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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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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팀기자
  •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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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물린 GG 로고…승마용품서 시작된 역사를 담다

돼지 피혁을 활용하여 일본산 대나무를 장식으로 사용한 구찌의 대표적 아이템 ‘뱀부백’.
말 재갈·등자 활용한 고유 상징
1940년대 세계대전 탓 가죽 수급 곤란
대마에 다이아 패턴 디아만테 캔버스
대나무 장식의 뱀부백 탄생 ‘전화위복’
현재 클래식 아이템 재해석 컬렉션 주목

샤넬(CHANNEL), 루이비통(LOUIS VUITTON), 구찌(GUCCI) 등은 패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알 만한, 흔히 명품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다. 이 브랜드들은 여전히 클래식한 매력으로 변함없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 최근 돋보이는 브랜드로는 ‘구찌(GUCCI)’가 있다. 2015년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하여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애당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후보도 아니었을뿐더러 그저 구찌에서 13년간 일했던 낯선 무명 디자이너였다. 갑자기 구찌를 떠난 프리다 지아니니 때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컬렉션을 해야 했던 그는 그동안 절제된 시크함과 섹시한 이미지에서 벗어난 꽃과 나비, 새, 잠자리, 도마뱀 등을 자수와 프린트로 화려하게 장식한 새로운 룩을 선보이며, 얼어붙은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10%의 성장을 이끌었다. 구찌의 클래식함을 바탕으로 동식물 모티브에 레트로풍의 빈티지함을 가미한 그의 스타일은 그래니 룩을 연상시키며 차갑고 획일화된 도시 스타일에 지친 사람들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세계 패션의 중심이 됐다. 또한 여성스러운 리본과 보타이 블라우스를 입은 남성모델을 컬렉션에 등장시키며 남녀의 경계가 모호한 ‘젠더플루이드’ 트렌드를 제시하며 신선함을 주었다.

구찌는 창립자 구찌오 구찌가 1921년 설립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로 핸드백, 슈즈, 의류, 시계, 파인 주얼리 등을 제작·판매하는 브랜드다.

1881년 가업으로 밀짚모자를 만드는 가정에서 태어난 구찌오 구찌는 밀짚모자 제조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판단하고, 1897년 전 세계 부호들이 모이는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귀족과 상류층의 기호와 문화를 익혔다. 그곳에 오는 부호들의 최고급 여행 가방에 감명받은 구찌오 구찌는 1902년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와 가죽공방 기술을 익혔다.

1921년 피렌체 비냐 누오바 거리에 구찌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오픈한 그는 같은 해 파리오네 거리에 두 번째 매장을 내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다. 사보이 호텔에서 근무하며 접했던 영국 귀족 스타일에 이탈리아 장인 기술을 결합한 승마 장갑, 승마 부츠와 같은 승마 용품을 중심으로 한 가죽 제품을 주로 선보였다. 그가 생산한 승마 용품은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마차의 활용도가 줄면서 승마용품 이외의 것이 필요하게 되었고, 고심 끝에 1937년 작업장을 확장하여 핸드백과 트렁크, 장갑, 신발, 벨트 등의
제품을 추가했다. 구찌의 가죽 제품은 승마용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많았다. 말 재갈과 등자를 활용하여 가죽 장식품을 만들었고 그것은 구찌의 고유한 상징이 되었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죽이나 금속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때 구찌오 구찌의 첫째 아들 알도 구찌는 대마, 삼마, 황마를 작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로 직조하여 가죽을 대신할 원단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여행 가방을 제작했다. 이것이 바로 구찌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디아만테 캔버스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전히 물자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수많은 가죽 업체가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디아만테 캔버스를 개발한 알도 구찌의 아이디어로 구찌는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일반적인 가죽 대신 돼지 피혁을 활용하여 유일하게 수입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가공하여 장식으로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구찌의 대표적 아이템 ‘뱀부백’이다.

구찌오 구찌는 직접 구찌를 경영하면서 세 아들도 회사주주로 경영에 참여시켰다. 1953년 알도 구찌가 뉴욕 58번가 사보이 플라자 호텔에 구찌 매장을 오픈한 것은 뉴욕에 진출한 최초의 이탈리아 브랜드로서 의미를 가진다.

1953년 창립자 구찌오 구찌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 알도 구찌와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나눴다. 알도 구찌의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으로 구찌는 전성기를 맞았다. 1961년에는 아버지의 이름 구찌오 구찌를 딴 GG 로고를 만들었고 이 로고를 활용한 캔버스 소재로 가방, 액세서리, 옷을 제작하여 그만의 제품을 만들었다. 같은 해 제작한 둥근 모서리의 숄더백은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공식석상과 개인 모임에 즐겨 들어 ‘재키백’으로 유명해지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6년엔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를 위한 플로라 스카프를 제작하며 구찌의 또 하나의 시그니처 플로라가 탄생하게 됐다.

구찌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디아만테 캔버스.
또 미국, 일본, 홍콩 등에 매장을 오픈하며 구찌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해 나갔다. 1981년에는 피렌체에서 첫 기성복 컬렉션을 발표하며 플로라 프린트 의상을 대거 선보였다.

구찌는 1982년 가족경영진의 결정을 통해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경영하는 S.P.A로 전환하고, 경영권을 셋째 아들 로돌프 구찌에게 맡겼다. 하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의 다툼으로 인해 경제적 위기를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의 라이선스 남발로 구찌의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영권이 로돌프 구찌의 아들 마우리초 구찌에게 넘어 온 뒤 그는 구찌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경영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고, 1989년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뉴욕지사장 돈 멜로를 구찌의 디자인 총괄이사로 영입했다. 이때 톰
돼지 피혁을 활용하여 일본산 대나무를 장식으로 사용한 구찌의 대표적 아이템 ‘뱀부백’.
포드 역시 디자이너로서 구찌에 합류하였다. 변호사 도메니코 데 솔레는 유통을 직접 통제하고 그동안 남발되었던 구찌 브랜드의 라이선스 사업 정리와 프랜차이즈 환수를 단행했다.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과 함께 1994년 톰 포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구찌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컬렉션을 비롯하여 선글라스, 향수, 광고, 매장 등 경영을 제외한 구찌의 총체적 이미지를 관리했다. 그는 구찌를 섹시하고 모던한 이미지로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며 클래식에 뿌리를 둔 섹시함과 품격, 복고와 유행 사이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냈다. 그가 1995년에 선보인 구찌의 젯셋 글래머 테마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GG로고, 호스빗 등 구찌의 클래식한 시그니처 아이템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통과 새로움을 동시에 부각했다. 구찌의 성공적 변화를 이끌었던 그는 재계약에 대한 PRP그룹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구찌를 떠났고, 그 자리는 액세서리 라인을 담당하던 프리다 지아니니가 바통을 이어받아 기존의 뱀부백을 새롭게 재해석한 뉴 뱀부백을 선보이며 주목 받았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브랜드를 맡은 후 4년간 구찌의 매출은 46% 신장했고, 구찌는 2007년 시장조사전문회사인 닐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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