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17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혁명의 불꽃은 전 유럽을 뒤덮었다. 시민 봉기로 교권과 왕권이 몰락하고 선거에 의한 입헌 군주제가 성립하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등은 '대(對) 프랑스 동맹'을 체결하고 혁명 저지에 나섰다. 이에 프랑스 혁명 정부는 1792년 주변국에 전쟁을 선포하는데 이것이 '제1차 동맹 대(對) 프랑스 전쟁(1792–97)'이다.
전쟁의 우세는 한 달여 만에 프랑스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조국을 위해 나선 프랑스 시민들의 전투력이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손에 쥔 프랑스 제1공화국은 루이 16세를 처형했다. 극단적 조치에 크게 놀란 유럽 왕정 국가들은 전열을 정비한 후 다시 프랑스를 공격했다. 이런 와중에 파리는 정치사회적으로 사분오열되어 혁명의 동력을 잃어갔다.
이때 등장한 것이 나폴레옹이다. 1795년 10월 혁명 반대파의 반란을 진압하고 공화국에 권력을 이양한 뒤, 군대를 이끌고 유럽 전선에 뛰어들었다. 나폴레옹 군대의 진격 소식을 들은 주변국 귀족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도 루이 16세처럼 처형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요제프 하이든의 '전시(戰時) 미사곡(1796)'은 위와 같은 격동기에 완성되었다. 그의 음악적 관심은 종교음악에 꽂혀 있었다. 64세의 거장은 런던에서 체득한 장대한 음감을 미사곡에 불어넣는 시도를 했다. 교회음악의 전통적인 틀에 대규모 관현악을 편성하고 오케스트라의 극적인 표현을 도입했다.
그렇기에 '미사곡'이라고 해서 단출하고 짧은 곡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시 미사곡'은 혼성 4부 합창단, 플루트,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2), 호른(2), 트럼펫(2), 팀파니, 오르간 그리고 현악기 5부까지 구성된 대규모의 40분 짜리 오케스트라 곡이다. 교향곡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이 명곡은 후일 베토벤의 '장엄 미사'나 교향곡 제9번 '합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시 미사곡의 절정은 제5악장이다. 간절한 기도를 표현한 '하나님의 어린 양'과 소망과 외침을 담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로 크게 나뉜다. 제5악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타악기 팀파니의 적극적 사용이다. 팀파니는 성악부의 조용한 기도에 울림을 주기도 하고 트럼펫과 '팡파르'를 합주하며 격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연출을 두고 '새로운 세상(왕정 종식)에 대한 기대'와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담겨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는 후대의 사후적 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유럽 귀족의 후원을 받는 하이든은 왕정을 옹호하고 프랑스 혁명을 반대했다. 기대가 담겨 있다면 새로운 세상보다는 구체제의 수호 쪽이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도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곡의 선율과 리듬은 피동적 두려움보다는 불안함을 극복하려는 간절함 쪽에 가깝다.
'전시 미사곡'은 혁명과 전쟁으로 점철된 불안한 시대의 중심에서 노년의 거장이 신에게 바치는 간절한 기도이다. 여전히 전쟁과 불안의 시대를 살고있는 현생 인류에게 230년 전의 종교음악이 깊은 울림을 주는 사유가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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