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2]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2> 이상국이 만난 운문사 처진소나무에 공양하는 청도 동곡막걸리

  • 박관영
  • |
  • 입력 2012-09-10   |  발행일 2012-09-10 제13면   |  수정 2021-06-02 15:58
20120910
매년 두 차례 동곡막걸리를 공양받는 운문사 처진 소나무. 어느 고승이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20120910

◆ Story Memo
청도 운문사는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虎踞山·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상)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비구니 전문 도량으로 유명하다. 원광법사가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한 곳이기도 하다. 사찰의 오랜 역사만큼 눈길을 끄는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한다. 그중 유난히 시선을 끄는 명물이 있는데, 바로 ‘운문사 처진 소나무’다. 운문사 앞뜰에 있는 이 소나무는 매년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열두 말의 막걸리를 공양받는다. 그 막걸리가 청도군 동곡면 소재지의 술도가에서 빚어낸 동곡막걸리다. 82년의 역사를 가진 동곡막걸리는 경상도 지역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술이다. ‘작가,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2편은 운문사 처진 소나무에 공양하는 청도 동곡막걸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옛날 어느 고승이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처진 소나무 전설’에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보탰다.



20120910
운문사 처진 소나무에 공양하는 청도 동곡막걸리. 400년 이상 된 노송이 여전히 푸른 운치를 자아내는 것은, 좋은 쌀과 물로 빚은 동곡막걸리로 해마다 장수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나는 여인 수선향(水仙香)이오. 머나먼 태고에 천제(天帝)의 딸이었던 나는 인간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가만히 호거산(虎踞山)에 숨어들었소. 호거산에는 웅녀와 함께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다가 스무 날 만에 뛰쳐나온 호신(虎神)이 살고 있었지요. 이 호랑이는 이후 다시 동굴로 돌아가 천제에게 빌고 빌었는데, 천제는 백일 동안 곰이 먹었던 양의 두 배인 쑥 두 자루와 마늘 마흔 쪽을 다 먹으면 비록 스스로는 인간이 되지 못하지만 자식은 인간을 낳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지요.

호랑이는 죽을 힘을 다해 그 기한을 채웠고 마침내 아기를 낳았는데, 그가 호천주(虎天酒)였지요. 호천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청년이었소. 그는 술과 시(詩)와 노래를 좋아하였지요. 중국인들이 동이(東夷)를 가리켜 선장양(善藏釀, 발효술을 빚어 저장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했던 것은 바로 이 분 때문이더이다.

호천주는 호거산에 큰 저장고를 만들어 거기에 곡물로 백주(白酒)를 빚어 마셨지요. 취중에 시를 읊고 가무를 즐기면 산속의 노루, 사슴, 승냥이, 너구리도 함께 춤을 추었고 꾀꼬리, 종달새, 참새, 까치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호천주는 그 발효술의 효험으로 수천년 젊음을 누렸던 분이외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신라시대에 이르러 그는 호거산 벼랑에서 쏟아지는 소나기에 수많은 꽃이 한꺼번에 낙화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지요. 이후 머리를 깎고 불문(佛門)에 들었습니다. 그를 오랫동안 사모해 왔던 나는 그가 머문 작갑사(鵲岬寺, 청도 운문사의 창건 당시 이름) 주변을 맴돌면서 그분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 절에는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보양(寶讓)이라는 큰 스님이 계셨지요. 그 분이 귀국할 때 우연히 서해 용궁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그곳에 불법을 전하고 용왕의 아들을 신라로 데려왔더군요. 그의 이름은 이목(璃目)이라 하였습니다. 이목은 물고기처럼 투명하고 둥근 눈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절 아래 마을의 운연(雲淵, 구름못)이란 연못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암자에 다녀오던 호천주를 뒤따르던 나를 그가 발견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보고 그만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하더이다. 연못의 수선화를 꺾어 바치며 피어오른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하지만 수천년 동안 한 기남자(奇男子)를 연모해 온 내게 그가 눈에 들어올 리 있겠습니까. 이미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나의 말에 그는 그것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작갑사에서 술 마시는 스님이외다” 그렇게만 대답하였습니다. 사랑에 눈이 뒤집힌 이목은 구름못 맑은 물에 곡식을 발효시켜 감미로운 백주(白酒)를 만들고는 호천주를 불러 함께 마시자 하였습니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주연(酒宴·술잔치)이 펼쳐졌습니다. 호천주가 술에 취해 춤을 추다가 문득 비틀거리자 이목은 갑자기 그를 연못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습니다. 그 장면을 숨어서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내가 물속으로 뛰어들자 이목은 나를 따라 다시 물속으로 달려들어왔지요. 하지만 구름못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었고, 나는 마침내 호천주를 안고 미궁(迷宮)으로 내려가 깊고 아득한 사랑을 이뤘더이다.

그런데 하늘에선 큰 난리가 났지요. 공주인 내가 연못으로 사라졌는지라 천제의 분노가 극에 달했지요. 이목은 나를 찾기 위해 구름못의 물을 퍼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마른 하늘이 으르렁거렸습니다. 천사 하나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이목을 죽이려 하였지요. 이목은 이를 알아차리고 스승인 보양 스님에게 달려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큰 스님은 그를 작갑사 마루 밑에 숨겼습니다. 천사가 다가와 스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목은 어디 있느냐?”

스님이 배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것이 이목(梨木)이지 않소?”

그러자 천사는 배나무에 큰 벼락을 치고는 올라가버렸습니다.



천사가 돌아가자 보양은 이목을 불러 말했습니다.

“너는 큰 죄를 지었다.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였고, 그 때문에 천제의 공주를 죽였으며 또 스승을 시켜 하늘까지 속이게 하였다. 천년 공양으로 참회하지 않는다면 너는 결코 승천(昇天)하지 못하고 바닥을 기는 이무기에 그칠 것이다. 하늘이 벼락을 내린 이곳에 내가 빈 그릇을 하나 엎어놓을 것이다. 너는 이곳에 술을 부어 호천주에게 바치고 해마다 두 차례 깊이 뉘우치거라.”

이렇게 말하고 보양은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꽂았습니다. 나무는 순식간에 자라나 거대한 반송(盤松)이 되었지요. 소나무는 뿌리를 멀리 뻗어 운연 아래에까지 닿아 그 물을 다 빨아들였다고 합니다. 연못의 미궁에 있던 아름다운 그분과 나는 함께 반송에 흘러들어 합환목(合歡木)이 된 것이지요. 이목은 봄과 가을마다 우리에게 술을 부으며 참회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랑은 짧고 삶은 덧없으니

취했을 때 깊이 사랑하거라

구름못에 가득한 수선화 향기에

천년 눈 먼 그리움이 흐르노라

이목아 이목아 너는 어찌하여

사랑도 잃고 하늘도 잃었느냐

작갑사 달빛이 바람에 흔들릴 때

배꽃 가득한 창에 기대어 우노라

이무기야 이무기야 너는 어찌하여

사랑도 잃고 연못도 잃었느냐”



보양 스님은 왕건에게 나라를 창업할 비책(秘策)을 전하였기에 작갑사는 고려 태조가 된 그에게서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받았지요. 운문(雲門)이란 이름은 보양이 건의한 것으로 옛 구름못을 기억한 말이었습니다. 1500년 뒤, 밝은 별이 하나 날아와 비구니 선풍(禪風)을 일으키니 운문사는 나라의 명찰(名刹)이 되었지요.



반송은 임진왜란 이전에 이목이 용이 되어 승천하면서 사라졌습니다. 내 사랑 호천주와 나 수선향도 용을 따라 하늘로 올랐지요. 그러다가 문득 솔방울 하나가 남아 다시 성목이 되었더이다. 병란으로 운문사가 불탈 때에는 칡덩굴들이 마치 귀한 이를 지키듯 감싸고 안아 소실을 면했다고 하더이다.

반송은 온몸을 낮춘 겸허와 변치 않는 지조, 그리고 은은한 그늘로 만든 자비를 실천하는 3덕송(三德松)인지라 오래전부터 스님들이 고승(高僧)처럼 여겼습니다. 그들은 이목이 하던 주례(酒禮)를 이어 막걸리 예불을 시작했더이다. 해마다 4월과 9월에 절에서는 막걸리 열두 말을 받아 나무 주변에 도랑을 파고 부어 반송의 장수를 기원합니다.

호천주는 이날이 오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릅니다. 이 막걸리 공덕에 반송은 지금도 수없이 솔방울이 달리고 새 가지가 땅에 닿아 지주를 받쳐야 할 만큼 정정하오이다. 반송은 학인(學人) 스님들이 잔디밭에서 야외수업을 할 때 함께 청강하기도 하지요. 호천주와 수선향 또한 그 법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반송에 주는 술은 절에서 사십리 떨어진 동곡에서 만든 것이라야 하더이다. 1929년부터 시작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빚어온 이 양조장은 텁텁함이 없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깔끔한 술을 만들던 호천주의 솜씨를 찾아냈더이다. 쌀 삼분(三分)에 밀 칠분(七分)을 배합해 담담하고 어진 맛을 만들어냈고, 옛 구름못의 물맛을 지닌 운문댐 동창천의 청정수를 써서 선미(仙味)를 내더이다. 동곡막걸리 열두 말을 마신 삼월삼짇날, 화전(花煎) 부침개와도 같은 꽃산자락을 바라보며 합환목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아시는지요. 취한 호천주가 수선향을 껴안고 얼쑤절쑤 흥이 일면 봄밤이 더없이 황홀해지더이다. 막걸리에 취한 나무가 수천년 사랑을 돋우는 청도땅에 한번 오셔서 도도한 신명으로 동취(同醉)해 보지 않으려오?


글=이상국(스토리텔링 전문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공동기획: 공동기획:pride GyeongBuk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