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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규목이 자신의 집 정원에서 개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 정원에서 이달 중순부터 꽃잔치가 벌어진다며, 이 꽃잔치를 사랑하는 동물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 더욱 좋다는 말도 곁들였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1952년 고령에서 태어났다. 개인전 16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구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했다. 현재 가톨릭미술협회, 대구구상작가회, 구상전, 한국미술협회 등의 회원이다.
집에 작업실을 두고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던 서양화가 이규목은 여느 화가처럼 집과 분리된 작업공간의 필요성을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는 그림을 놔둘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은 물론, 집안에 마련된 작은 작업실에서는 200∼300호짜리 대작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작업에 방해를 받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대구 근교의 전원에 작업실을 마련하기로 마음먹었다.
“팔공산부터 청도, 합천까지 대구 인근지역을 쭉 훑어봤지요. 하지만 제 경제상황, 집과의 거리 등 여러가지를 고려하니 적당한 작업실 부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떠오른 것이 이씨 자신이 태어난 생가였다. 그는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때 터를 잡아 지은 그의 생가는 일반 시골집과 별다른 데가 없다. 집 뒤로 야트막한 산이 있고 집 앞에는 마을의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논과 밭 뒤로 멀리 산들이 겹겹이 자리잡고 있다.
“생가가 좁아서 집 주변에 있는 땅을 조금더 매입해 작업실을 지었습니다. 그때가 1990년이었지요. 한창 노는 데 관심이 많던 때라 작업실은 물론 제가 놀 공간도 필요했습니다.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작업하다가 가끔 나와 거닐 수 있는 정원 말이지요. 이를 모두 갖추려니 생가 터로는 부족했습니다.”
1천600㎡의 꽤 넓은 면적을 확보하고 있는 그의 작업실은 정원이 특히 넓다. 집 면적은 전체 면적의 1/10도 안되고, 나머지는 전부 정원이다.
“아직은 추위에 누렇게 변한 잔디와 앙상한 가지의 나무만 보이지만 열흘 정도만 지나면 이곳에서 꽃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산수유, 매화, 목련 등을 시작으로 늦가을까지 어느 한때 꽃이 없는 시기가 없지요. 이런 꽃 속을 거닐며 꽃과 대화를 나누고, 개들과 뛰노는 재미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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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목의 작품 '봄에 취하다'(사진 위)와 '찔레꽃_그리움'. |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에는 녹색이 많다. 어느 색 하나 생명력을 가지지 않은 것이 없겠느냐마는 녹색은 보는 이들에게 더욱 힘찬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건강한 자연의 모습을 담은 색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나무와 풀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의 생명력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작업실 밖은 아직 겨울 옷을 벗지 못해 황량함이 느껴졌지만 작업실 안은 벌써 봄이 무르익고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했다. 바로 그의 그림 때문이다.
1층은 전시실, 2층은 작업실인데, 벽면마다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그림들이 자리하고 있다. 녹색을 주조로 해 분홍, 노랑 등 다양한 채도의 색상들이 부딪히고 겹쳐지면서 만들어진 그의 화면은 생동하는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했다. 이같은 자연의 숨결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평온함을 준다. 그것은 고요, 휴식, 평화 등 세상의 번잡함이 사라진 뒤 마주하는 좋은 느낌들이다.
그는 이것이 모두 편안한 작업환경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연 속에서, 그것도 생가 터에 만든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니까 어떻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작가의 마음이 편하니까 그것이 그림에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보는 이도 이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작업실에 일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러 온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전 매일 이곳으로 놀러와요. 다른 작가들처럼 출근해 열심히 그림을 그리지도 않습니다. 개들과 정원을 거닐면서 놀고, 그러다가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작업실에 들어가 붓을 잡지요.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바로 노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는 이곳이 친구들의 놀이터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지금은 좀 뜸하지만 작업실을 지었던 초창기에 이곳은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늘 사람들로 붐볐다. 친구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많은 친구 중에서 특히 정이 가는 친구는 그와 화첩놀이를 한 예술인들이다.
“저를 포함한 화가부터 시인, 서예가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작업실에 놀러와서는 밤새도록 종이를 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이런 작업들을 모아 화첩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이 작품들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갖고, 전시장에서 직접 화첩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펼쳤습니다.”
그와 화첩놀이를 한 예술인은 시인 문인수 이하석 김선굉 박진형 박기섭, 화가 이영철 권기철, 서예가 이홍재 등이다. 예술행위가 놀이이고, 놀이가 곧 예술행위가 되는 것이 바로 화첩놀이이다.
녹색을 즐겨 사용하던 그가 최근에는 분홍색에 깊이 빠졌다. 왜 그렇게 변했느냐고 묻자 “그냥 좋아서, 마음이 변해서”라고 답한다.
“보는 이들은 녹색과 분홍색을 다르게 느끼지만 제 그림에 있어서는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분홍색이 녹색에 비해 좀더 환상적이고 화려하지만, 제가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는 데는 녹색이나 분홍색이 별다르지 않게 사용된다는 것이지요. 다만 지금 분홍색이 더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뿐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2층 작업실의 벽 한면이 온통 분홍색 그림으로 가득했다.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리다가만 캔버스에도 분홍색 기운이 가득하다. 그는 자신이 유난히 봄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과거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온 그가 최근에는 작업실에 있는 정원으로 시선을 많이 좁힌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잔디 사이로 피는 작은 꽃들에 눈길이 더 간다고 그는 말한다. 크고 화려한 꽃도 아름답지만, 작고 은은한 느낌의 꽃이 새삼 고와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에게 단순한 꽃이 아니다.
그는 이 꽃을 별이라 칭했다. “제 그림에 있는 자잘한 꽃들은 모두 정원 속에 있는 것을 그린 겁니다. 모양은 꽃이지만 저에게는 별처럼 보입니다. 까만 밤하늘을 밝게 빛나게 하는 별 말입니다. 그러니 잔디밭을 거니는 것이 아니라 저는 매일 별밭을 거닐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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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규목이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다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환한 웃음이 동심의 세계를 그린 그의 그림과 많이 닮았다. 손동욱기자 |
그가 꽃을 별로 바라보는 것은 두가지 모두 아름답고 보는 이들의 마음을 환하게 해준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꽃이 사랑스럽고 가치있는 존재이니 자연히 그의 그림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지금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그는 “욕심 같지만 한가지 바람이 더 있다”는 말을 건넨다.
“이렇게 살다가 찔레꽃 필 때 죽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멀리 여행을 갔다가도 몸이 안좋다 싶으면 얼른 이곳으로 오지요. 혹시나 싶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 오면 행복에 겨워서 그런지, 아픈 것도 금세 사라집니다. 다시 건강을 찾는 것이지요.”
그는 왜 찔레꽃이 필 때 생을 마감하고 싶어할까. 그는 세상의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고, 그래서 세상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가 바로 봄이란다. 찔레꽃은 이런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될 때 피는 꽃이다. 봄의 절정을 느끼게 하면서 여름이 시작됨을 알리는 찔레꽃의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맡으며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제목에도 유난히 ‘찔레꽃’이 많은 것일까.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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