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경북 청도 덕산방직] 멈춰선 방직공장 굴뚝엔 고소한 빵 냄새가 훅 덮쳐 온다

  • 류혜숙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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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22 14:42  |  발행일 2026-08-22
1990년대 섬유공장이었던 덕산방직. 외관은 영락없는 시골 중소기업 공장이지만 현재 내부는 1980~90년대를 소환하는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1990년대 섬유공장이었던 덕산방직. 외관은 영락없는 시골 중소기업 공장이지만 현재 내부는 1980~90년대를 소환하는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비안개 사이로 지붕에 덩그러니 올라 선 오리배가 보인다. 푸른 박공지붕의 건물 외관은 영락없는 시골 중소기업 공장이다. 주변에는 차들이 틈 하나 없이 빼곡 들어차 있다. 작은 유리문 왼편에 1986년식 각 그랜저가 비스듬히 멋 부리며 서 있고, 오른편에는 붉은 갈기를 가진 핑크색 스프링 말이 유혹의 눈빛을 보낸다. 유리문 위에 '덕산방직'이라 쓰여 있다. 한 사람이 문을 밀며 나오자 와글와글한 소음과 고소한 빵 냄새가 훅 덮쳐 온다. 방직공장 냄새가 이리도 고소할 일인가.


◆ 카페 덕산방직


덕산방직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천정 트러스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챈다. 밖에서 보았을 때보다 천정은 훨씬 높고 공간도 훨씬 넓다. 절반은 카페, 절반은 전시 및 체험 공간이다.

덕산방직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천정 트러스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챈다. 밖에서 보았을 때보다 천정은 훨씬 높고 공간도 훨씬 넓다. 절반은 카페, 절반은 전시 및 체험 공간이다.

덕산방직의 구내식당과 여자기숙사는 휴게실 및 전시실로, 남자기숙사는 물품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덕산방직의 구내식당과 여자기숙사는 휴게실 및 전시실로, 남자기숙사는 물품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천정 트러스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챈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밖에서 보았을 때보다 천정은 훨씬 높고 공간도 훨씬 넓다. 이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빈자리가 없다. 노인부터 아이까지 보인다.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음료를 만들고, 또 한쪽에서는 열심히 빵을 만든다. 이곳은 원래 '덕산방직'이라는 섬유공장이었다.


1970~90년대 대구경북은 제일모직과 코오롱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섬유산업을 이끌었다. 인근 지역인 경산은 물론 청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정부는 농촌지역의 발전과 인력 수급을 목표로 작은 공장들을 유치했는데, 시간이 흘러 섬유산업은 퇴행했고 그로인해 많은 관련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덕산방직도 그들 중 하나다. 향토역사문화 단체인 대구경북근현대사연구소(소장 강철민)는 문 닫은 방직공장을 인수해 2024년 빈티지 카페 '덕산방직'으로 재탄생시켰다. 공장 본동의 절반은 카페 공간이고, 절반은 전시 및 체험 공간이다. 노후 설비와 기계 일부는 보존해 현대 산업 유산으로 전시했다. 구내식당과 여자기숙사는 휴게실 및 전시실로, 남자기숙사는 물품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 1994 체험관


덕산 오토바이 종합판매장, 신일사, 진돗개 컴퓨터 랜드가 옛 거리의 가게들처럼 이어진다. 초록색 포니택시와 하얀색 포니 픽업트럭은 포토 핫플이다.

덕산 오토바이 종합판매장, 신일사, 진돗개 컴퓨터 랜드가 옛 거리의 가게들처럼 이어진다. 초록색 포니택시와 하얀색 포니 픽업트럭은 포토 핫플이다.

청도 전파사. 세탁기, 브라운관 TV, 라디오, 전화기 등 하나씩 집에 들일 때마다 엄청난 기쁨을 주던 물건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다.

청도 전파사. 세탁기, 브라운관 TV, 라디오, 전화기 등 하나씩 집에 들일 때마다 엄청난 기쁨을 주던 물건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다.

까치 만화방. 오래된 만화책들이 가득하고 누구든 무엇이든 꺼내 볼 수 있다. 주렁주렁 걸려 있는 수많은 종이들은 사람들이 남긴 추억들이다.

까치 만화방. 오래된 만화책들이 가득하고 누구든 무엇이든 꺼내 볼 수 있다. 주렁주렁 걸려 있는 수많은 종이들은 사람들이 남긴 추억들이다.

카페 공간 구석의 작은 통로를 지나면 방직공장의 나머지 절반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오락실도 있고 만화방과 문방구도 있고 의상실과 이발과, 전파사, 시계방 등의 공간이 있고 옛 물건들이 놀랄 정도로 다양하고 많다. 시계방인 '신일사'에는 1980~90년대, 그리고 일부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되던 가전기기나 카메라, 휴대폰, 시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명품 시계를 수리하고 '고급 밧테리 약'도 있단다. '까치 만화방'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만화들로 가득하다. 한 청년이 드래곤볼 시리즈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진돗개 컴퓨터 랜드'는 무상 수리에 무상교육까지 해 준다. '나일롱 그릇집'에는 갖고 싶은 알록달록한 것들이 꽤 많다. '청도 의상실'에는 라피도, 엘르, 라코스테 등 추억의 브랜드와 현존하는 브랜드가 뒤섞여 있다. '매전 수퍼마켙'은 옛날 흔했던 동네 구멍가게다. 맘마, 점프, 아기밀 등 분유통들 아래에 별뽀빠이와 스타킹, 미원 따위가 진열되어 있다. 금복주, 경월, 선양 등 소주 됫병(1천800㎖)들의 푸르스름한 유리 빛은 지금도 단단하다.


초록색 포니택시와 하얀색 포니 픽업트럭은 포토 핫플이다. 포니는 우리나라 최초로 독자 생산된 국산 자동차다. 라이방 멋들어지게 끼고 운전대를 잡은 1980년대 잘나가는 형님들처럼 사람들은 한껏 폼을 잡고 사진을 찍는다. '덕산문방구'는 1980년대 국민학교 교실의 풍경과 학교 앞 문방구를 재현한 곳이다. 문방구는 100원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의 만물상 같은 곳이었지. 풍금에 종이 악보가 놓여 있다. 300원 하던 것이 어느 날 500원으로 껑충 뛰었을 때의 충격을 어찌 잊겠나. 이제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 '까치 오락실'에는 부자가 나란히 쪼그려 앉아 현란한 손기술을 보이며 작은 모니터 안 세계에 완전히 몰두해 있다. 동전을 넣지 않아도 게임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오락실은 천국이고, 부자는 천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 큰 창 앞 '별 다방'에는 엄마들이 모여 앉아 수다중이다. 아빠들이 퇴근하기 전 어느 집 안방에 모여 앉아 퀼트를 하거나 전자레인지 공동구매를 모의하던 동네 아줌마들처럼.


이곳은 옛날 작은 동네의 큰 길을 연상시킨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부터 마을 시장에 이르는 그 길에는 오락실이 두 군데나 있었고, 미로 같은 만화방과 이발소, 소리사, 철물점, 레코드 가게, 분식집, 방앗간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뻗어나가는 골목길 안에 친구들의 집이 있었다. 그 거리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옆 반의 장난꾸러기는 이발소 창문에 붙어 서서 이발사의 섬세하고 능란한 기술을 지켜본다. 레코드 가게에서는 테이프를 고르는 새침한 얼굴은 뒷집 누나다. 오늘 이곳의 사람들이 모두 그때의 사람들 같다. 모두가 아주 진지하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과 공간을 즐기고 있다.


◆ 청도의 기억 공장 프로젝트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는 대구경북지역의 향토역사문화연구단체로 2018년 설립됐다. 근현대 산업유산 사료 수집 및 전시를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이 주 활동이다. 카페 덕산방직은 연구소가 그동안 수집한 근현대의 다양한 물품을 전시하는 '기억의 공간'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1980~90년대를 소환하는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연구소는 지난해 덕산방직 바로 옆에 있는 '청도양조' 공장도 인수했다. 양조장은 지역 농산물과 전통주 문화를 결합한 체험형 양조 문화관 및 로컬 브루어리로 새롭게 꾸며질 예정이다. 연구소는 방직공장과 양조장을 중심으로 지역의 농민과 청년 예술가, 사회적 경제 조직 등이 함께 참여하는 청도 로컬 이노베이션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청도군의 산업유산 보존, 지역 농산물 활성화,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의 성과를 동시에 추구한다.


카페 덕산방직의 대표 메뉴는 공장 굴뚝 빵과 홍시 라떼, 홍시 스무디 등이다. 홍시 음료는 지역의 대표 농산물인 '청도 반시'로 만드는데, 반시는 이웃 농민이나 지역에서 운영 중인 협동조합에서 구입한다. 카페 덕산방직에는 지역의 청년들이 급여를 받고 함께 일하고 있고, 지역 청년 예술가의 제안으로 만든 덕산방직 굿즈도 판매하고 있다. 옛날 선거 포스터를 패러디한 덕산방직 카페 포스터에 표기된 슬로건은 '커피 잘하고 성실한 다 준비된 추억 맛 집'이다. 확실히 덕산방직은 '추억 맛집'이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55번 대구분산고속도로 청도IC에서 내린다. 청도IC교차로에서 밀양 청도 방면 오른쪽으로 나가 직진, 모강 교차로에서 경주, 운문방면으로 좌회전해 20번 국도를 타고 직진한다. 곰티재터널 지나 조금 가면 사촌버스정류장 직전에 덕산방직 안내판이 있다. 마을 안으로 약 30m 들어가면 된다. 영업시간은 평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마지막 주문은 오후6시), 주말은 오후 8시까지(마지막 주문 오후 7시 30분) 운영한다. 주차장은 넓은 편이지만 주말에는 자리 찾기 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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