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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
학교에 입학하고 매번 방학을 앞두면 선생님들은 방학 계획표를 짜라고 하셨다. 친절한 선생님들은 커다란 원에 시간을 표시해서 나눠주셨고 창의력을 발휘하라는 선생님들은 하얀 백지를 주셨다. 나는 느린 학생이었지만 그래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편이어서 열심히 계획표를 짜곤 했다. 매번 방학이 끝나면 ‘역시 난 안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지. 담배를 끊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고. 자기는 수천 번도 더 끊었다고.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내가 재작년 시월의 마지막 날, 금연을 선언했을 때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나도 안 믿었다. 심지어 고향 친구는 ‘차라리 똥개가 똥을 끊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뱉어냈다. 그렇게 나는 담배와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헤어졌다.
금연 앱에 따르면 나는 2년51일33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금연 보조제로도 챔픽스라는 약으로도 끊지 못했던 담배를 나는 상상력으로 끊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 전에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코로 천천히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가 입으로 천천히 내뱉는다. 담배를 피우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연기가 뱀으로 변해 내 입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한다. 이때 뱀의 이미지와 촉감을 그대로 떠올리려 애써야 한다. 공포감이 최상에 이르도록. 안간힘을 써서 팔을 휘둘러 뱀들과 싸운다. 모두 물리칠 때쯤 머리카락이 뱀으로 덮여 있고 보기만 해도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끔찍한 얼굴을 한 메두사가 나타난다. 그때 내 손에는 검과 방패가 쥐어져 있다. 나는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메두사의 목을 싹둑 자른다. 내 몸은 땀으로 젖어 있다. 메두사의 죽음을 확인하고 바다 멀리 던져버린 후 잠 속으로 빠져든다. 매일 이 상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페르세우스가 살던 시대라고 실제 메두사가 있었겠는가.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달려가는 것처럼 나는 담배를 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대상으로 형상화하여 물리쳤다. 영웅 신화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아이가 로봇도 아니고 어떻게 원 안에 그린 대로 방학 내내 살아갈 수 있을까. 가둬진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단정 짓고 용기를 조금씩 잃어갔던 건 아닐까. 며칠 있으면 2020년 새해가 밝아온다. 태양이 한 바퀴 돌아 그 자리로 오는 것을 기념하는 모든 날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 상상력이 의미를 만든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위대한 저서 ‘신의 가면’ 제3권 ‘서양 신화’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으로 두 달간의 연재를 마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사랑과 희망으로 그대에게 간청하나니, 그대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내치지 말라.’
송영인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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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영혼 속의 영웅](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12/20191225.01018075540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