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미소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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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2  |  수정 2019-07-12 07:36  |  발행일 2019-07-12 제16면
[문화산책] 미소와 눈물

해마다 여름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 음악축제가 열린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나 활동한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부르크에서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함께 유럽 3대 음악축제로 손꼽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매년 7월에 개최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마커스 힌터호이저 예술감독에 의하면 지난해에만 이 세계적인 음악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81개국 26만명이 모차르트의 고향인 이곳 잘츠부르크를 찾았다고 한다. 그 중 41개국의 관람객이 비유럽인, 한국 관람객은 2천500명(서울 1천200명) 정도였다니 내년이면 100년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국제적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 시에 의하면 모차르트의 브랜드 가치는 약 54억유로(한화 7조원 이상)로 추정되며 축제가 개최되는 기간에 거래되는 수많은 종류의 관련 재화(財貨)들은 대다수 주민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그를 상품화한 제품에는 어김없이 미소를 띤 모차르트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들이 축제의 주요 레퍼토리로 구성된다. 그의 오페라에서는 상반된 이해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함께 부르는 중창이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중창의 아름다운 화음처럼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 화합하길 바라던 모차르트의 박애주의자적 면모가 그의 음악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아마도 모차르트는 음악으로 이미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모차르트는 너무나도 일찍 개화한 놀라운 천재성으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항상 가난과 피로에 시달렸다. 권위적이고 몰지각한 귀족과 성직자들의 후원에서 과감히 벗어나 직업음악가의 길을 홀로 개척했지만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증오에 외로이 맞서야 했다. 하이든과 함께 빈고전파의 음악양식을 정점에 올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고 건강마저 악화되어 결국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시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낡은 관에 실린 모차르트의 시신은 빈 교외에 있는 극빈자들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은 많은 비가 내렸고 그가 사랑했던 반려견만이 진창 속을 걸어가 주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그의 고통과 눈물이 담겨있다. 슬픔을 내세우는 음악은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동정을 살 수 있지만 모차르트는 결코 그것을 눈에 보이게 담지 않았다. 모차르트가 세상과 작별하던 날 내렸던 많은 비는 그가 고된 삶을 살아내는 동안 감추고 참아왔던 고통과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오늘도 초상화 속 모차르트는 우리에게 미소를 짓고 있다.

유재민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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