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장사꾼] 경주 칵테일바 '분' 최재광 사장…경주 최부잣집 13세손 美 이민후 귀향, 전통 가미한 21가지 칵테일 라인 만들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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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9   |  발행일 2022-04-29 제34면   |  수정 2022-04-2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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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광 바텐더가 자신의 시그니처 칵테일인 블랙핑크를 내밀고 있다.

경주 황리단길에 가면 색다른 칵테일 바가 있다. 상호는 '분(芬)'. 분황사 할 때 그 '분'이다.

바텐더 최재광(36). 이 집 사장의 지난 시절은 극과 극을 오간다. 경주최씨, 그 짱짱한 최부잣집 13세손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문중에 대한 인식이 미약했다. 할머니가 교동법주 가양주 기능보유자인 줄도 몰랐다. 17세 때 미국 이민 가서 34세 때 경주로 귀향한다. 밑바닥 기듯 17년간 생고생 해가며 칵테일 기능을 배웠다.

칵테일 전문가인 '바텐더'는 술이 아니라 맘을 쥐락펴락하는 자. 단골의 맘 상태, 생리적 특성, 재력, 인문학적 수준 등을 감안해 그날 상황에 가장 적합한 메뉴를 제안해 낼 수 있는 교섭력·눈치·감각을 겸비해야 한다. 늘 같은 것만 마시게 해선 안 된다. 그래서 그럴까, 진정한 칵테일은 술이 맘의 초점에 정확하게 포개진다. 미국에 처음 가서 샌디에이고에 있는 '민속촌'이란 한인 주점에서 알바 하고 LA 칵테일 바 '카퍼스틸' 에서 칵테일과 관련된 미국적 정서를 배웠다. 이에 앞서 싱글 몰트위스키의 대명사로 불리는 글랜피딕(Glenfiddich) LA지부 위스키 홍보대사까지 된다. 그러면서 야심이 생긴다. 1900년대 후반부터 암흑기로 접어든 크래프트 칵테일 문화를 부활시키고 싶었다. 금주법 이전 칵테일 황금 시기를 한국 버전으로 재현시키는 것이다. 그는 그걸 위해 분자요리부터 한국 전통주에 대한 안목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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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스러운 칵테일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칵테일 바 '분'의 입구 전경.

그리고 그는 어느 날 바 컨설팅 전문가가 된다. 코로나 정국, 잃어버렸던 최부자 가문을 자각하게 된다. 2013년 그의 고향 집을 포함한 고향 교리 전체가 민속마을로 지정된다. 고향 집은 지금도 아흔두 살의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200년 된 그의 고향 집에는 150년 된 탱자나무, 350년 된 모과나무가 있다.

극한 경쟁의 미국, 거기서 야무진 근육을 익혔다. 무스로 뒤로 넘긴 올백 머리, 윗단추 두 개를 풀어 놓은 흰색 남방, 꽝꽝하게 정돈 된 이목구비, 야성이 느껴지는 음성, 능란한 화술과 매너, 언뜻 영화 대부에 출연한 알파치노 느낌도 전해진다.

지난해 12월31일 칵테일 바를 오픈한다. 그는 상호에 민감하다. 처음에는 '주도가(酒都家)'를 생각했다. 그런데 고향 집 맞은편에서 수제 된장을 파는 할머니가 유명한 동양화가 소산 박대성의 누님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인연으로 소산으로부터 현재 상호와 글씨 꼴을 받게 된다.

그는 가게를 리모델링 할 때 전통이 숨 쉬는 바로 빚고 싶었다. 그래서 고향 집 중문 대문을 바텐 용 나무로 활용한다. 칵테일을 만들 때 허브, 약재 등 다양한 매개물이 중요하다. 미국에선 정향 같은 서양스러운 약재, 경주로 와선 고향 집 탱자와 모과, 황기, 당귀, 홍삼, 감초 등 약 30가지 약재로 각종 청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그만의 21가지 칵테일 라인이 형성된다. 직접 양재를 이용해 담근 수제 진토닉, 계란 흰자를 머랭으로 친 뒤 복분자, 생강, 꿀 등 한국적 물성을 섞어 만든 블랙핑크, 20대 여성을 겨냥해 식용 비눗방울을 이용한 수박바, 진지함보다 즐거움과 재미를 주기 위해 10여 가지 향기를 뿜어내는 가스 향기 훈연 증폭기도 사용한다. 칵테일용 큐빅 얼음도 용도별로 5종을 사용한다. "정작 미국의 칵테일바는 우리의 소주방 같이 수더분한데 우린 너무 진지하고 힘이 들어간 것 같은데 저는 그 분위기를 펀하고 편하게 깨고 싶어요.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라는 걸 절감하는 요즈음인 것 같습니다. ㅎㅎㅎ"

17년 만의 귀향 칵테일, 최재광표 신토불이 칵테일의 신지평을 여는 웃음으로 여겨졌다. 월요일 휴무. 오후 5시 오픈.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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