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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희(크레텍책임 홍보부장) |
나훈아는 말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난 전기밥솥 뚜껑이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내가 출산한 다음날 엄마는 전기밥솥에 밥을 해놓고는 즐거운 나들이를 가셨다. 다른 엄마들은 딸이 안쓰러워 손목이 부러져라 산후조리를 해주시지만 쿨내 진동하는 울엄마는 달랐다. 삐삐삐~ 세 번의 알림 후 전기밥솥은 자동으로 열렸고,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저 안의 것이 밥인지 서러움인지 헷갈렸다. 이쯤 되면 친엄마 확인을 위해 국과수에 검사를 의뢰하겠다며 밥 두 공기를 혼자 퍼먹었다.
이런 엄마 덕분에 나는 강해졌다. 엄마얘기를 좀 더 해볼까. 분만은 처음 겪는 일이라 겁이 난 나는 난생 처음 엄마를 애절하게 쳐다봤다. 당당히 한마디 해주셨다. “마 다 한다!” 세상여자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분만실서 돌아오면 다른 엄마들은 고생한 딸을 보며 적어도 눈물 한두 방울 정도는 흘려주신다. 우리엄마? 어림도 없다. 실려 오는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쟈는 쉽게도 낳는다. 저거 고모 닮았는기라. 나는요…”라며 그때부터 입원실 모든 보호자들을 모아 당신의 출산기를 들려주신다. 애 낳고 바로 우물물을 길으러 갔다, 밭을 매러 갔다, 시아버지가 며느리 주라고 사온 고기를 우리 할머니가 중간에서 떼먹었다 등등 도저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고 때론 개콘 같은 포복절도할 당신의 이야기로 그날 병실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천일야화의 산부인과 버전이랄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엄마가 있다. 의로운 엄마, 온몸이 사랑이기만 한 엄마, 이기적인 엄마, 남의 눈만 의식하는 엄마 등등 정답은 없다. 드라마를 보면 자애롭고 따뜻한 엄마들의 릴레이가 펼쳐진다. 일하는 여성들은 그 판타지에 구속 받아 자신이 조금이라도 그 드라마 속 엄마처럼 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 잠을 줄이고 피로회복제를 먹어가며 헌신하는 워킹맘들을 주변에서 본다. 가부장제가 만든 헌신과 희생의 모성상으로부터 벗어나야 그녀들의 평화도 가능한데 말이다.
올해는 특히나 다양한 엄마들의 활약이 있었다. 산업현장 비정규직의 안전문제를 제기한 태안발전소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어린이생명안전법 제정을 촉구한 해인이와 하준이 엄마 등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가두지 않고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제기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차원은 다르지만 난 아무리 봐도 우리 엄마 덕분에 강해졌다. 만약 ‘여자인데 호강해야지’했다면 진즉에 일을 때려치웠을 것이다. 좀체 서러움을 타지 않는 뻔뻔함도 엄마를 닮았다. 엄마는 지금 병석에 누워계신다. 이번 겨울은 내게 동계훈련이 돼버렸고, 이렇게 엄마 흉을 한바가지 해놨으니 오래 사실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엄마들, 그 수많은 모습들이 바로 엄마이다. 규정받는 틀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 엄마들에게 올해의 인물상을 바친다. 울엄마 정여사님, 사랑해요.서상희(크레텍책임 홍보부장)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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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올해의 인물, 엄마](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12/20191227.01016075606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