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결혼 52년 차를 맞은 허정호(82)·황순자(76) 부부는 평생 고추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허정호·황순자 부부가 지난 여름 수확한 '영양고추'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가천로, 산새 좋은 작은 마을에서 올해 결혼 52년 차를 맞은 허정호(82)·황순자(76) 부부는 평생을 고추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아들 허성일 씨가 얼마 전 귀농해 농사를 이어받으면서, 이 집안은 3대째 영양고추를 지켜가는 농가가 됐다.
허씨 부부가 지어온 고추는 토종 영양고추 '수비초'다. 허씨의 아버지가 일찍이 재배하던 씨앗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품어온 고추다. 병에 약하고 수확량도 적어 점점 자취를 감추던 토종 품종이지만, 허씨 부부는 끝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수확은 적어도 맛은 그걸 따라갈 게 없어요."
허씨는 오랜 세월 농사짓던 손길로, 수비초를 붙들었던 이유를 짧게 설명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토종의 수확량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은 신품종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럼에도 허씨 부부에게 수비초는 '집안의 뿌리 같은 고추'로 남아 있다.
한때는 고추 농사를 지어 놓으면 장사꾼이 직접 집을 찾아와 사가기도 했고, 허씨가 젊었을 때는 인터넷 판매도 시도했다. 외지에서 지내는 자식들도 주변 지인에게 주문받아 보내주며 도왔다.
그러던 중 17년 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농특산물 전시·판매 행사 '영양고추테마동산'(현 영양고추 핫 페스티벌)에 첫 회부터 참가하면서 농사 인생에 새로운 길도 열렸다. 지역 고추 농가가 서울 시민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이 행사는 지자체 최초의 고추 단일 테마 마케팅 축제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도농 상생 행사 중 하나로 꼽힌다. 축제 기간이면 허씨는 직접 농사지은 고추를 트럭에 싣고 서울까지 운전해 올라갔다.
"장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낫지. 그땐 젊었으니까, 서울까지 싣고 올라가는 용기 하나 믿고 했지."
아내 황순자씨는 60대였던 그 시절을 돌이키며 웃었다. 긴 세월 농사와 함께 살아온 부부는 되돌아보니 감사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농사일이 힘들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살아나오고, 자식들 건사하고, 지금도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사니 고맙지요."
아들의 귀농은 부부에게 또 다른 기쁨이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특히 명절에 내려와 밭에 한 번 나오지 않던 아들이어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처음엔 황당했지요. 근데 생각보다 잘해요. 아버지가 다져놓은 발판 위에서 아들이 농사 짓은 걸 보니 얼마나 든든한지."
남의 손으로 넘어갈 뻔했던 농사는 이제 아들과 함께 다시 활기를 찾았다. 맏딸 허선옥씨도 부모님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두분은 한평생 정말 최선을 다해 사셨어요.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글·사진=조경희 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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