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피그말리온 여자축구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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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6 14:04  |  발행일 2026-04-07
박지형 문화평론가

박지형 문화평론가

요즘 폰으로 스포츠 기사를 누르다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이런 것이다. '직무대행도 놀랄 김건희 칼각 거수경례...' 그러나 정작 이 기사를 눌러보면 '영부인 김건희'의 경례 사진이 뜨는 것이 아니라, '축구선수 김건희'의 경례 사진이 떠오른다. 사실 요즘은 이런 기사가 한두 개가 아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경찰에 긴급 체포!'라고 해서 깜짝 놀라 클릭해 보면, 저 다른 나라 선수 이야기다. '김민재... 여자친구... 해변에서...'라고 해서 클릭해 보면, 이건 김민재의 바이에른 뮌헨 동료 선수의 여자친구 사진이다. 이런 것들은 일종의 '제목 낚시'인 셈인데, 깜빡 속았다고 해도 이런 걸로 정색을 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클릭수를 유도해서 장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뭐, 어떤가? 그 정도 장난이라면 나름 재미도 줬으니 돈을 좀 벌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클릭 장사'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적당히 해야 한다. 적어도 나라를 위해서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뛰고 있는 청춘들을 모욕하는 식으로 돈벌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최근에 본 가장 볼썽사나운 기사는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급 대우 요구' 이런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보면 누구나 화가 나서 클릭을 해보게 된다. 인기도 많지 않고 별다른 성적도 못 내는 선수들이 감히 손흥민급 대우를 요구해?


그러나 실제 선수협이 대한축구협회에 전달했던 성명서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주된 요구사항은 '합리적인 교통편, 숙소, 이동환경'과 '훈련복, 유니폼의 자비 부담 감경' 등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문제가 됐던 '비즈니스석'은, '대부분의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해야 했다'라고만 언급하고 있을 뿐, 선수협의 구체적인 5가지의 요구사항에는 아예 명시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저런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써서 클릭을 유도하면,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여자축구대표팀을 마치 주제 넘는 요구를 하는 몰상식한 집단처럼 매도를 하게 된다.


한 번 시작된 '악마화', '마녀사냥', '낙인'의 기사 제목은 계속 양산된다. '비즈니스석 요구한 여자대표팀, 전쟁 중인 이란 상대로 빈약한 골 결정력', '비즈니스석 여자대표팀, 약체 필리핀에 3:0 부끄러운 승리', '여자대표팀, 강호 호주와 3:3으로 비겨. 비즈니스석 요구할 만 했네?', '여자대표팀, 일본에게 4:1로 패배하고도 비즈니스석 타고 귀국'. 정말 이런 믿기 힘든 타이틀의 기사가 한동안 대한민국 스마트폰 구석구석에 걸려 있었다.


'낙인 효과(stigma effect)'라는 사회학 용어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멀쩡한 사람도 '무엇무엇'으로 매도당하기 시작하면, 실제로 그렇게 변해버린다는 이론이다. 반대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것도 있다. 이건 사람들이 가진 기대가 대상의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우리 여자대표팀 선수들에게 이런 피그말리온 타이틀을 선물하고 싶어진다. '고교축구부 12개의 여자대표팀, 동아시아컵에서 고교축구부 700개의 일본 따돌리고 극적인 우승!', '국가를 대표하기 위해 154경기를 군말 없이 뛴 조소현, 그간 얼마나 서러웠으면 중국 대표팀 스폰서를 다 부러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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