 벗는다. 순간, 바위마저 집어 삼킬 듯 거대한 파도가 엄청난 기세로 밀려든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일체의 미동도 없이 저 성난 파도를 응시한다. 파도가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곧장 나의 몸을 덮쳐버린다. 바닷물과 모래와 내가 하나 된다. 물살의 흐름에 맞춰 나의 육신이 춤을 춘다. 그렇게 세상의 오욕을 씻어낸다. 나의 울분을 씻어낸다. 들숨과 날숨, 그 짧은 찰나. 언젠가 찾아올 조국광복의 그 날을 간절히 희망한다. 행복하다. 꿈이 있어 행복하다. 그렇다! 나는 조선의 선비다. 철종 9년 2월29일,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에서 태어난 나는 무호(无號) 박능일이다. 아,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나는, 나는 자랑스러운 조선의 일민(逸民)이다.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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