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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달 와이파크 입구 '붉은 대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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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스 박의 작품 '시간의 거울-사임당이 걷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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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 주천면의 '젊은 달 와이파크'. 미술관과 박물관, 공방이 합쳐진 복합예술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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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달 와이파크 내 붉은 파빌리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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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달 와이파크 바람의 길. 붉은 파빌리온과 미술관을 연결한다. |
한적한 마을 '주천' 술 샘솟는 지명
술샘 박물관과 술샘 주막거리 조성
현대미술·공방 합친 복합예술공간
강원 소나무 엮어 만든 대형돔 목성
달 카페서 맛볼수 있는 커피 팩토리
선이 만든 면은 빛·사람·바람의 길
◆술샘 주막거리의 젊은 달
강원도 영월 주천강 건너 주천면 주천리에 들어서자 한적한 길을 사이에 두고 더욱 한적한 면소재지의 풍경이 펼쳐졌다. 높은 산들이 멀찍이 둘러선 천변의 땅인 까닭에 마을의 밀도는 낮고 높이도 낮았다. 황톳빛 맨살을 드러낸 대지, 채도를 잃어가는 가까운 초록들과 먹색에 가까운 먼 풍경들 속에서 줄느런한 건물들은 낮잠처럼 고요한데, 그들 뒤로 함성과 같은 붉은 대숲이 치솟아 있었다. 그것은 환경과의 관계에서 압도적이었다. 영월 주천면의 '젊은 달 와이파크'는 그렇게 시각적인 파격으로 가장 먼저 다가왔다.
주천(酒泉)이라는 지명은 '술이 샘 솟는다'는 주천석(酒泉石)에서 시작되었다. 고구려 때는 주연(酒淵)이라 하였고 신라 때 처음으로 주천이라 하였다니 술 솟는 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 샘에서는 양반이 가면 머리를 맑게 하는 청주가 나오고, 평민이 가면 힘을 내게 하는 탁주가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반상의 구분에 불만을 가진 청년이 있었다. 그는 술샘이 사람의 복색을 보고 반상을 가린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가 양반 옷을 차려입고 술샘에 갔더니 탁주가 나오더란다. 화가 난 청년은 술샘을 마구 두드려 깨버렸고 그 후로는 술 대신 맑은 물만 솟았다고 한다. 지금도 주천면 망산 밑에는 '주천'이라는 샘터가 있다. 청년은 얼마나 원망을 들었을까. 목숨을 부지하기나 했을까. 현대의 나도 주먹이 꽉 쥐어지는데.
주천은 원래 소고기가 유명한 곳이라 한다. 술과 고기라니, 음흉한 미소가 절로 나는 조합이 아닌가. 그래서 이곳에는 '술샘 박물관'이 있었고 '술샘 주막거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의욕적으로 시작된 사업이었지만, 기대만큼 번창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술샘 박물관과 7개의 주막 식당을 기본으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과 박물관, 공방이 합쳐진 복합 예술 공간인 '젊은 달 와이파크'다. 본래 영월(寧越)은 '험준한 산과 굽이치는 물줄기 등 자연 장애를 편히 넘는다'는 뜻으로 고려 때부터 이어져 온 이름이다. 21세기에 주천의 영월은 '젊은 달(Young 月)'이다.
◆달의 목성
붉은 대숲은 젊은 달의 입구다. 작품의 정식 이름은 '붉은 대나무'. 문이 아니라 길이다. 강렬한 빨강을 입힌 금속 파이프를 여러 개 연결해 마디진 대나무와 꼭 닮았다. 대숲을 관통하면 잠시 좌우로 시야가 열렸다가 매표소와 '카페 달'이 있는 첫 건물로 들어간다. 넓지만 살얼음이 사르르 녹는 듯한 아늑함이 있다. 좁고 어둑한 통로를 지나면 갑자기 앙칼진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별빛이 쏟아진다. '목성(木星)'이다.
'목성'은 강원도에서 자란 소나무 장작을 엮어 만든 높이 15m, 지름 12m의 대형 돔이다. 소나무 조각들을 엮음으로써 만들어진 바람의 조각들, 빛의 조각들, 허의 실체들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목성의 대적점에 빨려 들어가 우주를 바라보면 이런 모습일까. 자연히 로마의 판테온을 떠올렸다. 콩나물시루 같았던 그 날의 분위기도 느낌을 이루는 한 요소였겠지만 빛과 어둠, 그리고 콘크리트라는 차가운 물성이 빚어내는 공간감은 인간을 얼마나 작게 만들었나. 그곳은 분명 신의 공간이었다.
젊은 달의 목성에 안기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거기에는 나무라는 재료의 따뜻함, 오롯한 자기 자신으로 전체를 이루는 장작개비들의 고요한 박력,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생명감, 허용된 빈틈이 주는 평화로움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보다 대지와 가까운 것이었고, 땅에서부터 솟아오른 알, 무엇이 태어날지 아직은 모르는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한 느낌들이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너의 우주는
목성 주변으로 기존의 건물들이 하얗게 자리한다. 그곳들은 미술관이고, 박물관이고, 공방이다. 꽃으로 만들어진 동굴 같은 공간 작품이 있는가 하면 나무 파편들로 만들어진 별똥별의 방도 있다. 생명을 다한 자동차가 꽃에 묻혀 있고, 소금으로 세운 기둥이 있고, 실로 만든 청동 검이 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마리오네뜨 3인조 밴드 앞에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옛 술샘 박물관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고 달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는 '커피 팩토리'도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들을 감싸 안거나 연결하는 붉은 조형물들이 있다. '붉은 파빌리온'과 '바람의 길'이 그것이다. 입구의 붉은 대나무처럼 강관이나 에이치 빔, 구멍철판 등 철제 건축자재로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선이 면이 되고, 면은 주변 환경과 함께 공간이 된다. 무수한 선들 사이에 주천면의 하늘과 산과 밭과 학교와 다양한 지붕들이 있다. 선들이 만든 면은 길이 되고 공간이 된다. 빛의, 바람의, 그리고 사람의.
이 공간을 기획한 이는 조각가 최옥영이다. 미술관에는 최옥영의 작품 외에도 그레이스 박, 최정윤, 김경환, 이선주 등 많은 현대 미술가들의 설치, 회화,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작품 중 다수가 건축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들을 활용한 것들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철거된 돌, 스테인리스 스틸 등을 활용해 인테리어를 하고 조형물을 작업했다는 것도 자원 재생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옥영에게 땅은 곧 캔버스다. 그는 땅을 '만물의 죽음과 삶의 영원한 모태이자 자궁'이라고 했다. 그러한 땅 위에 그는 우주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찾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우주를 찾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작가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중력에 굴복함이 없이 직립하여 가까운 것들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원주방향으로 가다 신림IC에서 내린다. 영월·주천 방면으로 우회전해 신일사거리에서 영월·평창 방면 회전교차로 직진, 주천사거리에서 평창·무릉도원면 방면 회전교차로에서 직진하면 된다. 주천면사무소 뒤편 언덕에 '젊은달 와이파크'가 위치한다. 입장료는 어른과 청소년 1만5천원, 어린이 1만원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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