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무(맨 앞)씨가 화동초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시간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성무씨 제공>
"퇴임을 앞두니 하루가 천년 같았다." 40년 동안 평교사의 길을 걸어온 임성무(62) 씨의 고백이다. 그는 최근 마흔 해의 치열한 기록을 담은 교단일기 '가르치며 배웁니다'를 출간했다. 아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전하려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았던 그의 삶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고향은 경북 청송이다. 가난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역경 속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산고 끝에 하반신 마비를 겪었다. 임 씨는 동냥젖과 밥물로 생명을 이어가며 강인함을 배웠다. 어머니는 그가 목사가 되길 바랐지만, 그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회한을 시 '할미꽃 같은 어머니에게'에 담아 기록하는 교사가 됐다.
임 씨는 등록금이 저렴한 대구교대에 진학하며 교직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 시절 사서의 권유로 접한 이오덕 선생의 글은 그의 교육 철학을 송두리째 바꿨다. "남이 만든 노래 대신 너희만의 노래를 불러라"는 가르침은 평생의 나침반이 됐다. 1986년 내당초에서 시작된 그의 교사 생활은 늘 아이들의 참삶을 가꾸는 글쓰기와 함께해 왔다.
1989년 첫 학급문집 '안땅골 아이들'을 펴낸 이후 그는 꾸준히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특히 2019년부터는 교육청 지원을 받아 기후 위기와 생태를 다룬 다양한 저서를 연이어 선보였다. 교직 마지막 해인 2025년에는 교과 전담을 맡아 평교사로서의 여정을 갈무리했다. 대구 지역 9개 학교를 거쳐 화동초에서 퇴임하기까지, 그는 화려한 명예보다 아이들과 함께한 기록을 소중히 여겼다.
그는 스스로를 '체험주의자'라 정의한다. 배움은 교실에만 갇혀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나무와 별을 관찰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도록 이끌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교육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는 수밭골 반딧불이 복원과 낙동강 독수리 보존 활동 등 실천하는 참교육의 모델을 몸소 보여줬다.
정년퇴직 후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천문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시골 아이들에게 별을 보여주기 위해 트럭을 개조했다. 천 명 넘는 제자를 키워냈지만 그는 여전히 교사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꿈을 꾼다. 학교와 사회를 잇는 가교가 되고 싶다는 그의 포부는 여전히 청년처럼 뜨겁다.
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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