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죽궁 명인 월재 김병연(2)...나전칠기와 죽궁 조합 '나전죽궁' 개발…국제적 반향도 일으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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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9   |  발행일 2022-08-19 제34면   |  수정 2022-08-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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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궁장이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나전죽궁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무렵, 난 10년째 대구에서 죽궁이란 장르를 갖고 청소년 인성교육 및 관광 체험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사부는 자신이 젊은 시절 갖게 된 한국 전통 활 중 하나인 '죽궁'을 보여주었다. 양궁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이었다. 현재 카본 소재의 양궁이 대세여서 각궁의 존재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다들 양궁을 각궁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 내가 취급하는 죽궁은 각궁의 변형태다. 각궁을 위한 재료 수급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각궁은 습기에 너무 약하다. 물에 들어가면 2시간 내 해체돼 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재료 확보가 너무 어렵다. 소뿔은 동남아, 힘줄은 중국에서 수입된다.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소의 힘줄을 찾기 어렵다. 식용으로 한우가 해체되기 때문에 30㎝ 이상 되는 게 없다. 사부는 머잖아 중국에서 생산되는 힘줄도 사라질 거라고 경고했다. 사실 각궁은 한국만의 것도 아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다. 3천년 전 이집트 벽화에도 각궁이 등장한다.

대구는 조선시대부터 '활' 제작 기록
궁장 결심…'판로 막막' 주변서 만류
화살촉이 왼손 관통하는 불상사도
첫눈 온 뒤 1월 대나무가 가장 단단
완성품 나오기까지 2년간 힘든 여정

모든 것 쌓은 공방 화재, 다시 시작
내년 피렌체 엑스포서 참여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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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와 죽궁과의 관계를 입증해 주는 조선왕조 효종실록 1655년 2월6일자 기록 중 일부.
◆끼는 타고났다

사부를 만날 때 좀 어설프지만 내가 만든 죽궁도 보여주었다. 자신은 활을 잘 쏘지만 만드는 능력은 내가 더 낫다고 칭찬했다. 그때 내 나이 마흔 초반. 갈 길이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신토불이 각궁을 재현해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활의 민족인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죽궁을 체계적으로 만들 사람이 없었다. 유럽조차 활의 전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시대성과 상품성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급식사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보다 활이란 사명이 더 절실했다. 그런데 내가 활 인생으로 갈 수밖에 없게 쐐기를 박는 얘기를 사부한테 듣게 된다. '대구가 조선 시대부터 활을 만들었던 도시'라는 정보였다. 그건 내게 적잖은 충격의 정보였다. 결정적인 사료가 필요했다. 실증적 기록을 찾아 대구를 국제적인 활의 도시로 알리고 싶었다.

막상 찾으려고 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불분명했다. 무작정 지역의 여러 고서점 등을 훑고 다녔다. 그러다가 한국 고전 DB를 알게 된다. 검색창에 '대구 죽궁'을 치니 조선왕조실록에 해당 구절이 산신령처럼 나타났다. 효종실록 6년(1655) 2월6일에 내가 그토록 목말라하던 구절이 보였다. '특명으로 대구부사 이정을 통정계(通政階)로 높였다. 본 도의 병마절도사가 본 읍의 군기를 검열하고서 새로 만든 죽궁의 제도를 계문하니 특별히 칭찬하는 명이 있었다.'

◆궁장, 그 힘든 결심

결심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주위 모든 사람이 만류했다. '활의 판로가 막막하다'는 걸 경계하는 것이었다. 일단 전통활쏘기 청소년 인성교실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중고생들의 연이은 자살·왕따 뉴스가 흘러넘쳤다. 활을 통해 아이들의 맘을 치유해 주고 싶었다. 교육청, 학교 등을 직접 외판원처럼 순회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퇴짜의 연속이었다.

북구 칠곡 매천고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해서 2009년 대구 첫 죽궁 학생동아리가 결성된다. 그해 10월 천안에서 세계 민족궁 활쏘기대회가 열렸다. 3명을 뽑아 6개월간 강훈련을 시켰다. 놀랍게도 손양업군이 2위를 차지한다. 이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리랑 사법'을 개발했다.

나는 모든 동작을 매뉴얼로 만들기 위해 국악부터 파고들었다. 그 일환으로 단소도 배우고 내친김에 제작까지 했다. 국악 연주곡 '토로'(홍경림 작곡)란 곡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그 곡에 5천년 한민족의 활의 정신을 담아내고 싶었다. 전체 20개 동작을 5분20초에 공연할 수 있게 치밀하게 안무를 했다. 그게 한국 활의 세계화, 그 일환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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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거행된 파워풀 페스티벌에서 재현된 죽궁 진상행렬.
◆최종 병기 화살, 편전의 세계

이 과정에 '편전'이란 가공할 만한 위력의 전통 화살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건 다른 것보다 짧다. 30~40㎝. 그 시절,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다. 궁사 중에서도 엄선된 자만 쏠 수 있었다. 우리 각궁 중에서 가장 멀리(200m 이상) 날아가고 살상력 또한 엄청 높다. 말하자면 '저격용 화살'이랄 수 있다.

13년 전 충주에 살고 계신 화살 장인 양태현을 통해서 편전을 알게 된다. 그에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간청했다. 그도 내 열의에 공감, 기꺼이 가르쳐 주었다. 나는 북구 칠곡 3지구 벌판에서 맹연습에 돌입했다. 하지만 불상사가 생겼다. 화살촉이 내 왼손을 관통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역에서 내가 처음 편전을 잡았다는 자부심 때문에 아픈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이후 편전 사법을 현재 공군 부사관으로 있는 내 딸 등 모두 6명에게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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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의 작업실은 북구 연암 서당골문화센터 공방에 있다.
◆죽궁을 관광상품으로 개발

팔공산에 나만의 죽궁공방을 차렸다. 권영진 전 대구 시장에게 '대구가 활의 도시임'을 알려주었다. 직접 권 시장이 내 공방을 찾아 죽궁 제작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후 대구시 자매도시 일본 히로시마에 죽궁을 기증하게 된다. 내 활이 세계 무대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이후 21개국 주한대사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아리랑 사법 시연과 향사례(鄕射禮) 전통활쏘기 체험을 진행했다. 중국의 향사례는 주나라 향태부가 3년마다 어질고 재능있는 사람을 왕에게 천거할 때 행해졌던 활쏘기 의식인데 춘추전국시대 때 사라졌다. 당시 한국관광공사 김용재 대구·경북권 협력단장이 '관광상품용 죽궁'을 개발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2014년 나전칠기죽궁에 도전한다. 이건 너무나 어려운 기법이다. 활에 나전을 붙여놓으면 금세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수성구의 한 옻칠 장인을 만나게 됐다. 기념비적인 나의 첫 나전죽궁은 대구시에 기증된다. 그 뉴스를 접한 홍콩의 한 IT회사 CEO가 2개를 주문했다. 유레카, 그리고 오호쾌재의 날이었다.

◆척박한 땅의 대나무를 찾아라

활을 위한 대나무는 조직이 치밀해야 한다. 1년 중 첫눈 온 뒤 1월 중 대나무가 가장 단단해진다. 밑에서 3m까지 부위만 사용한다. 모두 100여 공정이 있다. 대나무는 4~6 등분하고 그걸 60~70㎝, 30~35㎝, 14~15㎝ 크기로 잘라준다. 그걸 잘 잇대야 한다. 활대의 중심부는 엄청난 내구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40㎝ 대나무, 그 위에 마디가 있는 대나무(13~15㎝), 맨 위에 물푸레나무(20㎝), 그렇게 3단으로 붙여야 한다. 완성품이 나오려면 얼추 2년이 넘어야 한다. 유통이 잘 될 리 없다. 그냥 사명감으로 버티기에는 한 가장으로선 너무 힘든 과정이다. 미치거나 운명이어야 장인의 길을 감내할 수 있다.

◆2018년 공방 소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세계 첫 나전죽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전통활쏘기에 대한 강연은 물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문의 요청이 쇄도했다. 쥐구멍에 볕이 드는 줄 알았다.

웬걸! 2018년 4월 어느 날 오전 1시, 팔공산 내 공방에 화재가 발생한다. 내 옆집의 한 뜸집에서 발생한 불이 공방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주문을 받아놓은 250여 개의 활이 전소된다. 나전죽궁까지, 시연할 때 입는 전통의복까지 잿더미로 변한다.

현장에 도착한 나는 불 속으로 뛰어들 심산이었다. 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니까. 아들과 소방관이 격하게 만류했다.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몽유병 환자처럼 가산산성까지 걸어갔다. 3일간 식음을 전폐했다. 얼빠진 김병연이었다. 3일 뒤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저앉는 날 보고 형이 분노했다. 여기서 무너져선 안 된다고.

나는 무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었다. 당시 북구청 고모 과장이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당신은 대구가 아니라 한국의 보물이다. 조금만 참아라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가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각 동장에게 수소문해서 공방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찾아다녔다. 북구 관음동의 한 창고가 나왔다. 거기서 2년 정도 있다가 최근 북구 연암 서당골문화센터에 내 공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토요일에는 활을 배울 수 있다. 죽궁전시실에 오면 나전죽궁도 볼 수 있다.

올해 '파워풀 대구페스티벌' 때 죽궁 진상행렬을 재현했다. 그리고 올해 너무 감격스러운 러브콜이 들어왔다. 이탈리아 피렌체시에서 죽궁에 관심을 보이며 '2023 피렌체 국제 엑스포'에 참여할 수 있는 초대장을 보내왔다. 내년 2월6일 출국, 9일간 대구여성국궁시범단을 대동하고 현지에 가서 대구가 활의 도시임을 알리고 아리랑사법 시연 및 죽궁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알릴 것이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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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장 김병연은

15년 전 죽궁에 입문했다. 2009년 대구 첫 죽궁 학생동아리가 결성. 2015년 '나전칠기죽궁'을 개발해 국제적 반향, 이 때문에 KBS '한국의 창조적인 장인'으로 선정, 11개 국어로 방송. 2021년 대한민국 공예대전 특선. 한국 활 장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년 2월 이탈리아 피렌체시 초청으로 '2023 피렌체 국제 엑스포'에 참여, 죽궁 시연 및 제작과정을 소개할 예정. 올해 '파워풀 대구페스티벌' 때 죽궁 진상 행렬을 재현했다. 현재 향사례 대구시범단과 대구 여성국궁시범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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