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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연<소설가> |
운전면허 취득이 새해 목표이던 시절이 있다. 20대 중후반에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소설을 쓴답시고 골방에 처박혀 끙끙대던 내가 운전대를 잡은 것은 새로운 세계에 접속하고픈 욕망 때문이었다.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가볍게 필기고사를 패스하고 장내 연수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그런데 웬걸. 주차 구간 탈선으로 기능시험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한 번은 웃어 넘겼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네 번째 실격에 이르러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유를 모른 채로 거절당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실패의 원인을 모르면 노력의 방향을 정할 수 없고, 그래서 합격의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고작 운전시험 따위가 나를 한없이 심란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여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등단을 준비하던 내가 각종 공모전에서 연달아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상황과도 절묘하게 닮아 있었다.
운전 시험을 중단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읽은 책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다. 이 소설은 애초부터 실패투성이인 인물들이 중심이 된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열네 살 소년 모모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탈출한 로지 아줌마.
그러나 작가는 좌절뿐인 이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절대적으로 희거나 검은 것은 없는 법이라고 했다. 즉 희다고 하는 것은 흔히 검은색이 숨겨진 것을 의미하고, 또한 검다고 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나 흰 것이 드러나 있음을 말한다." 꽤 많이 인용되는 이 구절은 인간들의 삶이 가지각색인 것 같지만 크게 보면 누구나 비슷한 모양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실존적인 분위기가 스며있는 책의 제목은 사실 '여생'이라는 뜻의 불어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기 몫으로 주어진 인생을 버거워한다. 그러나 이 녹록잖은 '자기 앞의 생' 역시 한편으로는 단순히 '남은 시간들'(여생)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덫에 걸려 아등바등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우리는 자연스레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2020년이 밝았다. 돌이켜보면 필요 이상으로 조바심 내었던 일이 많다. 올해는 지키지 못할 많은 계획들 안에 스스로를 욱여넣으려 애쓰기보다는 나의 생을 그대로 아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우연히 발견한 글귀가 있는데 왠지 여기에 어울리는 것 같아서 남긴다. 씨앗, 너무 애쓰지 마. 너는 본디 꽃이 될 운명이니.김세연<소설가>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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