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추억의포토] 시아버님과 영남일보의 추억

  • 진정림 시민기자 truefore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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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06 19:20  |  수정 2026-10-06 21:27  |  발행일 2026-10-06
嶺南日報가 적힌 지프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 남자. 맨 오른쪽이 필자의 시아버님이다. 진정림 시민기자

'嶺南日報'가 적힌 지프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 남자. 맨 오른쪽이 필자의 시아버님이다. 진정림 시민기자

'嶺南日報'가 적힌 지프차 앞에서 세 남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정장을 입으신 분이 기자로 보이고, 가운데 카메라를 메신 분은 사진기자, 맨 오른쪽에 계신 분은 필자의 시아버님이다. 아버님은 십수년간 영남일보에서 운전기사로 근무하셨다.


사진 뒷면을 보니 1970년 6월이라고 적혀 있다. 얼마전 시어머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사진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님이 7명의 식솔들을 데리고 대도시로 왔으나 일자리 얻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매사에 애살이 많고 손이 빠른 어머님이 남의 집 품을 팔고 밤잠을 줄여가며 삯바느질을 하여 아버님께 운전기술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운전이 고급 기술이어서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어디든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아버님은 30대 후반에 득남을 하셨고 애지중지하셨다. 아버님께서 영남일보에 취직하시고 최고의 수혜를 입은 사람은 바로 아들이었던 남편이 아니었을까? 남편은 아버지와 단둘이 지프차를 타고 해수욕장이며 남해대교며 전국을 다녔던 유년시절의 따뜻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지프차를 몰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버지로 기억하고 있다. 아버님은 필자가 결혼한 지 2년이 채 안 되어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아버님과의 인연은 짧았지만 아버님께서 들려주신 영남일보에 근무했던 시절의 무용담은 오래도록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요즘은 휴대폰 하나면 온갖 정보를 다 얻을 수 있지만 저 시절에는 오직 새벽에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 세상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저렇게 세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여야 기사 하나가 탄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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