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3월 18일에는 무슨 일이?

  • 한유정
  • |
  • 입력 2024-03-18 09:55  |  수정 2024-03-18 09:57
1922년 '마하트마 간디' 6년 형 선고
1965년 인류 최초 우주 유영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발생
2000년 중화민국 총통 선거, 민진당의 후보 ‘천수이볜’ 당선
2009년 예멘, 테러 사건 대응팀 자폭테러 발생
2018년 우버사 자율주행 시험 첫 차량에 사망사고 발생
2010년 iOS용 앱 ‘카카오톡’ 출시

 



1922년 - 시민 불복종을 이유로 '마하트마 간디'가 6년 형을 선고받는다.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는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로, 마하트마 간디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인도의 시인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이다.

간디는 반영 인도 독립운동과 무료 변호, 사티아그라하 등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시민 불복종’은 국가의 법이나 정부 내지 지배 권력의 명령 등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때,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1965년 - 인류 최초로 우주 유영을 하다.


소련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인류 최초로 우주유영에 성공했다.

전 세계인들이 TV를 통해 최초로 인간이 우주에서 12분 동안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레오노프는 우주선을 이어주는 산소를 공급하는 25피트 길이의 금도금 밧줄과 코드에만 의존한 채 우주에 머물렀다.


1982년 - 부산에서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은 최인순, 김은숙, 문부식, 김현장 등 부산 지역 대학생들이 부산 미국 문화원에 불을 지른 반미운동 사건이다.

불은 약 2시간 만에 꺼졌지만, 미국문화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동아대학교 재학생 장덕술 (당시 22세)이 사망했다,

전두환 정권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반사회적인 성격이상자들의 난동으로 홍보하고 대대적으로 구속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천주교 신부 최기식과 한국교회 사회선교협의회 관련자들까지 체포했다. 이 사건은 200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의 반미주의 운동을 가속시킨 증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허진수, 김화석을 변호한 변호사는 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이었고, 이회창은 담당 판사 중의 한 명이었다.



2000년 - 중화민국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후보 ‘천수이볜’이 최초의 야당 출신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천수이볜은 변호사 출신으로, 군사 법정에서 메이리다오 사건 참여자를 변호하면서 1980년에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는 2000년 3월 18일에 실시된 총통 선거에서 무소속 쑹추위 후보와 국민당 롄잔 후보를 제치고 39%의 득표율을 기록, 첫 번째 비(非)국민당 계열 총통에 선출되었다.

천수이볜은 처음 몇 주 동안은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국정 운영에서 나타난 부패와 국민당의 반대에 부딪히고, 아울러 추진한 법안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 하자 지지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2009년 - 예멘, 테러 사건 대응팀에 자폭테러 발생했다.

2009년 3월 15일 ‘세이윤 지역’에서 이슬람 과격주의 단체인 ‘알카에다’의 테러 공격으로 예멘을 여행하던 대한민국 국적의 관광객 4명이 사망한 사건이 터졌다.

이어 18일에는 예멘 수도 사나에서 한국 정부 신속대응팀과 유가족을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는 한국인을 노린 ‘기획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정부는 19일 예멘에 거주하고 있는 자국민들에게 긴급한 용무가 아닌 한 귀국할 것을 권고했다.





2018년 - 우버사에서 개발한 자율주행 시험 첫 차량에 자전거를 타던 여성을 치어 숨지는  사망사고가 발생하였다.


우버 엔지니어인 바스케스는 애리조나주 템페에서 자율주행을 시험하는 차량에 보조 운전자로 타고 있다가 자전거로 무단 횡단하던 엘레인 허츠버그를 치어 숨지게 했다.

바스케스는 사고 당시 노래 경연대회 프로그램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시청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는 자율주행차가 일으킨 첫 사망 사고로 기록됐다.


2010년 - 친구랑 대화할 수 있는 iOS용 앱 ‘카카오톡’이 출시되었다.


‘카카오톡’은 기존 인스턴트 메신저 앱의 번거로운 친구 추가 절차 없이, 주소록의 전화번호만으로 손쉽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WhatsApp’이 성공한 후 만들어졌다.

카카오톡이 나오자 우리나라 WhatsApp 사용자 대부분 카카오톡으로 옮겨갔다.

메시징 무과금 원칙과 단체 채팅을 최초로 제공한 점이 폭발적인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신생 벤처기업이었던 ‘카카오’가 다음까지 인수하게 한 일등 공신으로, 스마트폰 문화 확산의 상징이 되었다.

 

 

영상: 노지혜(인턴)

글 : 한유정 기자 kka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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