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대구 음악’을 위해서
비틀스의 음악은 ‘리버풀 사운드’라고도 얘기합니다. 너바나의 음악은 ‘시애틀 사운드’라고도 불리고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지역에서 태동되고 정체성을 형성해 온 음악은 ‘홍대 음악’ 정도만이 아닐까 싶네요. 우리 지역의 음악, 소위 ‘대구 사운드’ 또는 ‘대구 팝’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바탕이 되어야 할까요.
첫째, ‘우리만의 어떤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죠. 한국 사회가 산업화를 거치며 서구문화와 경제를 따라잡으려 ‘다들 하는 것을 잘하는’ 것에 주목해 왔다면, 시대는 벌써 ‘다른 문화나 사회와 구분되는 독창성과 고유성을 가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어떤 것, 대구의 색깔을 담은 어떤 것이어야지 대구 음악은 의미와 생명력을 가질 수 있겠죠.
둘째, 다만 그것이 지금과 크게 다른 무언가라거나 생활과 동떨어진 전통이라거나 위대하고 대단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경험 이후, 그 콤플렉스에서부터 비롯되어 아닌 것에까지 억지로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우리 것’이라고 문화적으로 윽박지르는 과정이 한국 사회에는 존재했습니다. 그것이 전통이든 외래의 것이든 어떤 것이든 저는 좋습니다. 만약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의 삶과 문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생활과 닿아있기만 한다면요. ‘대구 음악’은 박제된 어떤 것, 억지가 담긴 어떤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가 누리고, 부르고, 듣는 어떤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그 음악들이 대중과 만나고 소통될 수 있는 유·무형의 매개체, 소위 ‘신(scene·음악의 장)’이 필요합니다. 대중이 ‘대구 음악’을 만나고 접할 수 있는 공연장, 방송매체, 온라인 네트워크들이 생겨나고, 그를 통해 젊은 음악인들이 등장하고 자신의 음악을 시험하고 갈고닦을 수 있는 과정이 형성되면 더 발전된 음악, 더 많은 음악이 지역에서 꽃피우게 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넷째, 그를 위해서는 특히나 언론과 공기관에서부터 지역 음악 신의 가능성, ‘대구 음악’에 대한 믿음과 공감대가 확산되어야 할 것이고, 다양한 형태의 지원도 생겨나야 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음악을 하면서 저희를 가장 홀대하는 곳 중의 하나가 공공기관임을 몸으로 많이 경험했습니다. 지역 언론은 점점 좋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지역 음악인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공공기관들이 지역 음악인의 발굴, 지역 음악 육성에 좀 더 신경 쓰기 시작하고, 유명한 서울 음악인들에게만 주어지는 노출 기회가 지역 언론에서만큼은 지역 음악인에게 배분된다면 ‘대구 음악 신’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연우(밴드 레미디 리더)
2017.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