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부활절, 대구를 생각하다

  •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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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7 13:22  |  발행일 2026-04-08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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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아침,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기독교 연합예배 현장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부활을 기념하는 자리에 여야 후보가 함께 선 모습.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었다. 무엇이 죽고, 무엇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일까.


대구는 반세기 넘게 '보수의 심장'으로 불려왔다. 선거철이면 후보의 이름보다 당의 색깔이 먼저 확인되던 곳.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김부겸 전 총리는 국민의힘 경선 후보 전원과의 양자대결에서 모두 앞섰고, 다자대결에서도 국민의힘 후보 전체의 합산 지지율을 넘어섰다. 1년 전만 해도 국민의 힘이 앞서던 대구 경북의 정당 지지율은 이제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바뀌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대구의 정치 지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진짜 흥미로운 것은 '텃밭'이라는 개념이다.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보수의 텃밭 대구'이라는 표현을 쓴다. 마치 그것이 땅의 본질인 것처럼. 하지만 잠깐 돌이켜보자. 대구는 1960년 2·28 민주운동의 도시다. 학생들이 독재에 맞서 거리로 나섰던 곳이다. 한때 야당의 거목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대구는 원래 보수다'라는 명제는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굳어진 프레임이다. 모든 프레임이 그렇듯, 그것이 형성된 조건이 바뀌면 프레임도 바뀐다.


'보수 도시 대구'라는 프레임은 실제 대구 시민들의 복잡한 욕구와 생각을 하나의 색깔로 환원해 버린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보수적 가치의 수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미래 산업 유치일 수도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대구 시민들이 차기 시장에게 바라는 정책 1순위는 '지역 경제와 일자리'였다. 이념이 아니라 삶이다.


여기서 부활절의 서사가 떠오른다. 부활의 전제는 죽음이다. 무언가가 먼저 죽어야 새로운 것이 올 수 있다. 지금 대구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특정 정당의 지지율? 아닐 것이다. 죽어가고 있는 것은 '이 땅은 원래 이런 곳'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의 환상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삶으로 판단한다'는 시민의 목소리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진보의 승리'로 읽는 것은 또 다른 프레임의 함정이다. 민주당이 대구에서 약진하는 것은 대구 시민들이 갑자기 진보적 가치를 수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기존 프레임이 자신들의 삶을 더 이상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왜 기존의 충성이 흔들리고 있느냐가 본질적인 질문이다.


텃밭이 무너지는 것은 상대 진영이 강해져서가 아니라, '여기는 원래 우리 땅'이라는 자기 확신이 시민들의 실제 필요와 멀어질 때 일어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대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지역이든 '텃밭'이라는 프레임에 안주하는 순간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


부활절이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기적이 아니다. 오래된 질서가 끝나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기존 질서가 가장 공고해 보이던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시 부활절 아침의 그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여야 후보들이 나란히 서 있던 예배당. 그 안에서 울려 퍼진 것은 부활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진짜 부활은 예배당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한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텃밭이라는 오래된 무덤의 돌이 굴려지고 있다. 그 안에서 무엇이 걸어 나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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