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2]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7> 이상국이 만난 경산대추빵의 비밀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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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06   |  발행일 2012-08-06 제11면   |  수정 2021-06-02 15:16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7] 이상국이 만난 경산대추빵의 비밀
전국 최대의 대추 주산지인 경산시 하양읍 환상리 한 대추밭에 대추가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7] 이상국이 만난 경산대추빵의 비밀
글=이상국(스토리텔링 전문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story memo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벽조목(霹棗木)이라고 한다. 천둥과 벼락을 맞을 때 생긴 영험함이, 잡귀나 액운을 물리친다고 해서 도장이나 부적을 새겨 몸에 지니고 다니곤 했다. 이 때문인지 대추는 차례용품이나 한약재로 쓰임새가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해 최근 들어 경산에서는 대추를 이용해 다양한 먹거리를 개발하고 있다. 그중 으뜸이 ‘대추빵’이다.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할 만큼 대추가 경산의 특산물이다. 하지만 쓰임새가 차례용품이나 한약재로 한정되다 보니 외지 상인만 사갈 뿐, 정작 주산지인 경산에서는 부가가치를 올릴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방부제와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대추분말과 찰보리를 섞어 맛을 낸 웰빙건강식 ‘경산대추빵’을 개발했다. ‘작가,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7편은 대추를 이용해 만든 ‘경산대추빵’에 대한 이야기다. 경산 3성(三聖)인 원효·설총·일연스님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경산 3성과 박씨의 꿈은 픽션임을 밝혀둔다. 경산대추와 대추빵의 효능을 쉽고 흥미롭게 설명하기 위한 극적 장치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라고요?”

“예. 벽조목(霹棗木)이라고 하죠. 이것으로 만든 도장을 지니고 있으면 사업이 번창하고 잡것이 접근을 못하여 예부터 벽사(邪)의 상징으로 여겨왔지요.”

화창한 봄날, 경산 와촌에 살던 박씨는 자인에 있는 친구의 초청으로 단오행사를 구경하러 가던 길이었다. 직인(職印)을 하나 팔까 해서 들렀던 도장집에서 권한 것이 대추나무 도장이었다. 박씨는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인에서 하는 행사가 바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嫁樹)’였기 때문이다. 대추나무는 새순을 틔우는 것이 워낙 느려서 양반나무라고도 불리는데, 봄이 거의 지나 단오 쯤에야 싹이 돋는다. 이때를 맞아 사람들은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우는데 이렇게 하면 열매가 많이 열린다고 한다. 이것이 성적인 행위를 연상시키기에 ‘시집보내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다. 오랫동안 제빵점을 해온 박씨는 문득, ‘대추’에 뭔가 사업의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추 명산지(전국 생산량의 40%)가 아닌가.



자인에서 그는 그 지역 단오굿인 ‘한장군 놀이’를 구경했다. 장군이 여장(女裝)을 하고 나와 춤을 추다가, 산 속에 숨어있던 왜적이 나타나면 일시에 변장을 풀고 그들을 소탕하는 스토리였다. 장군은 여인처럼 곱게 꾸민 채 그의 누이동생과 함께 꽃관을 쓰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는 묘하게도 붉은 대추를 꿰어 목걸이처럼 두르고 있었다. 이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왜적으로 분장한 병사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는데, 갑자기 장군이 목에 걸린 대추를 뜯어내 한 움큼을 관객 속으로 뿌렸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나의 조옥(棗玉, 대추 모양의 보석)을 받아라”

왜적들이 우루루 몰려 대추를 주우려고 할 때 여장한 장군이 품에 숨긴 칼을 빼들었다.

“사실은 조옥(棗玉)이 아니라 조옥(詔獄,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신문하고 가두는 것)이다!”

그러자 곁에 있던 춤꾼들도 칼을 뽑아들고 관객 쪽으로 달려왔다. 그 와중에 왜병 옆에 무심코 서있던 박씨에게도 칼을 겨누고 덤벼들었다. 박씨는 깜짝 놀라서 달아났다. 그런데 몇 명의 칼 든 사람이 계속 그를 쫓았다.

“저는 아니예요, 아니란 말입니다.”

그가 소리를 질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몹시 험악한 얼굴로 그들은 박씨를 추격했다. 줄행랑을 치던 그는 제석사(帝釋寺)로 뛰어들었다. 멀리서 아직도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 그는 대웅전 뒤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때 한 스님이 다가와 말했다.

“이제 그들은 갔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는 도천(到天)이라 하는 수행승입니다. 큰스님께서 찾으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두 사람은 절 뒷길을 따라 도천산(到天山) 쪽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가노라니 길이 끊어지더니 다시 이어졌다. 거기엔 밤나무와 대추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저기 계십니다.”

도천은 손으로 산등성이 평탄한 곳을 가리켰다. 멀리서 세 사람이 앉아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사께서 보고싶어 하십니다. 한번 가보시지요.”

박씨는 무엇에 이끌린 듯 세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니 윷놀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허허, 어서오시오.”

컬컬한 목소리의 노사(老師)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뉘시옵니까? 어찌 저를 보자 하셨는지요.”

박씨는 상황부터 파악해야겠다 싶어서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노인은 대답했다.

“나는 제석사의 옛절인 사라사에서 태어난 원효라고 하오.”

“예? 신라의 원효스님이란 말씀입니까?”

박씨는 놀라 큰 소리로 물었다.

“허허, 그렇소. 예전엔 이곳이 압량산국(押梁山國)이었지요. 642년 그러니까 내가 스물다섯 쯤에 이곳에 마흔일곱살의 김유신 장군이 압량산군주로 오셨소.”

“저 밤나무는?”

“그렇소. 사라율(栗)이라 불렸던 그 밤나무이지요. 옛날 부처가 돌아가실 때 그 주위에 있던 사라수가, 내가 태어나던 날 이곳으로 와서 흰 꽃을 피웠다고들 했지요. 저 아래 제석사는 원래 사라사였습니다. 사라율의 뜻을 기려 소승이 창건했던 절입니다.”



“다른 분들은 뉘신지요?”

“이 사람은 내 아들이오.” 곁에 있는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설총선생이란 말씀이군요. 그럼 마주 보고 계신 분은요?”

“이 분은 김견명(金見明)이라는 이오.”

“김견명이라면…‘삼국유사’를 지으신 일연스님 아닌지요?”

“허허, 잘 아시는구려. 바로 그렇소.”

“놀랍습니다. 경산이 낳은 3성(三聖)이라 불리는 세 분을 여기서 모두 뵙다니, 눈 앞이 아득하고 가슴이 떨립니다.”

“그럴 필요 없소이다. 그저 오래전 사람일 뿐이오.”

“아닙니다. 원효스님은 이 나라 해동불교의 창시자인데다 불교 대중화의 기틀을 세운 큰 어른이시고, 일연스님은 고려때 100명의 고승을 이끈 대장경 낙성회의 맹주로 큰 활약을 하셨고 삼국시대를 실감나게 전해준 스토리텔링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설총선생은 문자가 없던 시절에, 조선 세종이 한 일만큼이나 중요했던 간이글자를 발명하여 가히 해동문자를 일궈낸 큰 별이라고 할 만한 분입니다. 선생께서 쓰신 리더십 교범이었던 ‘화왕계’를 볼 수 있었다면 후손에게는 더욱 큰 가르침이었을텐데요.”

박씨가 이렇게 말하자, 세 사람은 잠깐 윷판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을 좀 드셔보세요.” 설총이 작은 떡같은 것을 하나 건넸다.

“이게 무엇입니까?”

“보리가루를 섞은 대추입니다.” 박씨가 한 점을 떼서 입에 넣어보니, 맛이 썩 괜찮았다.

“왜 하필 대추를 썼는지요?”

그때 일연이 말했다.

“차례상을 차릴 때 조율시이(棗栗枾梨, 대추-밤-감-배 순서로 놓는 것)를 따지는 까닭을 아시는지요?”

“아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대추는 씨가 하나이니 임금을 상징합니다. 밤은 밤송이 하나에 세 톨이 들어있어 3정승을 뜻하고, 감은 씨가 여섯이어서 6조판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서열이 어떠해야 할지 아시겠지요?”

그때 원효가 웃으며 말했다.

“젊은 시절 내가 불렀던 도끼 노래가 있었습니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내가 하늘 받칠 기둥을 세우리라 했던 그 노래이지요. 사실 그걸 부르며 무열왕께 건넸던 것이 바로 대추입니다.”

“대추는 어찌 하여…?”

“대추씨는 통씨여서 절개와 순수혈통을 암시합니다. 대추는 한 나무에서 많은 열매가 달리니 다산의 상징으로 쓰였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의미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꿈에 대추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얘기가 있고, 폐백에 쓰이는 것도 다남(多男)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무열왕은 소승의 그런 뜻을 알아채고, 요석궁의 공주를 짝지워주었습지요.”



그때 설총이 일어나 문득 말했다.

“허허. 대추 한 알이 바로 제가 태어나게된 인연을 지었군요. 오래 전 제가 조왕십찬가(棗王十讚歌)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좌중이 고개를 끄덕이니 낭랑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추는 과실의 왕이니 열가지 덕으로 인간을 다스리도다. 1덕은 심안(心安)이니 마음과 신경이 가라앉는데는 이보다 좋은 게 없도다, 2덕은 장강(腸强)이니 비위가 튼튼해지고 식욕이 생겨나도다, 3덕은 폐강(肺强)이니 호흡기가 튼튼해지고 심장과 폐가 윤택해져 기침이 멈추는도다, 4덕은 안면(安眠)이니 불면증을 사라지게 하노니 대추씨는 천연수면제로다, 5덕은 소염(消炎)이니 관절염이 사라지고 염증이 가라앉는도다, 6덕은 여온(女溫)이니 여인들 냉증이 사라지고 몸이 따뜻해지도다, 7덕은 이뇨(利尿)이니 오줌이 술술 나와 과하게 살찐 사람은 살이 빠지는도다, 8덕은 강장(强壯)이니 힘이 솟아나고 간이 좋아지는도다, 9덕은 여윤(女潤)이니 말린 대추를 달여먹으면 여자 피부가 고와지고 촉촉해지도다, 10덕은 항암(抗癌)이니 온갖 영양이 몸 속의 나쁜 것을 힘을 합쳐 몰아내는구나.”

실로 명쾌한 대추찬가였다.



박씨가 문득 물었다.

“3성(聖)께서 저를 부르신 뜻은 무엇이옵니까?”

원효가 대답했다.

“우리는 압량(경산)에서 몸을 일으킨 사람들인데, 후세를 위해 좋은 길을 알려주는 것이 도리일 듯하여 불렀소.”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십시오.”

“어제 압량의 군주이던 김유신 장군을 만났소. 그는 이 윷판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압량의 후인(後人)을 만나면 뜻을 전하라 하였지요.”

“김유신 장군께서요?”

“예. 장군은 이곳 압량에서 삼국통일의 큰 기틀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윷판 속에 세상의 이치와 병술(兵術)의 진법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또한 우주의 별자리로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오묘한 것은 세상 과실들이 그 안에 모두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윷판에는 스물아홉개의 점이 있는데 그것은 스물여덟개의 별자리와 가운데 북극성을 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별들이 중앙에 있는 북극성에게 절을 하고 있는 형상으로 되어 있지요. 스물여덟개의 별은 또한 스물여덟가지의 과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북극성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대추라고 합니다. 이곳 압량에서 대추가 많이 나는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과실에도 중심이 있으니, 이곳 압량이 그것을 지켜가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뜻이라 하겠습니다.”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7] 이상국이 만난 경산대추빵의 비밀
경산대추빵 박태환 대한민국 제과기능장이 대추가루로 만든 피에 대추앙금을 넣은 만주를 만들고 있다. 왼쪽 사진은 경산대추로 만든 대추만주, 대추찹쌀떡, 대추빵, 대추과자, 대추양갱.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원효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면서 밤나무 곁에 있던 대추나무에 불이 붙었다. 불붙은 나뭇가지 하나가 뚝 떨어져 박씨에게 덮쳐왔다.

“앗 뜨거.”

그는 번쩍 눈을 떴다. 꿈이었던가. 사방을 둘러보니 제석사 법당이었다. 원효도, 설총도, 일연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아침에 팠던 벽조목 직인 하나가 쥐여 있었을 뿐이었다. 땀을 닦으며 일어섰다. 박씨는 생각했다. ‘대추로 빵을 만드는 일이, 비록 세상에 없었던 일이라 하더라도 거리낄 것이 무엇인가. 원효가 거리낌 없음(無碍)을 호로 삼은 뜻은, 새로운 발상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한장군 또한 내게 그냥 온 것이 아니로다. 장군이 여자의 옷을 입고 왜적을 물리치는 역발상도 나오는 판인데 무엇이 불가능하랴. 김유신 장군이 작은 나라로 큰 통일을 이룬 것 또한 돌아보니 당차고 굳센 대추의 정신이었다. 꿈에 보았던 보리를 잘 되새겨, 천하의 중심이 되는 압량의 대추진병(眞餠, 빵)을 만들어내리라.’
공동기획: eride Gye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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