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의 꽃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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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30  |  수정 2017-10-30 08:04  |  발행일 2017-10-30 제24면
[문화산책] 예술의 꽃을 심다
이도현<화가>

베를린에서 182㎞ 남서쪽에 있는 라이프치히(Leipzig)는 중부 유럽의 교통 요지로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의 최대 무역 박람회가 개최되던 상업도시였다. 그리고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와 멘델스존, 슈만이 살았던 음악의 도시이고 세계적인 문호(文豪) 괴테도 이곳 라이프치히대학 출신이다. 그러나 통일 이후 도시를 재생할 인력인 젊은 층들이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암울했던 이 회색의 도시를 버리고 서독으로 빠져나가 버려 동구권의 물류 중심도시로서의 명성 또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한 가닥 희망도 보이지 않는 옛 동독의 경제도시는 점차 고담시티가 되어갔다. 시 정부는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기 위한 응급처방으로 문화예술을 수혈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슈피너라이(Spinnerei)이다. 이곳은 한때 4천명이 근무했던 유럽 최대 방직공장이었지만 통일 후 동독의 산업이 무너지면서 함께 독일의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1년 한 민간재단이 이곳 부지 9만㎡를 사들여 시 정부의 협력과 더불어 약 17억원이 투자되면서 125년 묵은 때를 벗기고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낙후된 24개의 붉은 벽돌 건물에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죽은 공간들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지금은 100여 명의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과 20여 개의 갤러리, 카페, 도서관 등이 입주해 있는 대규모 예술단지로 변모하여 암울했던 라이프치히에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또한 이곳은 현대미술의 흐름에 한 획을 그은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활동근거지로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라이프치히 화파는 서슬 퍼런 동독의 정치이념 아래에 묶여버린 표현의 자유를 독특한 사실주의 화파로 발전시켰고 통일 후 세계는 이 독특한 화파의 명맥을 잇는 ‘신 라이프치히 화파’에 레드카펫을 깔아 주면서 미술계 스타들이 대거 탄생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구를 비롯하여 전국의 각 지자체가 도시재생의 해답으로 예술을 제시하고 있다. 대구 수창동, 옛 청주 연초제조창, 서울의 문래 예술촌 등 스토리텔링이 있는 역사적인 공간에 문화예술이라는 꽃이 심기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개입과 공격의 균형을 잘 잡아주지 못한다면 결국 빛 좋은 개살구같이 되어 시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사업으로 전락하기 쉽다. 독일 변방의 가난한 도시가 예술의 힘으로 세계적 예술의 장소로 재기한 것은 저력 있는 예술가들이 설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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