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변화를 이끄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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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6  |  수정 2019-07-26 07:40  |  발행일 2019-07-26 제16면
[문화산책] 변화를 이끄는 힘
유재민<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현지에서 설상가상으로 건물 전체의 냉방시스템마저 고장이 난 상황이었다. 관광을 할 채비를 마치고 객실이 위치한 층에서 건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승강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뒤 마침내 내려온 승강기의 문이 열렸고 찜통처럼 열기가 가득한 내부에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이 한가득 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고통과 짜증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제발 너희마저 이 좁은 공간에 합류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하지 말아달라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과 기세에 우리 일행은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선뜻 탑승을 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 중 한 백인 남성이 우리를 향해 소리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더위에 거의 정신을 반쯤 놓아버렸는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승강기 안으로 타라는 격한 손짓과 함께 큰 소리로 ‘Come on!’이라 외치기 시작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얼굴빛이 벌겋게 상기돼 있던 그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더위는 여전히 계속되었지만 분위기는 순식간에 돌변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그곳에 있던 모두의 웃음보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그제야 모두의 긴장이 풀어지고 우리 일행은 함께 승강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승강기 내부의 그들과 우리 일행은 그저 서로 눈치만 보며 상황을 살폈을 뿐이었고 그 백인 남성이 그때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함께 웃음지으며 우리 모두의 거리감은 단숨에 좁혀졌고 타국에서 처음 만난 서로가 농담도 하며 함께 어울리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날은 고되고 힘든 여정을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일 웃으며 보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그 백인 남성이 참 멋진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모두가 꺼리는 상황에서 홀로 나섰고 경직된 분위기를 순식간에 반전시켰으며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다. 게다가 그는 현재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시기적절한 유머감각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모두를 이끌지 않았던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리더로서의 좋은 자질을 갖춘 것이라 생각한다. 유머는 소속 집단 내의 긴장감을 해소하고 공감지수를 높여 스트레스 완화와 생산성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이처럼 유머는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훌륭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그저 무표정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반복되는 일상을 되풀이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모두가 눈치만 보던 상황에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다가갔던 적은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도 가끔 길이 보이지 않고 답답할 때, 인간관계에서 지치고 힘들 때 그 백인 남성의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유재민<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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